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 분열의 시대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일상 속의 동화 이야기의 주제는 조금 포괄적인 의미의 아이들을 위한
동화와 청소년문학의 리뷰와 감상을 담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래서, 사실 다양한 책이나 영화를 접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것들은
리뷰에 올릴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소개할 이 작품은
그러한 주제 의식에 범주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단순히 어른들을 위한 정치 영화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본성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 담긴, 인간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동물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역전된 '우화'의 영역으로 볼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영화는 뉴욕에서 발생한 식수 공급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위 현장에서 시작된다.
아마추어 사진기자인 제시는 시위대와 경찰이 험악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기자 조끼도 입지 않고
촬영을 하다가 공격을 당하고, 그걸 지나가던 리가 도와주게 된다.
제시는 자신을 도와준 리가 전설적인 종군기자인 리 스미스라는 사실에 감격하고,
그러는 중에 갑작스럽게 개시된 정부군의 폭격으로 시위대는 물론 경찰들마저도 중상을 입고
현장이 날아가는 지옥을 목격하게 된다.
장면이 바뀌어서 리는 프레스센터로 자리를 옮겨 오랫동안 일했던 동료들인 조엘과 새미와
내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냉소적인 조엘에게 워싱턴으로 가서 지금의 내전을 유발한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직접 따러 가자는 계획에 대해서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주위를 알짱거리던 제시도 그 일행에 합류하게 되고, 그렇게 4명으로 구성된 취재팀은
워싱턴으로 향하는 길에 오른다. 하지만 가는 여정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던 지구 상의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지옥의 참상이 펼쳐져 있다.
미국 달러의 가치가 떨어져서, 캐나다 달라가 오히려 통화 가치가 있던 주유소에서는
한 직원이 약탈범이 된 예전 학교 동창을 매달아 놓고 죽일지 말지를 제시에게 묻는다.
도착한 난민 캠프는 미국이 아닌 중동이나 동유럽에서나 볼법한 천막과 난민들이 모습이
가득하고 그곳은 한때 미국인들이 사랑한 풋볼 경기장이다.
어느 테마파크에서는 건물에 매복한 저격수와 그걸 제거하려는 군인들이 대치하고 있고
군인들에게 저기 있는 것이 누구냐고 물어보자, 알바없고 그저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기에 죽일거라 한다.
광기에 휩쌓인 민병대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트럭에 가득 싣고 암매장을 하고 있고
자신들도 미국인이라 말하는 제시 일행에게 어느 미국인이냐고 되물으면서, 합류한 홍콩 출신 기자들을
중국인이라고 그대로 사살해버린다.
CNN 뉴스에서 남의 일로만 보던 전쟁의 참상을 자신이 익숙하게 살고 있던 자신들의 나라에서
목격한 제시 일행은 결국 워싱턴에 도착하고, 거기서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최후의 발악을 하는
백악관을 공격해 들어가는 부대에 합류하게 된다.
과연 제시와 리는 대통령의 인터뷰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미친 내전의 결말은 과연 희망어린 끝을 맞이할 수 있을까?
현세에 강림한,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지옥을 여행하는 종군기자들의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글을 쓰는 것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정치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기울어져 있지 않은
중립적인 시각에서 모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유지하기에는 지금의 시대가 미쳐도 너무 심각하게 미쳐 있다는 느낌이다.
왜일까? 대체 무슨 트리거가 눌린 걸까? 최근 몇년 사이에 세상은 발전을 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고, 개인은 책임이란 것을 멍청이들의 숙제로 여기고 비웃고 있고,
정치가들은 말도 안되는 뻔뻔한 헛소리를 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사이다라고 열광하는
우민들에 의해 더 큰 지지를 받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
혐오는 비난받을 악덕이 아닌, 내 지갑을 쏠쏠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으로 찬양받고,
무지는 부끄러워할 것이 아닌, 누가 물어봤냐는 식의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당연히 자신의 행동에 따라올 수 밖에 없는 책임에 대해
그게 왜 자기의 것이냐며 외면하고 방관하고 떠넘기는 이들이 뻔뻔하게 나오고 있다.
비단 우리 나라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보통 사람의 기준에도
한참 미달하는 우자들이 선출한 광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 영화가 개봉했던 24년 초에는 아마도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저 영화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많이 과장된 설정을 기반으로 한 픽션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근데, 25년 3월 현시점에서 미국인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준다면? 과연 단순한 픽션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당장 1-2년 안에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것에 소름이 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영화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이미 되돌리기에 늦어버린
실낙원에 대한 경고이자, 그 이후의 시간이 어떤 식으로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세상을 무너뜨릴지에 대한 덤덤한 르포 기사다.
우리는 뉴스에서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을 남의 일처럼 보고, 때로는 그들을 무지한 이들로 비웃으며
어떻게 저런 상황을 자초할 수 있는지 혀를 찬다. 하지만 그런 지옥의 문턱은 우리에게도 멀지 않다.
지금 뉴스에서 나오는 광인들이 조금 더 통제를 벗어나고 조금 더 부추겨지고,
그들의 손에 무기가 들리는 순간... 이게 과연 남의 일로만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가?
한밤중에 국가의 근간을 파괴한 이들이 바로 당신 본인과 당신의 가족들에게도 같은 가해를 가할 수 있다.
왜냐고? 이유는 없다. 그냥 그들이 그러고 싶으니깐. 그리고 막아줄 이가 아무도 없으니깐.
그래서 나는 이것을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식의 우화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만 나오는데 왜 우화냐고? 그게 아직 사람으로 보이는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인간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짐승들이고 그 짐숭들의 본능에 의해
파괴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저 순례자들의 시선으로 묵묵히 관조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그것을 유발한 시시하고 하찮은 악당은 최소한의 자신의 악행에 걸맞는
품격마저도 가지지 못하고 치졸하고 비겁하기 그지 없다. 일말의 동정조차 들지 않는 인터뷰를 끝으로 이것을
만들어낸 악은 사라지지만, 그것은 결말이 아닌 시작이자 계기일 뿐이다.
이미 세상은 그에 동조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 활보하는 짐승들의 세상이 되었으니깐.
그래서 나는 이 우화를 사람들에게 권하고 그것에 경각심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누구도 스스로 악인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황과 조건이 주어지고 책임이 외면되는 상황이 오면
인간은 비겁해지고 이기적이 된다. 그리고 남들도 한다는 전제를 통해 거기 동참하게 되고.
그래. 어쩌면 개인이라면 그래도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런 우행의 결과는 너 자신에게 돌아와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장 끔찍한 형태로 최후를 맞이하게 될테니깐.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도 그렇고 만약 당신도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시대를 넘겨준 책임과 그 아이들의 눈동자에 비친 지옥에 대해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사실이 두렵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적은 동화의 이야기가, 그저 재미가 아닌 아이들이 자라며
그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길 바라는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적었다는 점에서...
그것이 망각되고 소각되는 거나 다름없는 짐승들의 시대가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두서없는 이야기고, 영화를 보고 느낀 정서적인 충격에 팬텀 페인을 느끼는
나약한 멘탈의 글쟁이가 써보는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임상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이 세상을 살아가며 스스로 믿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한번쯤은 되돌아보기를 권해주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거기 내가 한걸음만 더 나가면 만나거나 그 존재 자체가 될지도 모를 짐승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자라게 될 이 세상을 선물이란 수식어를 붙여 넘겨주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시빌워 #분열의시대 #알렉스가렌드 #커스틴던스트 #미국 #내전 #로드무비 #종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