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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희 Feb 11. 2023

All we need is love, London

10월, 영국 런던에서

 


 런던은 참 이상한 도시다. 분명 거대하고 붐비는 도시인데 그 속에 알 수 없는 낭만이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세기를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런던, 또 인생 여행지를 찾은 듯하다. 런던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 처음 와보는 여행지라는 설렘과 기대감보다는 이곳에, 런던 한복판에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서 기분이 이상했다. 교환학생을 시작하고부터 여행이 익숙해져서 설레는 감정이 점점 무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날아가서 땅에 발이 닿으면 그때부터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인지가 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여행에 익숙해지는 내가 싫었는데 오히려 도시에 대한 넘쳐나는 기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다.

Big ben

 빅벤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호스텔에서 머물렀는데 저녁에 가방을 던져놓고 나와서 처음으로 마주한 빅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해가 떨어지고 난 뒤라서 하늘을 오묘하게 장식하고 있는 여러 가지 빛깔과 따뜻한 주황색 불빛을 내뿜고 있는 빅벤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와하고 탄식이 나왔다. 사실 살면서 런던에 간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내 생각보다 빨리 런던에 발을 디딘 것에 대하여 새삼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Regent St.

 런던에 도착했던 날 하루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원래 비를 싫어해서 여행 다닐 때 비 오는 것을 최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흐린 날씨가 영국의 이미지를 그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매끈해진 바닥에 건물들의 형상이 비치는 게 너무 아름다웠다. 회색빛 도시는 금방이라도 나를 마법 같은 세계로 데려갈 것 같았다. ‘우중충하다’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어두운 하늘 아래 빛나는 도시가 분위기를 한층 더 낭만적으로 만들어줬다. 그 뒤로는 계속 맑은 날씨가 이어졌는데 도시의 분위기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나던 황금색의 빅벤도, 비 오는 검은 하늘에서 달처럼 부옇게 빛을 밝히던 빅벤도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젖어 찰박찰박 걷던 순간도, 햇빛을 느끼려고 두 팔을 쫙 뻗었던 순간도 모두.. 생각해 보면 런던의 두 얼굴을 모두 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Primrose Hill

 런던 여행 중 온전한 행복을 느꼈던 순간은 혼자 프림로즈힐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대단한 건 없었다. 그냥 피쉬앤칩스와 맥주를 먹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앉아서 하늘을 바라본 게 전부인데 그 시간이 왜 이렇게 마음에 울림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혼자 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행복’에 대한 생각인 것 같다. 일몰을 보는 그 순간 딱 이런 하늘만 볼 수 있으면 세상 어느 것도 이겨낼 수 있다고 느꼈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별거 아닌 곳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따라 누구나 매일매일 삶을 사랑하게 되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All we need is love
L.O.V.E.(Feat. John Legend) - Melanie Fiona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자, 힘든 일이 생겨도 이날, 이 기분을 생각하면 정말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늘 하나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것 같다. 하늘은 언제나 우릴 비추고 있으니까!

Caffè Concerto Whitehall

 런던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다들 바쁘게 시크하고 도도한 인상을 풍기지만 모두가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정말 신사적인 나라가 맞는 것 같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든 다양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공통점은 먼저 웃음으로 대하면 똑같이 웃음으로 화답한다. 어디서든 먼저 호의를 보이면 더 나은 대접을 받고 그 순간이 모여서 행복한 하루를 만든다. 가끔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더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Chelsea

 이번 여행은 혼자 처음으로 시도해 본 여행인데, 그만큼 느낀 점도 많고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사에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서 사람들 의견에 따르는 게 마음 편한 사람이어서 혼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스스로도 궁금했다. 여행 다니면서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 발길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기분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나는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ㅋㅋ역시 계획쟁이는 어디 가지 않는다고 혼자 다니기 전날 밤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은 나 자신은 계획을 열심히 짜기 시작했다.. 혼자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다른 거에 신경 쓰지 않고 나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도 나의 좋은 점만 보려고 하고 어두운 면은 제쳐두었던 것 같다.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도 나랑 노는 게 너무 즐거워서 시간이 달아나버렸다.

London cityscape by James Cochran

 그럼에도 그 시작에 또 친구들이 함께해 줘서 두 배로 소중한 여행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덴마크 여행 때도 느꼈지만 타지에서 친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큰 동기와 힘을 주는 것 같다. 사실 교환학생이 아니면 같이 시간을 맞춰서 여행 가기 힘든 현실인데 각지에서 모인다는 건 이 순간 밖에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느꼈다. 혼자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다.

시작부터 비행기도 놓치고 스펙터클한 여행이었지만 정말 마음이 든든해진 여행이었다. 

런던에서도 아직 못 가본 곳도 너무나 많아서 나중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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