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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es Blog Dec 17. 2022

운수 좋은 날 현진건 지음

북리뷰

겨울비가 내리는 어느 날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오랜만에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십 여일을 공칠 때도 있었지만 아침부터 삼십 전오십 전 짜리 손님들에 이어 끊이지 않는 손님들 덕에 큰돈을 만지게   날이다오라질 년으로 언급되는 아내는 3살짜리 개똥이를 두고 앓는 중이다아픈 아내의 빰을 때리고 자신의 눈시울도 뜨끈거린다설렁탕 국물을 마시고 싶다는 아내를 야단치고 못 사주는 마음이 시리다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행운 겁나는 김 첨지모든 일과를 마치고 3원이라는 큰돈을 벌고 술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설렁탕을 사 들고 집으로 갔지만아내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죽어있다

 

…. 그러자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신다문득 김 첨지는 미친 듯이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먹지를 못하니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김첨지는 어릴 때 읽은 어린이용 도서인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아내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아파  먹지 못하는 아내의 뺨을 때리고욕지거리를 하며돈이 생기면 술을 사 먹는다. 


아내가 제발 일을 나가지 말아 달라고, 나갈 거면 일찍 들어와 달라고 애원해도 운수 좋은 이날에 돈을 버는 신나는 기분에 취해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친구와 거나하게 술까지 마신다


일하는 중간중간에 느끼는 일말의 가책뒷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지만 부러 떨친다김 첨지가 아내에게 알뜰살뜰 다정한 남편이었다면 내가 서늘하게 저릿저릿한 가슴을 오랫동안 쓸어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 첨지가 아내를 학대하는 듯한 모습은 아마 자기 자신을 향한 비난이요아내가 차마 하지 못하는 원망이었을 것이다쌀밥도 아닌 조밥을그것도 며칠 만에 먹는 곡기를 소화도 못 시키는 아내는사실 능력 없어 밥을 굶기는 김 첨지 자신이 고스란히 투영된 모습이며,  그렇기에 김 첨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래서 애꿎은 아내에게 욕을 하고아내의 뺨을 때리며 자기 자신의 눈시울도 뜨거워진 것이다


1원을 벌었을 때그리고 인력거가 자기  앞을 지나게 되었을 때본인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어디서 들려오는 듯한 아이의 울음환청처럼 느껴지는 아내의 거릉거릉한 가래 끓는 소리에 인력거를 내팽개치고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고모처럼의 운수 좋은 날을 김 첨지는 놓칠 수가 없다아니 그보다그리 좋아 보이지 않던 아내의 상태가 머리끝에 차가웁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을 때 자신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예감에 그곳을 일부러 떨치고 지나가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의 한국은 절대 빈곤이 극심했던 식민 치하였다 시대 사실주의 책들을 읽어보면 많은 경우 너무나 살기 어려워 아내에게 매음을 시키거나딸을 첩으로 팔아먹거나이처럼 아등바등 살아도 목숨 부지하기 어려운 시대상을 만나곤 한다


다양한 주제와  재미나는 소설은 꿈도 못 꾸고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하고한숨이 절로 나는 광경들이다하지만 그리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삶을 쉽게 포기하거나 너무 지친 나머지 자신을 내팽개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빈곤과 궁핍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살아가거나심지어 초연하기까지 하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죽어있는 아내를 보며 슬퍼하고 울던 김 첨지는  설렁탕을 어떻게 했을까?   생각에는 분명 3살 먹은 개똥이를 먹이며 내일을 살아갈 궁리를 했을 것 같다너무나 사실적으로 김 첨지를 안팎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나는 김 첨지가 맘속으로 울고겉으로  욕을 해대도개똥이를 먹이고업히고인력거에 태우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렇게 억수로운이 좋은 것은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두렵다복권에 당첨될 만큼의 행운이 있다면 그와 같은 확률의 불운도 똑같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에게는 앞으로 운수 좋은 날이 좋게 느껴지기는 어려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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