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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Nov 27. 2023

영화 <서울의 봄>과 소설 <소년이 온다>

내게 영화 '서울의 봄'은 소설 '소년이 온다'의 프리퀄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서울의 봄> 예고편에서 배우 황정민의 모습이 너무 강렬해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12.12군사반란을 소재로 한다. 근현대사의 암흑기 시절을 다루는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다. 그래서 특별히 새롭다는 느낌의 소재는 아니었다. 단순히 배우 황정민의 분장에 매료되어 영화관으로 갔을 뿐이다.


12.12군사반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학창시설 역사 시간을 좋아했지만 근현대사는 좋아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고려시대 등 몇 백 년 전의 역사는 마치 소설처럼 다가와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험기간에는 마치 역사소설을 정독하듯 교과서를 읽었다. (그렇다고 시험 성적이 좋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근현대사는 좋아하지 않았다.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근현대사. 너무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라 그런지 크게 끌리지 않았다.


그렇게 내게는 역사 속의 흥미 없는 한 챕터에 불과했던 12.12군사반란

물론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감독의 창작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기에 영화의 결과를 이미 알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포를 당한 영화지만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구멍 없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뛰어난 연출력 그리고 현 시대상, 이 삼박자가 조화를 이뤄 단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게 아닐까? 이 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영화관까지 발걸음을 한 것일까?


영화관에서 본 관객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부모님 세대로 보이는 분들부터 나처럼 12.12군사반란을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세대까지. 나는 영화를 본 사람들의 후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서울의 봄>을 검색해 봤다. 그런데 검색 결과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분명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고 이를 증명하듯 관객 동원력도 엄청난데 이쯤 되면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을 덮을 기사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조금 충격받았다. 특히 메이저 언론사일수록 관련 기사가 눈이 띄지 않았다.

순간 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서울의 봄'이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여전히 누군가는 그때 그 사실을 다루는 영화에 불편해하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편해하는 그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물며 이렇게 글을 쓰는 평범한 나 조차도 자기 검열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서울의 봄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미 전 국민이 스포를 당한 영화지만 보는 내내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이 제발 반란군을 막아 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하지만 몇 차례 반란을 막을 기회는 있었지만 개인의 무능함과 이기심으로 번번이 놓치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리뷰를 찾아보았을 때 홧병이 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혈압이 오른다 등 열받았다는 표현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굳이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거금 14,000원을 투자하고 영화를 봐야 하나 고민도 했다. 시간과 돈을 써가며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티켓을 한 번 취소했다가 다시 마음을 바꿔 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올여름 큰 결심을 하고 읽었던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책이 생각났다. 4.19를 소재로 한 소설책이기에  읽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읽을 용기가 없었다.

추천사를 보면 문학평론가인 신형철 님께서 이렇게 말했다.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그만큼 읽을 때 감정소모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무슨 큰 마음을 먹었는지 결국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신형철 평론가님께서 왜 그렇게 추천사를 작성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스타벅스에서 책을 펼쳤다가 흐르는 눈물, 콧물을 멈출 수 없어 책장을 바로 덮어 버렸다.

아. 이 책은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읽어야겠구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장을 펼쳤다. 눈치 볼 사람이 없으니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꺼이꺼이 대성통곡하며 읽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너무 괴롭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결국 완독을 포기하고 책장을 덮었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국가가 무력으로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시민을 잔인하게 폭력으로 대하고 나아가 처참하게 살해했는지 폭로했다.


그렇게 중단된 소설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떠올랐다. 아.. 이젠 진짜 마무리를 지어야겠구나 생각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책장을 다시 넘겼다.

소설과 영화는 모두 허구이지만, 이 두 작품은 단순히 허구로만 치부하기에 실제가 배경이다.


영화를 보면서 4.19가 왜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내게 영화 '서울의 봄'은 소설 '소년이 온다'의 프리퀄이었다. 당시의 군사정권을 장악한 사람들이 어떤 이들로 구성되었는지 보여줬다. 그들은 힘과 무력으로 권력을 창탈한 조직이었다. 그런 이들이라면 시민이 하찮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시민은 인권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국가가 국민에게 그런 못 댄 짓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시대 나는 없었지만 4.19 현장에 있던 시민들에게는 전장이나 다름없었을 것 같다. 그들에게는 전쟁이 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전쟁이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국가 대 그 국가의 소속된 국민,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전두광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동물은 안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길 바란다니까'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회사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결정해 주길 원한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행이든 일상생활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 나를 이끌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두광은 그런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리드해 달라는 말은 나의 인권까지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권력자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까지 박탈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인간을 동물로 규정지은 듯했다.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창작물이지만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상이 어디까지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근현대사는 지금도 계속해서 재평가되고 있으며, 수정하고 고쳐 나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한 내가 뭐라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평범한 사람으로서 나는 몇 가지만 바라본다.

추운 겨울 그리고 뜨거운 여름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리어카에 파지를 싣고 힘들게 끌고 가시는 노인을 보면 내가 도와주지 못함에 가슴 아파하고, 양심이란 게 있으며, 무엇보다 삶에 있어 철학이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잡아 그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세상을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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