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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평화 Dec 13. 2023

15. 한국 할머니는 정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

대중교통을 타면 생기는 일 (3)

친구 만나러 지하철을 탔다. 토요일이라 지하철은 붐비지 않았다. 

경로석에 빈자리가 있어 나는 자연히 가운데 앉았다. 

내 왼쪽에 앉은 할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없으면 그 집이 밥도 못 먹어. 반찬을 해줄 사람이 없어. 나는 청소하고 반찬만 해주고 나와. 주인이 겸손하고 월급 외에 용돈도 좀 주지. 부인이 너무 좋아 일을 더 하고 싶은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자네한테 부탁 좀 하려고 전화를 했었지.”

상대방에서 뭐라고 전화로 말하지만 똑똑히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나 대신 일 좀 해주면 안 될까? 자네도 돈 벌고 좋잖아?”

그쪽에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하였다. 귀를 쫑긋 세우니까 좀 들리기도 하였다.

“실은 비밀인데, 자기만 알아. 아들이 손주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해서,”

“몇 년 전 봄에 결혼한 아들?”

“그래, 아들이 정확히 말은 안 해서 잘 모르지만 며느리와 이혼할 것 같아.”

“아이고, 그랬구나.”

“지금은 지하철이라 자세한 말을 할 수가 없어. 곧 내리니까 집에 가서 전화할게.”

“응, 전화 기다릴게, 끊어.”

나는 하마터면 한숨을 크게 쉴 뻔하였다. 나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할머니를 살짝 쳐다보니 얼굴도 곱상하고 성격도 활발하고 일도 잘하게 생겼다. 만일 손주를 키운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하였다. 할머니가 가방을 챙기며 내릴 준비를 하였다. 

“할머니, 이 보따리도 챙겨 가셔야지요.”

“그냥 갈 뻔했네. 신경 쓸 일이 갑자기 생기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 고마워요.”

“참 다른 보따리는 놓고 내려야지요.”

“무슨 보자기?”

“아니, 가슴에 있는 근심걱정 보따리는 두고 내리시라고요.”

“아, 고마워요. 여기 근심 보자기는 던질게요.”

“잘 받았으니 시원하게 가세요.”

떠나면서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귀여웠다. 내 오른편에 앉았던 할머니가 말했다.

“나도 손주 키우는데 정말 힘들어요. 천방지축으로 하루 종일 산으로 들로 쫓아다니며 사고도 치고 그만 힘이 빠져요. 작년에 돌봐준 친손녀는 조용해서 좋았는데, 친손녀가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외손자가 와서 하루 종일 힘들지요. 그렇지만 외손자 때문에 웃을 일도 생기고 또 늙은 할머니를 잘 챙겨줘서 그 맛으로 살지요.”

“70대 중반으로 보이시는데, 그 나이에 쉬지 않고 손자까지 봐주시네요.”

“딱 칠십 다섯 살이지.”

“우리나라 할머니들은 모두 대단하세요. 열심히 일해서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시켜 보내고, 쉬실 나이에 손주를 돌보고, 정말 대단하세요.”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 요즘 자식들은 우리 때보다 풍족하기는 해도 살기가 더 어렵나 봐. 맞벌이한다고 하니, 돌봐주어야지. 살기가 어렵잖아.”

“그렇죠. 풍족하다고 다 만족할 수는 없으니까요.”

“손주가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손주 키우는 맛도 쏠쏠해.”

지하철은 계속 달리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8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어느새 내 왼편에 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핸드폰으로 열심히 화투치고 있었다. 

“내가 치매가 올까 봐 이렇게 밤낮없이 화투를 치지.”

“이렇게 화투 치시다가 내리는 역 잊으시면 안 돼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신사역에서 내려야 돼. 거기에서 친구를 만나는데, 친구 손녀딸이 핸드폰 활용과 AI를 가르쳐준다고 해서 여고 동창생 셋이 모이지.”

“화투 치는 것도 알려주셨겠네요? 멋지세요. 건강하시죠?”

“그럼, 할 일 다 해놓고 시간이 제일 많지. 누워있으면 뭐 해? 집에 혼자 있으면 더  아프기만 하니까 날마다 집을 나오지.”
 “그런데 AI가 뭔데요?”

“AI는 사람이 만든 과학기술이지. 인간과 비슷한 다른 인간도 만들어. 쉽게 로봇 같은 것이지. 그런데 우리가 만든 AI 때문에 인간이 공격을 당할 수도 있어.”

“그래도 김형석 교수는 모든 과학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당연히 그렇지. 앞으로는 AI에 인간 감정에 해당하는 어떤 과학 입자를 넣어 만들면 인간 행위에 대하여 직접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도 한다는 거야.”

“그럼 큰일이네요. 어떻게 윤리와 도덕을 판단하겠어요? 윤리위원회라도 만들어야지.”

“그러기 위하여 먼저 배우는 거야. 써먹든지 말든지 일단 배우는 것이지.”

“그렇게 어려운 것을요? 나이는 어떻게 되시는데요?”

“팔십 둘이지. 우리 세대는 지나갔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지. 나는 다음역에서 내려.”

“할머니, 조심히 가세요. 우리 세대를 위하여 열심히 배워주세요.”

할머니는 손을 흔들며 웃고 떠났다.


나는 오늘 세 할머니를 만났다. 자연히 옛말이 생각났다.

三人行 必有我師   삼인행 필유아사

1번)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2번) 좋은 것은 좇고 나쁜 것은 고치니 좋은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쁜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도 있다.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말이다. 

나는 오늘 지하철에서 깨달은 것으로 3번을 새로 만들어 본다. 

3번) 삼인이 길을 가면 세 분 모두 나의 스승이다. 배워야 산다.

손자 손녀 키우시는 할머님들에게 진심 어린 사랑과 존경을 보냅니다.

할머님이 어려운 가정을 살렸고 나라에 큰 보탬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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