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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희 Mar 17. 2023

모든 것은 경험으로부터, Barcelona

11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Fabrizzio's Petit Hostel

 스웨덴 교환학생을 하면서 이렇게 아래로 내려올 생각은 없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에 대적할 만한 친구 보러 바셀 간다. 친구가 살고 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옆 동네 가는 것 마냥 편하게 생각했었고 그저 춥고 어두운 스웨덴 날씨에서 벗어나 뜨거운 햇살을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소매치기와 같은 위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나의 무지함과 이제 유럽 사람 다 됐다는 나의 오만함이 이변을 만들어낼지 몰랐다. 글을 이렇게 무겁게 시작하는 이유는 이번 여행에서 소매치기, 정확히 말해서는 도둑질을 당한 일 이후에 느낀 점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 중 많은 시간을 문제를 해결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데 보냈기 때문이다.

Passeig de Gràcia

 사실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후회하고 다시 생각하기엔 늦은 일이었다. 당연히 일차적인 잘못은 뺏어간 사람이 한 것이지만 나에게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 자신은 무언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안전에 있어서도 성립하는 말일까? 이 일을 계기로 용감한 것과 무모한 것은 엄연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경험할수록 배워간다는 게 정말 맞는 말 같다. 직접 겪어보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자신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나의 것들을 아낄 것, 위험을 인지하고 대비할 것. 이렇게 또 한 단계 성장했고, 그 댓가로 모든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잃어버렸다. 

Escales mecàniques Baixada de la Glòria

 하지만 바르셀로나.. 이런 경험을 하고도 여전히 아주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느라 보낸 시간들이 야속하고, 카드가 없어 못 먹은 타파스, 위축되어 있는 나 자신이 떠올라 속상할 뿐..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숙소 테라스에서 햇살을 듬뿍 받는데 햇빛이 이렇게 따뜻했는지, 매일매일 해가 비치는 것이 삶에 얼마나 큰 에너지를 주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서서 온몸에 햇살을 받으면서 살갗에 닿는 온기를 느꼈다.

Casa Batlló

 바르셀로나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가장 처음 까사 밀라와 까사 바트요라는 시내 중심에 있는 건축물을 만났는데, 보자마자 바다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의 모습을 닮은 아름다운 곡선, 백사장을 연상하는 건물의 색깔 그리고 조개껍질과 산호초를 잔뜩 박아 놓은 듯한 다채로운 타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또 그다음 날 봤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도 역시 거대한 모래성을 연상시켰다. 그동안 오래된 건축물을 보면 어떻게 지어졌을지 감히 상상도 안 가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없었는데, 1882년부터 지금까지 공사 중인 성당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시간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 안토니 가우디
Sitges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르셀로나 근교에 위치한 ‘시체스’라는 도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달리는 열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다 보면 좁다란 골목길이 모두 바닷가로 연결되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에 도착한다.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과 야자수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 연신 셔터를 눌러 카메라에 담았다. 보통 디지털카메라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꺼내들곤 하는데 시체스에서 정말 많은 순간을 담았다.

 또 가장 좋았던 순간은 몬주익 공원에 올라가서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맥주 한 캔 했던 순간이다. 생각해 보면 매 여행 때마다 항상 어딘가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던 순간은 항상 가장 좋은 순간으로 꼽히는 것 같다. 이곳에 있음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홀로 음악을 들으며 한눈에 도시를 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진짜 행복은 별거 없다.

Plaça Reial

 이번이 교환학생 중 타지에서 소중한 친구를 만나는 마지막 기억이 되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친구라는 존재가 얼마나 든든하던지, 다 잃어버린 못난 나를 위해 자신의 일처럼 나서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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