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꿈이 뭐야?"
"꿈이야 많지."
"그 중에 네가 가장 하고 싶은게 뭐야?"
"아직 잘 모르겠어."
"그럼 네가 가장 잘하는 건?"
"지금도 계속 찾는 중이야."
"어떻게 찾고 있는데?"
"그런건 내가 알아서 해. 그러는 넌 꿈이 뭔데?"
"난 아직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는 내 꿈 같은거 가르쳐주고 싶지 않아."
"치사해."
그녀 앞에서 내 의견을 말하고 싶을 때는 한번에 몰아서 해야 그녀가 화내지 않기 때문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넌 너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난 네가 자신에 대해 잘 알았으면 좋겠어. 니가 좋아하는 건 뭔지, 잘하는 건 뭔지."
"그걸 어떻게 찾아?"
"그건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야. 깨끗한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면 서서히 검게 변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에 검다고 느끼게 되는 거지."
"그럼 일단 뭐든지 많이 해봐야겠네?"
"뭐 그런 방법도 있겠지."
"근데 그걸 언제 다 해봐. 세상에 할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꼭 다해보라는 말은 아니야."
"그럼 뭐 어쩌란거야?"
나는 그녀의 짜증섞인 말투에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사실 그녀를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나 역시 아직 꿈을 향해 걸어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조금 뒤쳐진 그녀에게 빨리 따라오라고 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네가 볼 땐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 거 같아?"
"노는 거 좋아하고 막말을 잘하는거 같아."
"넌 참 맞는 걸 좋아하고 맞기도 잘하는 거 같아."
그녀의 주먹이 내 가슴을 강타했다. 사실 그렇게 아프지 않았지만 늘 그랬듯 아픈척을 해준다. 그래야 그녀가 좋아하니까. 한참 가슴을 문지른 후 관심없는 척 딴짓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든 해보라는 말은 말이야. 그냥 무작정 해보라는 소리는 아니야. 일단 목적지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면서, 그 곳에 닿기 위한 방법으로 뭐든 해보라는 거지...길을 모르면 물으면 그만이고 길을 잃으면 찾으면 그만이야. 중요한건 목적지가 어디인지 잊지 않는 거 아닐까?"
"좀 더 쉽게 말해봐."
"이건 내가 백번을 말해도 넌 이해 못해. 내가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 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그 기분은 아무리 말해도 모를거야."
"그래 너 잘났다. 나는 길 잃은 어린양이다. 어쩔래!"
"너무 걱정 하지마. 네 옆엔 항상 길을 가는데 필요한 나침반같은 존재가 있으니까 말이야."
"시끄러. 넌 그냥 길가다가 심심해지면 듣는 라디오 같은 존재야."
그녀는 집에 가는 길에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또 한층 더 성장하겠지. 난 나로 인해서 점점 변해가는 그녀가 참 좋다. 그녀에게 물들어 가는 나도 참 좋다.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이들을 위한 시
너에게 물들다
-송지범
내가 걸어가는 세상이
너로 스며든다
한 걸음에 들꽃
두 걸음에 너의 입
세 걸음에 바람
네 걸음에 너의 눈
다섯 걸음에 파도
여섯 걸음에 너의 손
일곱 걸음에 또 너
걸음마다 남겨지는 발자국 위에
네 모습 꾹 눌려 함께 찍힌다
이제는 걷지 않아도
온통 흐드러진 너로 둘러싸인다
세상이 노을빛에 물들어 갈 때
나는 너라는 빛에 밤새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