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날

- 아버지는 헌신적인 삶 그 자체였다

by 조희정

음력 8월 3일은 아버지 제삿날이다. 1937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셨다. 예상컨대, 막내아들로서 부모님(나의 조부모) 사랑은 듬뿍 받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뿐, 배움의 기회를 전혀 부여받지 못하셨다. 우리의 행복한 인생의 핵심적 조건 중 하나는 배움 활동이다. 아버지에게는 이 배움의 기회가 전무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당연하지만, 평생을 농부로, 건설 현장의 막노동자로 살다가 가셨다. 들은 바에 의하면, 나의 할아버지는 산골 동네 사람들에게 한약 처방을 해주고 행세께 나 하며 사신 듯하다. 그밖에는 조부모님의 삶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기를 지나며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을 암울한 날들을 겨우겨우 버티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아쉬운 것은 할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교육관이었다. 조부모님은 자식들에게 학교를 통한 배움보다는 농사일이 더 중요하다며 아들 셋 중 어느 누구도 학교와 연을 맺을 수 없게 인도했다. 책과 교사 등을 통한 더 많은 배움으로 더 많은 삶의 기회가 필요했지만, 젊었던 나의 아버지는 그런 기회를 전혀 누리지 못한 채 고향 땅에 묶이고 말았다.


아버지는 조부모님의 그늘에서 20대 후반에 독립하셨고, 50대까지 손바닥만 한 산자락 땅을 가꾸느라 온 힘을 다했다. 그러면서도 학교에서의 배움을 전혀 갖지 못한 아버지였지만, 자식만은 당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며,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려고 노력했다.


사춘기 한때는 아버지의 삶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철이 들면서 헌신적인 삶을 알게 되었다. 살아생전에 조금 더 감사하고 잘 모셨어야 했다. 그러나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하급(9급) 공무원이 된 나는 4인 가족의 가장으로서 평범한 생활의 유지도 벅찼다. 2016년, 상당 기간을 병마와 씨름하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에게는 죄송할 뿐이다.


어젯밤, 제사를 마치고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과 술 한잔 하며 아버지를 추억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새벽녘에 눈을 뜨면서 한 생각이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최소한 나의 아버지만큼은 헌신할 것이며, 현실이 조금 버겁더라도 잘 견딜 것이다. 배움이 전혀 없었던 아버지도 해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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