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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평화 Apr 30. 2024

11. 선과 악

아름다운 황혼

 언니는 천사예요.”

 사람은 천사가 될 수 없어나 혼자 있을 때는 더러운 생각을 많이 하지행동은 조심할 수는 있어그러나 우리의 사고는 본능적으로 스쳐 지나가니까 거르기가 어려워우리는 모두 죄인이야.”

 맞아요생각과 행동에는 많이 차이가 나지요.”

 우리에게 육체는 현실이고 어떤 환경에서는 충분히 속물도 될 수 있어.”

 그럼 정신은 무슨 역할을 하나요?”

 정신은 구속이 없으니 자유이지어쩜 진정한 자신이기도 하지만 좋은 생각이 좋은 행동을 만드니까정신도 갈고닦아야 하지. 우리가 육체를 위하여 운동하는 것처럼.”

 그래서 언니가 내 딸의 교육 때문에 저를 인정하신 거군요.”

 맞아교육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까.”

 교육은 살리고 죄는 죽여야 되는군요.”

 당연하지.”

 언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뭐라고 생각하나요?”

 자신과 가족이지내 가족이 소중하니까 다른 가족도 소중한 거지내 딸이 소중하니까 동생의 딸도 소중한 거야.”

 가족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사랑이지사랑이 있으면 저절로 되지그러나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사랑도 할 수 있어희생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지사랑과 희생은 같은 말이야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주지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러니까 희생 없는 사랑은 없고사랑은 모든 것의 완결이라는 말이네요?”

 그렇지.”

 그럼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은 어떻게 남을 사랑하죠?”

 사실 모순이지사랑을 받지 못해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모르는데.”

 맞아요나도 그런 거 같아요가족이 있다고 하나 다 꽝이었어요.”

 나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어아빠와 언니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반쪽짜리였지성에 차지 않았어엄마가 돌아가시고 항상 허전했어.”

 엄마의 빈자리가 컸군요.”

 아빠는 일하느라 같이 있을 시간이 없었고자매들은 다 필요에 따라 행동하지그래서 신의 절대적 사랑이 필요했어언니 따라 교회에 다녔지.”

 필요해서 다녔다는 것이 상당히 사실적이고 이론적이네요.”

 신을 알기 전에는 내 삶에 의미를 몰랐고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했어그래서 자살도 기도했지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몰랐으니까어느 날내가 신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내 안의 모든 부정적 요소는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어내가 변하니까 가족도 이웃도 환경도 다 달라 보이기 시작했어.”

 나도 시도하고 싶어요.”

 조금씩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지나의 부족함이 채워지니까 신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주고 싶었어내가 동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했다면사랑의 나눔이 이유야.”

 그때 이런 것이 조건 없는 사랑이구나했지요.” 

 그거였어나도 거저 받았으니까 그냥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삶은 나누며 행복하게 살았고언니는 죽음의 세계도 극복한 거 같아요.”

 신으로부터 공짜로 받은 구원이라는 선물이 나의 죽음 이후를 보장해 주었어나는 세상살이에 실망할 이유도 걱정할 까닭도 전혀 없었어사후의 문제도 해결됐으니내가 할 일은 기뻐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지.”  

 그래서 언니는 참 단순하면서 힘차게 사셨군요.”

 신이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까. 내가 풀지 못하는 내 죄와 사후의 문제를 그분이 해결해 주었지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내 죄도 함께 지고 가셨어.” 

 구원을 참 쉽게 믿으셨네요.”

 사실죽음 이후의 세계는 보이지 않지만믿는 자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주신다고 했어세상일에 지지고 볶고 하지 말자흘러가는 대로 반듯하게 살자진즉 알았더라면 자살 시도도 안 했을 것이고 행복의 시간이 더 길어졌을 텐데.”

 그럼 성경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오겠네요.”

 아냐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이었어.”

 그럼사랑의 반대말은요?”

 미움이 아니고 두려움이지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왜요?”

 미움도 사랑의 한 종류라고 보니까무관심보다 미움이 사랑에 가까워.”

 맞아요사랑이 없으면 바로 두려움이 와요실생활에서 많이 체험해요.”

 사랑이 없으면 삶에 자신도 사라지게 되지.” 

 얼마 전 엄마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어요엄마는 엄마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었데요나는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고가해자가 없었으니까 서로 잘못이 상대에게만 있다고 주장했고문제들은 계속 이어졌던 것이에요.”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풀리지 않아인간은 악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더러운 세상이 이해가 되고악한 사람이라도 이해가 되지.”

 언니도 나도 악한 존재이겠네요?”

 물론이지더 악한 존재가 아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자기를 갈고닦지. 그것이 없다면 동물이나 똑같지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악의 길로 빠지게 되어 있어.”

 맞아요크리스마스 때 명동에 나갔다가 제가 이리저리로 사람들이 밀어대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우님바로 그거예요. 그렇게 살면 재미도 없어이리저리 치여서.”

 언니는 확실히 신이 있다고 생각하네요.”

 물론이지그러니까 큰 태양과 작은 달이 충돌하지 않고 공중에 잘 떠 있잖아.”

 언니는 창조론을 확실히 믿네요사실 썩은 인간도 많지만 훌륭한 인간도 많아요슈베르트의 송어처럼어떤 동물이 그렇게 아름답고 재미있는 곡을 만들겠어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고신은 인간에게 특별히 의지라는 것을 주었어.”

 우리는 신의 뜻과 인간의 의지 안에서 살아가네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네.”

 그런데 나는 어떤 크리스천은 정말 싫어요.”

 나는 어떤 기독교인하고 웃으며 부드럽게 물어보았다.

 이중적 잣대를 대는 크리스천의 행동들이요.”

 예를 든다면?”

 남에게는 공의와 정의를 외치면서 자신들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괜찮다는 사람들 말이죠.” 

 잘못된 거지하나님은 선인과 악인 모두의 하나님이고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야.”

 그렇죠하나님이 자신의 공유물인 양 남용하고 있어요.”

 “믿는다는 것의 자신감이지만기독교인의 딜레마야.”

 정치인도 이중 잣대를 많이 써요.”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동생은 졸면서 언니 하며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나도 졸면서 그래그래하다가 잠이 들었다온천욕을 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벼웠다동생이 하루 더 묵었다가 가자고 했으나 나는 이쯤 해서 헤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집으로 가는 길에 준비한 쇼팽의 녹턴 20번을 들려주었다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인공이 독일 장교 앞에서 본인이 피아니스트임을 증명하기 위해 연주했던 곡이었다영화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일대기였다

 아름답고 슬픈 녹턴을 연속으로 계속 들었다나도 음악으로 답례를 하고 싶었다. TV 방송에 나오는 팬텀싱어 3에서 라비던스가 부르는 무서운 시간을 핸드폰으로 다운로드하였다. 윤동주 시인이 일제강점기 말기에 쓴 시에 곡을 붙인 무서운 시간이라는 노래를 함께 들었다곡은 김주원 작곡가가 썼다세계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폴란드는 독일의 침공을 받았고우리는 먼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무서운 시간은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로 시작하여 나를 부르지 마오로 끝나는 시다

 시인은 가만히 앉아 시만 쓰는 것이 부끄럽다고 자책도 하였으나후에는 우리의 말을 갈고닦는 길이 독립 운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말과 언어가 있어야 민족이 사는 것이다그래서 일제는 그 어떤 나라에도 없었던 창씨개명을 강행했다창씨개명은 말과 소리와 이름과 정체성을 한꺼번에 모두 빼앗아가는 과정이다너는 조선 사람이 아니고 일본 소속이라는 것을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목숨 내걸고 결사반대했던 것이다말은 곧 그 나라의 얼이었다

 

 우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헤어지기 싫다며 쇼팽과 윤동주를 함께 계속 들었다음악과 문학은 아름답고 슬픈 소리와 세상 이야기로 서로 공존했다그녀가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소리꾼이라면나는 고수와 구경꾼이 되어 연약한 그녀를 영원히 응원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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