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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Dec 12. 2023

나도 좋은 탐정이 될 수 있을까?

허진희, 『독고솜에게 반하면』(문학동네, 2020)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청소년 소설로, 탐정 수첩을 들고 다니며 해결해야 할 사건과 그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적는 열네 살 서율무,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말이 없으며 ‘마녀의 딸’이라는 으스스한 별명을 가진 같은 반 독고솜, 그리고 늘 반의 중심에서 ‘여왕’이라 불리며 일을 주도하는 반장 단태희가 주인공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독고솜이 주변 사물을 공중부양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는 마녀라는 것. 이것은 그에 관한 소문만 무성한 독고솜에게 편견 없이 다가간 서율무만이 알게 된 비밀이고, 이 비밀을 계기로 둘은 친한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영미가 하굣길에 괴한에게 봉변을 당하고,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한다. 그후 영미를 도우려는 태희와 율무의 두 마음이 서로 맞선다. 태희는 할머니와 사는 영미의 가난한 처지를 돕겠다는 이유로 반 친구들로부터 돈을 모으려 하고, 율무는 그런 방법보다는 어딘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은 영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독고솜의 능력을 빌린다. 그 과정에서 영미의 단짝 지민의 존재, 모금한 돈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소동, 새롭게 밝혀지는 비밀 등으로 이야기가 꽤나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너무 흔하면서도 다루기 어려운 ‘미워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주’라는 초월적인 장치를 통해 신중하게 마련된 응징을 가능하게 한다. 독고솜은 모계로 마녀의 피를 물려받아, 사람들에게 익명으로 사연을 받아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 상대에게 저주를 내리는 일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계에서 독고솜은 은밀한 조율자가 된다. 하지만 그의 저주는 단순히 사람을 벌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그 저주는 고양이에게 해코지하는 사람에게 ‘고양이의 보은(쥐를 물어다 준다)’을 내리고, 자녀를 학대한 부모에게 벌을 주기보다는 그 아이들이 학대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등, 간접적인 방법이다. “저주받은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너무 크게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저주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따”진다. 사건이 해결되어가는 과정에서 독고솜은 단태희에게도 작은 ‘저주’를 내린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주는 것으로.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내 마음이 안으로 침잠했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자기를 잘 따르던 박선희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자신이 배신당하고 소외당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이러한 연결감은 율무와 솜이가 기질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 소설에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평소 잘 읽지 않던 장르(청소년 소설)임에도 “한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건 아닐까?”라는 띠지 카피에 이끌려 읽었다. 이 질문은 언뜻 성인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는 질문인 것만 같다. 각기 다른 삶을 지향하고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명확해서 그러한 사람끼리 무리를 형성해가는 것이 순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이 단순한 질문에 반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에게 잘해주는지 같이 어울리기에 괜찮은 친구인지를 따져가며 친구를 사귀던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렸고, 그때 이런 소설을 읽지 않았던 걸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그때와 많이 다를까? 30세가 훌쩍 지나고도 내가 어떻게 보일지, 저 사람은 어떤 삶을 누리고 있는지만 생각하는 것은 어릴 때보다 더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고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미뤄두고 온전히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감각을 되살리기에 빠르거나 늦는 때는 없다고, 지금이라도 이 소설을 읽어서, 서율무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탐정은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일에 마음을 쓴다. 마음을 써서 살펴보고, 기록하고 기억한다. 필요할 때는 발로 뛰어다닌다.” “좋은 탐정”이 되고 싶은 율무가 내린 탐정의 정의다.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상황과 마음을 더 많이 생각하는 ‘좋은 탐정’이 나쁜 사람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성일: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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