생각 아바타
오늘 소개할 작품은 김보름 작가님의 생각 아바타이다.
이 책은 사실 상당히 오래 전에 아이들이 저학년 시절에 읽었던 책인데, 그때 나는 못봤다가
우연히 여전히 서가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집어든 책연으로 보게 되었다.
짧은 저학년 동화지만, 나름 깊은 주제 의식과 우리 아이들이 어려워 하는 것에 대해서
현실적인 문제를 잘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을 오늘 한번 리뷰해보도록 하자.
주인공 승우는 학교에서 나오는 생각하기 숙제가 항상 어려운 아이다.
4학년이 시작되고 나서 담임 선생님이 내주신 주제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발표하는 것이
항상 어렵고 한 글자도 제대로 쓰지 못해서 남의 것을 베낄 생각만 한다.
하지만 그런 것도 만만치는 않고, 그래서 항상 남아서 빈 공책에 숙제를 바라만 보던 승우는
어느날 게임을 하다가 생각치도 못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그건 스스로를 아르콘이라고 소개하는 승우와 꼭 닮은 생각하는 아바타였다.
생각하기 숙제가 싫었던 승우는 아르콘에게 대신 생각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고
아르콘은 훌룡하게 생각하기 숙제를 해준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칭찬받은 승우는 점점 아르콘에게
빠져들게 되고 어느새 아르콘은 가상세계의 아바타가 아니라 현실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승우 대신에 현실 세계의 승우가 되고,
승우는 가상세계로 떨어져 생각하는 아바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다른 아이들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과연 승우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아르콘을 물리치고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아바타가 아닌 자신으로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작품 내용의 소개는 이 정도로 해두고, 일단 처음 느낀 감상을 말해보자면...
흠, 아마도 아이들을 둔 부모라면 반드시 한번은 느껴봤을 경험이 아닐까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사실 어느 집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공책에 받아쓰기도 아닌,
자신의 생각을 적어서 내는 숙제를 받았을 때,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을 보는 건.
근데 이해하지 못할 것은 또 아니다. 사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짧은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쉬운 문제도 아니다. 거짓말은 나쁜가? 왜 감사하단 말을 해야 하는가?
이게 정말로 쉬운 문제일까? 진지하게 사고하여 답을 내리려면 어른들도 이견이 갈리고 복잡한
사고와 논리가 따라야 하는 화두일 것이다. 근데 이런 과제를 받아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답을 내리는 것은...
음, 동심의 배려를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독립된 지성체로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거기다, 요즘의 시대는 점점 기술이 발전해 가면서 되려 사고한다는 것이 더 열화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던져진 화두에 대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다양한 상상력이 튀어나와서 별의별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생소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뭔가 커뮤니티의 인기글에 달리는 비슷한 논조의 리플처럼 획일적이고 다른 사람과
비슷한 의견이 무의미한 공간에 메아리없이 울리는 것 같은 시대다.
영화 이디오크러시에 나오는 극단적인 반지성의 시대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스펙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생각과 의견일텐데, 어쩌다 그런 것들이 점점
퇴보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을까? 어쩌면 그건 우리 어른들의 책임일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다니면서 어느 순간부터 정해진 답을 찾아서 쓰는 것에 익숙한 세상.
그게 우리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고, 우리들 스스로도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그래서 어느샌가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남들은 하지 못하는 생각의 개성은 사라지고
정해진 정답만을 찾는 것이 옳은 것이 되었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엉뚱한 아이로 치부되고.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조금 안타까웠던 것은, 이 작품이 그런 세태를 꼬집는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언급하는 생각 표현하기의 모범적인 예시가 너무 어른들의 관점이란 것이었다.
하... 아이들이 생각해서 내놓은 생각의 문장은 꼭 그런 것이 아닐텐데...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마구잡이로 쓴 글을 본적이 있었다. 읽고 빵 터졌다. 이 무슨 마구잡이에 근본도 없지만
그래서 난생처음보는 기발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란 말인가? 그래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우리 아이는 그런 글을 쓰지 않는다. 논술학원과 조금 높아진 수준의 권장도서를 읽으면서
어느새 글의 형식이 세상이 원하는 형태에 가깝게 다듬어져 버렸다.
여전히 생각은 엉뚱하지만 그때 기억하는 형식 그 자체를 파괴하는 기발한 이야기는 다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의 서글픔과 조금의 미안함과 조금의 안쓰러움을 느꼈다.
작품 속에서 승우는 결국 방법을 찾아내고 자기 자신으로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연 그것이 정답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어쩌면 또 다른 어른들이 마련해둔 답정너가 아니었을까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승우가 좋아하던 게임 속에서 스스로의 자아를 투영한 멋진 나 자신을 찾는 것도 또 다른 답이
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사족 같은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디오크러시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정답을 찾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고 특히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더더욱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때로는 생각이란 멋진 논술 과제의 해답 같은 것이 아니라, 터무니없고 엉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내가 생각한 나만이 가진 소중한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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