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67세 후두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강골의 사나이였다. 젊은 시절 농사일로 단련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다. 건설 현장에서도 힘이 좋은 잡부로서 흡족한 역할을 해냈다. 어느 해인가는 사장의 눈에 들어서 신축 중인 건물을 지키는 경비 겸 잡부로 근무하면서 숙식을 제공받기도 했다. 그만큼 힘이 좋았고, 유순하면서도 때로는 호탕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노동자들이 새참 등 시시때때로 마셔대는 소주나 막걸리 같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부리기도 좋고 마음씨도 착한 사내였다.
독감이 유행한 해에도 무사통과했다. 후두암 증세로 목소리가 잠기기 전까지 그야말로 건장한 남자로 60대 중반에 이르렀다. 그러나 가난한 농부였던 가장이 갑자기 도시 생활을 시작했고, 온갖 시련이 찾아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초였을 자식의 죽음을 목도하며 유일하게 위안이 되어 준 것은 담배였다. 그러나 4~50년을 즐긴 담배로 후두암이 발병하며 또 한 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 이상 위안을 삼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인천의 한 교육지원청에서 학생 수용계획 업무를 하느라 밤샘 근무를 자주 하던 2004년 초, 아버지는 종합병원에서 후두암 진단을 처음 받았다.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병원을 방문했고, "암일지도 모르니 조직 검사를 하자"라는 의사 이야기를 접하면서 고민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아버지에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그러나 검사 결과를 보러 간 당일, 별생각 없이 아버지와 함께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가 망설일 틈도 주지 않았다. "환자분은 후두암 3기입니다. 후두 절제술을 빨리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아버지와 나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나는 무조건 서울로 가서 재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원과 의사의 실력에 따라서 오진도 있을 수 있고, 인천과 서울의 의료기술 수준 차이가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 큰 병원의 홍보과에 근무했던 친구와 협의하여 후두암 권위자가 있다는 병원에 입원했다. 이어서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 준비 차원에서 시행한 항암치료로 아버지는 너무 힘들어했다.
예나 지금이나 항암치료의 후유증은 견디기 힘들기로 유명하다. 항암치료 회차가 증가하면서 머리가 빠지고, 구역질이 계속되었다. 수술 예정 날짜를 2주 정도 앞두고 아버지는 선언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퇴원해서 그냥 살다가 죽겠다."
막무가내로 버티는 아버지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하지 않아 결국 퇴원 조치했다. 그러나 몇 달 후 다른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으면서 당시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으나,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쉬운 마음만 남았다.
집에 계시면서 복어알이 후두암에 좋다는 말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겠다. 복어는 내장에 독성이 있고, 내장을 먹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수산 시장에서 복어알을 구해 말렸다. 두어 달 동안, 가루로 만든 복어 알을 물에 타셔 마시면서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뿐이었다.
아버지는 두 달 동안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수술을 받아야 산다.' 이 결론을 스스로 내리셨다. 입원할 병원도 본인이 선택하셨다. 서울의 모 병원에 입원했고, 후두 절제술을 6시간 넘게 받았다. 1년 정도를 서울의 병원에 오가면서 방사선 치료까지 받으면서, 후두가 사라져 말씀은 잃어버렸지만 거의 완치되었다. 이후 12년을 더 사시다가 79세에 돌아가셨다.
건강에 있어서, 나는 작년이 특히 힘든 한 해였다. 마라톤, 산행, 자전거 등 여러 운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병원에 자주 드나들었다. 빈혈기가 있었고 무릎 통증도 찾아왔다. 그래서 최근에는 생활 습관 두 가지를 수정 중이다.
하나는 저녁 6시 이후 안 먹기와 12시간 공복 유지를 10개월째 실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나 홀로 맨발 걷기를 3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공복 유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신체적 변화가 수반되었다. 가장 큰 것은 체중 감량이다. 작년 대비 4~5kg이 줄었다. 맨발 걷기의 장점도 여럿 느끼는 중이다.
이렇게 건강을 챙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기반을 만들어준 나의 아버지가 고맙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