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치지 못한 한글로 무던히 애를 쓰다
아버지, 한글로 이 세 글자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쉬움의 느낌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글을 익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반면, 평생 동안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분들, 특히 자신의 문맹에 대해 오랜 기간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죽을 때까지도 어찌하지 못한 아버지 세대 몇몇 분들의 느낌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해가 1446년이니, 2023년 기준으로 577년이 지났다. 아버지의 삶은 1937년에 시작되었고, 이후 79년을 사셨다. 한글 반포 500년에서 2년이 모자란 해에 태어나셨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한글 정도는 충분히 깨쳤을 것이다.
이로 인해 어느 날, 시골 청년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만한 글 또는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들어줄 만한 몇 줄의 글이라도 읽어내셨더라면, 아버지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자유롭게 읽고 쓰셨다면, 평소 성격으로 짐작하건대, 나처럼 수필이나 시를 쓰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부질없게 되었지만, 후두암 수술 이후 목소리를 잃어버린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한글을 익혀드렸어야 했는데..... 왜 조금이라도 젊은 날, 아버지에게 한글 공부를 시키지 않았지?'라는 후회를 오랫동안 했다.
주말에 아버지를 뵙고 안부를 물으러 가면, 아버지는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어 내민다.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자의 형태로 답답한 속내를 적어내려고 무던히도 애쓰셨다. 아버지가 내민 수첩의 글을 보면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묻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겨우 이해하곤 했다.
수첩에 적어 주신 글을 읽어내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으리라. 두 아들을 기르는 나는, 그들 나이 10대 이후부터는 무엇인가를 글로 전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편지로 전한 글을 아들들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질책하지는 않을 듯하다.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 나를 탓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아버지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70대 중반 이후부터는 수첩에 글자를 적어내는 일도 포기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이로써 소통할 수 있는 물리적 수단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이후 계속된 삶에서도 아버지와 내가 불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부자간에 쌓아온 연대감과 정서적 공감 때문이리라.
목소리나 글로 직접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순간 또는 특정 상황에서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가족이란 이런 것! 말로 해야만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는 글자를 제대로 읽거나 쓰지 못했다. 그러나 시골에서 50여 년, 도시에서 30여 년간 자식을 위해 살아온 길, 그 길에서의 배움은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자식의 앞날을 예비하리라는 집념과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