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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Jan 15. 2024

터닝 포인트

만약 자고 일어났는데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아침이다.

평일 5일 동안의 노동자 모드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주말인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부터 잠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몸이 평소와 달랐다.

눈이 떠지지 않는 것이다.

분명 자기 전까지 특별한 증상이 없었는데 도대체 잠을 자는 사이에 내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양쪽 눈이 모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눈곱이 왜 이렇게 많이 꼈지?라는 생각을 하며 딱 붙은 두 눈을 아프지 않게 조심스레 천천히 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우 눈이 떠졌는데 나는 바로 두려움과 공포감에 휩싸였다.

양 쪽 눈 시야 전체가 뿌옇게 흐려 보이는 것이다.

마치 시야 바로 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혹은 흰 커튼이 쳐져있는 것처럼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살면서 한 번도 눈이 충혈된 적도, 그 흔한 눈병도, 안구건조증도 없던 나였다. 눈 때문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내가 오늘 아침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되어 세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시야는 다시 깨끗해졌다.

평소 같으면 주말에 평일처럼 일찍 일어나면 잠을 더 청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왠지 다시 자고 일어나면 눈앞이 또다시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아침잠을 포기했다.


검사를 위해 안과를 검색해 보았다. 병원 진료가 가능한 9시까지는 아직 2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일단 나는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글을 쓴다. 앞이 보이지 않던 5분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갔던 생각은 다른 것도 아니고 내 꿈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보지 못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도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언제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지구정복에 대한 나의 꿈, 아직 보고 싶은 자연과 문화가 수 없이 많은데... 절망적이었다.




우리는 일상에 젖어 "언젠가" 혹은 "기회가 된다면"이라는 생각으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게 된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동안 “언젠가, 기회가 되면"이라고 말하며 뒤로 미룬 일들이 영원히 내게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하루는 평범하지만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상을 선물같이 특별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몸에 이상이 없으면 그리고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지금의 이 마음을 잊기 때문에 나는 글로 남겨 본다.




병원을 다녀왔다.

각종 검사 후에 의사를 만났다.

그는 내게 말했다.

안과의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환자의 입에서 "눈앞에 커튼이 쳐져 있는 것처럼 뿌옇게 안 보인다"라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정확히 그 표현으로 말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정밀검사에서 망막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대신 가벼운 염증 때문이라며 안약 2개를 처방해 줬다.

그리고 의사는 혹시 모르니 일주일정도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은 덧붙였다. 그래도 정밀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에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요일 아침이다.

전 날 의사가 아무리 괜찮다고 했지만 심리적으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혼자 독립해 살고 있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날밤 잠을 청하기 전 눈이 보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시리’를 통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이번 일은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경험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애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을 본다는 것에,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그리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다수의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매우 귀하고 특별한 일이다. 나는 이 특별함에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던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외쳤던 ‘여행’과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여행하며 일하며, 그렇게 여행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여행이 되는 그런 삶에 대해 앞으로 현실적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생은 짧다.

무엇보다 건강한 생은 더욱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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