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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Nov 02. 2024

순례 주택

순례 주택


이번에 소개할 순례주택은 사실 이번에 처음 읽은 책은 아니다.

예전에 아이들이 읽었을때 같이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문득 오랜만에 손에 다시 잡히게 되서 재독하였다.

그리고 읽어본 감상을 주말 저녁에 적어본다.

작품은 뭔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생각만큼 무겁거나 심오하거나 종교적이지 않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생활의 풍경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작품의 주인공 16세 수림은 산후우울증으로 그로기가 된 엄마의 사정 덕분에 

할아버지에게 맡겨지게 되고, 그러다 할아버지의 여친이자 집주인인 순례씨의 손에 크게 된다.

덕분에 공부는 애매해도 생활력은 만렙이 된 수림이.

그리고 할아버지의 사후에도 순례씨와의 연은 이어지는데, 그러던 중에 집안이 

사정으로 살던 집에서 나와 나앉게 되자, 가족들은 평소에 무시하던 순례씨의 호의 덕분에 

순례씨의 건물에 세입자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평소에 허영과 가식이 많던 가족들은 입주한 순례씨의 세입자 생활을 잘 적응하지 못하고

같은 세입자로 살며 평소에 순례씨의 생활 철학에 동조하는 이웃들과도 

이런저런 마찰을 만들게 된다. 과연 수림이네 가족은 거기서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조금 난이도가 높고 담고 있는 메세지가 아직은 좀 동떨어진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읽어보고 나서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이 작품은 세입자나 건물주 같은 아이들에게 생소한 용어가 나오지만, 

그런걸 몰라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지금 시대의 우화와도 같은 이야기다.

대학교수라는 타이틀, 고급 아파트에 대한 허영, 사교육으로 떡칠해서 성적을 유지하는 우등생

그런 우화 속에 전형적인 악역을 수림이 가족에 배치하고, 그에 대비하여 순례씨의 구성원들은

성실히 알바로 일당을 버는 청소년, 재활용과 나눔을 생활화한 어른, 복지에 가까운 혜택을 제공하는 집주인을

배치해서 적절한 대비와 교훈과 동시에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내는 깔끔한 이야기였다.

뭔가, 삶의 구수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적절하게 배치된 인물의 성향 구도와 대립을 통해 서사를 만들고

거기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이 나왔었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는 상당히 교훈적인 의미와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배울 수 있는 내용으로

아이들에게 공감을 유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에 두번째 읽었을 때는 그때 막연하게 느꼈던 감동과는 조금 다른 감상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누구나 바라던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동시에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기에 이상향이라는 현실감이었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순례주택은 말그대로 이상향이다.

선이자 지향점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은 본성적인 성실함과 좋은 인성을 가지고, 과도한 욕심으로 삶을 

망치는 대신 땀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하루하루 주변의 소박하고 소중한 삶을 가치있게 살아간다.

하지만 읽는 분들이라면 여기서 조금 느끼실 것이다. 그것이 결코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살아갈 수 밖에 없고 

누군가와 살아가다보면 결국 거기서 경쟁과 갈등, 그리고 비교는 따라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흔히들 요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SNS고 서로 비교하는 것만 없애도 삶을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정답을 부르짖고는 있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또만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제 더 이상 메신저로 카톡을 사용하지 않고, 인스타와 유투브를 사용하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소득 월천 연봉 2억을 말한다는 것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시대를 살다보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려면 정말로 모든 것을 두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순례주택은 나에게 있어서 행복에 대한 답을 주는 이상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이상향이기에 다다르기 쉽지 않고 너무나 요원해보이는 곳이라는 것도 사실일 수 밖에 없이 느껴진다.

어쩌면 나 스스로의 성찰이나 깨닭음이 부족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두번째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심화적인 공감이나 감동보다는 이상향의 아득함과 아쉬움에 대해서

조금은 씁쓸해하며 지난번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책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표지를 돌아보면서 제목을 보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런 생각을 하였다.

제목 참 잘 지었다고. 이곳은 아마도 제목처럼, 긴 순례와 같은 시간을 통해 깨달음과 성찰을 얻은 사람만이

마침내 도달하여 발을 디딜 수 있는 이상의 보금자리인 것만 같다.

언젠가는 나 역시도 그런 마음의 군더더기를 내려놓고 그곳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의 두번째 읽은 후의 리뷰를 마친다.  

  

#순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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