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 3진 아웃의 고단함을 이기게 해 주다

by 조희정

소리를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미소는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지 수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


2013년 처음으로 승진 시험을 봤는데, 교육학에서 생각보다 점수가 낮아 승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합격자 발표일, 이상하리만큼 아버지를 뵙고 싶었다. 이미 병상에 계신지 오래고, 후두 절제 수술로 말씀도 못하셨다. 가까스로 필답을 주고받는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미소를 보면 신기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괴로운 날이면 습관처럼 아버지를 뵈러 갔다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잠깐 얼굴을 뵙고 나오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부모님의 의미는 다 자란 성인이어도 어릴 때와 다르지 않고, 부모님은 존재 그 자체로 위안이구나!'. 시험에 낙방한 날 저녁에도 아버지의 미소를 보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고, '다음 시험에 합격하면 되지'라며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말씀을 못하시니 무엇인가를 말로 주고받을 수 없다. 아버지는 그저 미소를 머금으면서 들어주셨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여 주신다. 그러한 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다행이고, 이렇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승진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더욱 마음을 다하여 준비하리라'


2015년 본청으로 옮겨가면서 하루라도 빨리 승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세상은 내 의지와 다르게 돌아갔다. 승진에 새로운 제도(역량 평가)가 도입되었고, 연거푸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2017년 결코 가지 말아야 할 3진 아웃의 길로 말려들었다. 이후 좌절과 절망, 자존감 추락으로 견디기 힘든 시기가 무려 5년이나 계속되었다. 이 기간에 아버지의 생사도 갈렸다. 2016년 세 번째 시험을 한 달 앞두고 고인이 되셨다.


나는 아버지의 미소로 위로를 받았다. 긴장과 스트레스가 넘치던 본청 생활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매진할 수 있었던 것, 노무 업무 담당 시 근로자들의 온갖 욕설과 험악한 분위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 몸과 마음이 너무도 지치고 힘들었던 3진 아웃의 좌절도 아버지의 미소를 떠올릴 수 있었기에 극복 가능했다.


2019년부터 또 다른 승진 제도(실적 평가)가 도입되었다. 절치부심한 본청 생활을 끝내고 2021년도 시험에서 가까스로 승진자 대열에 합류했다. 2011년부터 승진을 준비한 이후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이 지루한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힘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의 미소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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