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문학동네, 2023)
최근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여기서 자유는 세속적인 조건에서 초탈하는 것이 아니라 돈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 돈이 많아서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자본가가 잠도 아끼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여러 방법을 궁리한 결과로 발전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자유’를 얻는 일은 당연히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돈이 ‘자동으로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면 돈 벌 시간에 더 즐거운 일,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광고들은 실제로 IT 업종의 사람들이 파이어족이 되고, 유튜버가 부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자본도 생산수단도 없는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장사 미끼가 된다.
과거 미국의 아메리칸드림이나 기업가정신처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자기계발 담론이 계급의식을 지우고 있다. 고대로부터 가난한 자와 연대하는 사람은 있어왔고 복지국가의 출현이 무임승차 담론을 일찍이 형성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혐오가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가난은 질병이다’라는 말이 유명 투자 전문가의 입에서 버젓이 흘러나오고, 자수성가 한 이가 착한 척 그만하고 ‘악인이 돼라’고 말하는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온다.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 어떻게 해서든 사다리를 올라타고자 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는 자기계발 담론, 투자 담론을 재생산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돈을 번다.
평소에 느낀 이러한 불편한 감정, 혹은 분노가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를 집어들게 했다. 이 책은 페미니즘 이론가인 벨 훅스가 2000년에 출간한 책 <Where we stand>의 한국어판으로, 2008년에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출판사를 바꿔 다시 나왔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라는 질문형 문장으로 제목을 바꾸었을 때, 독자에게 끌어내고자 하는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자리’는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가르는 사회 내의 자리, 즉 계급이다. 그리고 이 계급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구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행동과 기본적인 전제, 행동거지에 관해 배운 것, 자신과 남에게 기대하는 것, 미래에 대한 생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식,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 등 온갖 것과 관련”(192)되는 것이라는 리타 메이 브라운의 설명을 빌려, 계급 문제에 더욱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벨 훅스는 말한다.
벨 훅스는 그 자신이 계급적 배경의 급격한 변화를 겪은 이로서, 1950년대 미국 켄터키주의 흑인 격리 지역에서 태어나 “한 사람이 벌어오는 노동 소득으로 아이 일곱, 어른 둘이 생활하는 대가족의 일원”으로 자랐고, 지역의 여자대학에 진학했다가 뛰어난 학업 능력 덕분에 캘리포니아주의 스탠퍼드대학교에 입학한다. 스탠퍼드대학교는 설립 때부터 “평등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가치를 중요시했던 곳이었기에 벨 훅스는 이상적인 대학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노동계급 사람들의 삶에 대해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동급생들, 노동계급을 무시하는 “부르주아 흑인 엘리트”들을 보며 혼란을 겪는다. 결국 대학생활을 견디게 해준 건 자신이 소중히 여긴 정신적 유산, “근면과 정직, 출신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 위치를 다시 살펴”보는 일, 즉 계급 의식을 갖는 것이었다고 회상한다(77).
자기 고백적 서사를 따라 나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나는 울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계기로 서울로 상경해 이곳에 살고 있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서로의 집안 사정은 잘 모르고 지냈다. 거대 공업도시이기에 많은 아버지들이 공장에서 일한 까닭도 있다. 나의 아버지도 공장 노동자였지만 현대자동차를 다니지 않았다는 것, 2000년 이후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그곳으로 이사하는 이웃이 생가기면서 동네 안에서도 계급이 나뉘는 광경을 목격하긴 했지만 계급 격차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계기는 대학교에서였다. 1학년 때는 그저 성인으로서 만끽하는 대학생활에 취해 어느 누구 할 것없이 모두 어울려 놀았지만 점차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들을 느꼈고, 미대라는 조건 때문인지 학회, 사회운동단체, 중앙 동아리 같은 것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바쁘게, 하지만 공허한 상태로 서둘러 학부를 마쳤다. 이때의 시간은 감정적으로도 응어리를 남겼다. 당시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님, 노동계급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했고, 계급적 성장을 꿈꿨으며, 그 성공을 과시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학부를 졸업하고 내가 나름의 역할을 할 곳을 기웃거리면서 깨달았다. 나는 그러기엔 계급적 배경이 다른 데다가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망, 부에 대한 열망이 크지가 않다는 걸.
이후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소비주의에 관심이 있던 나는 잠시 들불같이 일어난 페미니즘 이슈에 흥분한 한편, 내가 운동에 몸담는다면 빈곤운동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때부터 막연히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는 태도가, 부를 과시하는 세상이 거북스러웠다. 더욱이 이렇게 양극화가 심해지는 서울에서의 경험 때문에 그러한 부대낌은 더 심해졌다. 2005년 청계천 노동자의 내몰림, 2009년 용산참사, 2011년 포이동 화재, 2014년 송파구의 세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이어진 생활고로 인한 자살 등, 내가 서울에서 살면서 보고 들은 안타까운 죽음들에는 가난이 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한두번 연대 장소에 가거나 정기 후원금으로 운동단체에 마음을 보태는 일에 그쳤지만, 정말 근본적인 변화는 빈곤운동, 계급운동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물론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일 수는 없지만 벨 훅스의 말처럼 “이상을 꿈꾸는 운동이라면 무엇보다 노동계급과 빈곤층 여자들이 처한 구체적인 조건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202)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무색하게 점점 더 부자를 선망하는 사람들, 그런 욕망을 부추기는 미디어가 도처에 있다. “다양한 계급 특권을 가진 사람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가졌으므로 자신은 가난하다는 투로 말하는 소리”가 온갖 매체를 통해 들리고 “계급 특권이 없는 사람들은 부자와 동일한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과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리라 믿기 때문에 부자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동조하면서 스스로 착취 대상으로 전락”(144)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갈수록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물질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각 개인의 책임이라고 믿게 되었”고, “계급 배경에 상관없이 각자 자신의 경제적 번영을 좇으라고 권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가난한 사람과 연대하기란 쉽지 않”게 되었다.(93)
현재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더욱 암담하다. 임금 체불에 대한 노동계급의 시위와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해 경제 활동을 방해한다느니, 시민들의 발목을 잡는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정치인들의 말은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와 시설에 갇히거나 목숨을 걸고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을 무시하고 고립시켜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에 관한 관심 부족은 무엇보다 좌파가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권력자의 비리만 신경쓸 때 더욱 심해진다”(94)는 벨 훅스의 진단은 지금 한국의 상황과 꼭 들어맞는다. 그나마 진보적인 의제, 사회적인 약자에게 집중하던 정당들은 거대 양당의 싸움에 밀려 점점 영향력을 잃어 정당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은 “가난을 만들어내는 조건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는다.”(235) 그러기는커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계급을 공고화하는 제도들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를 읽으며 자본가-노동자, 금수저-흙수저, 건물주-임차인 등 범람하는 이분법적 언어들을 넘어서 더 많은 위치를 포함하는 계급의식을 생각했다. 벨 훅스가 에세이의 형식으로 성장 배경, 라이프스타일, 인종, 페미니즘 내 차이, 절대적 빈곤층과의 관계, 부동산의 소유 문제와 자신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이야기했듯이, 우리 역시 자신이 가진 모든 특권을 돌아봐야 하고, 또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점검해야 한다. 고등교육을 받은, 어쩌면 특권층에 속하는 교수이지만 스스로 흑인, 페미니스트, 노동계급 출신, 여성으로서 그 어떤 조건도 놓치지 않고 계급에 대한 담론을 만들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우리는 하나의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계급 의식은 인종, 성별, 젠더, 교육 수준, 거주 지역 등과 교차하며 서로 다르게 경험된다. “계급은 돈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할 때까지,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특히 빈곤층과 가난한 사람이 겪는 문제가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계속해서 약탈적인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상황에서 권력을 쥐지 않은 그외 우리는 계급을 초월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287)
변화에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나의 자리를 인지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끌어안는 일이다. 계급, 여성, 장애, 젠더, 가족, 인종,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사회와의 연결고리로서 내포되어 있다. 계급의 사다리에 올라타 있는 듯 여겨지더라도, 계급에서 초월한 평화로운 상태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도, “이 사회는 결코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22)며 “다양한 계급을 넘나드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무척 어렵다”는 현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현실 인식이 선행되어야 나의 자리를 생각하고, 이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을 실질적으로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작성일: 2023.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