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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Day Jan 13. 2023

 110cc 스쿠터로 1,700km 전국일주

서울에서 만리포까지의 여정


빗길을 뚫고 자유를 향해 출발하다

스쿠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출발 하려는 순간, 가장 먼저 나에게 집에 그냥 있을까라는 생각을 시험하게 만든건 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씨였다. 여행 첫날이 가장 설레고 흥분되는 순간이건만 나에게 출발은 걱정의 시작이었다. 평소였으면 가까운 커피숍에서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사람 구경이나 글을 쓰거나 할텐데, 여행을 가자니 마음이 흔들렸다.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을 집 근처 공원에서 먹으며 잠시 고민하는 순간, 공원에서 어떤 중년의 남자가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아이들을 안챙길거면 뭐하러 나왔냐는 고함소리를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다. 

순간 자유롭고 싶다는 남자의 영혼이 나에게 달라 붙었는지 나는 편의점에서 비닐우의를 사입고 지체없이 스쿠터를 출발시켰다. 그래서 원래는 이름이 없었던 내 스쿠터에 '조나단'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조나단은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자유로운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에서 따온 것이다. 마침 하얀색이기도 하고,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스쿠터는 나에게 자유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제법 잘 어울렸다. 조나단과 나는 마치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앤디 듀프레인이 비오는 날 감옥을 탈출하는 기분으로 빗길을 헤치고 나아갔다.



서울 강북에서 출발한 여행의 첫 행선지는 오이도였다. 오랜만에 서쪽바다를 향해 달렸다. 비가와서 시야가 가리고 우의를 입었지만 바지는 다 축축히 젖어들었지만 달리는 기분은 상쾌했다. 사실 오이도는 딱히 가고 싶었던 곳은 아니지만 서울에 살면서 다들 한번 정도는 가봤다고 하는데 나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잠깐 들렸다 가는 코스였다.

오이도 전망대에 도착해서 잠시 비를 피하고 주위를 감상하다 다시 궁평항으로 출발했다. 원래 목적지는 왜목마을이었지만, 해안도로로 가고 싶은 마음에 목적지로 정했다. 가는 도중에 두번째 시련이 내게 다가오고 있음을 전혀 감지 하지 못했다. 가는 도중에 오일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도중에 조나단이 멈춰버린 것이다. 가장 가까운 주유소는 1km정도 떨어져 있었다. 결국 무거운 조나단을 끌고 주유소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행 초보라서 여분의 오일을 항상 지녀야 한다는 스쿠터 여행 경험자인 후배의 말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항상 오일을 담은 페트병을 소지하고 다녔다. 덕분에 두번째로 멈췄을 때는 예비 연료로 주유소까지 잘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번째 시련이 다가올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왜 시련은 항상 첫째날에 날 시험하듯 생기는건지 모르겠다. 빗길 운전에서 브레이크를 잡으며 핸들을 틀다가 그만 뒤에 있는 텐트와 매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심하게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텐트덮개와 장갑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왼쪽 팔꿈치와 다리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다. 너무 아팠지만 교통에 방해될까봐 오토바이를 인도가까이 끌고와 혼자 아픔을 달래었다. 나중에 스쿠터 여행 베테랑 후배에게 물어보니 타이어를 새로 갈아서 코팅이 다 안벗겨져서 그런거라고 했다. 진작 얘기좀 해주지 독두꺼비 같은 녀석.



정말 집에 갈까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유에 대한 댓가 치고는 냉혹한 현실의 벽이 내 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오늘 밤은 숙소를 잡아 다친 상처와 지친 심신을 달래기로 하고 다시 조나단에 몸을 실었다. 다음 행선지는 왜목마을 이었다. 일몰 풍경이 멋지다고 해서 갔지만 비가와서 그런 경치를 볼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운치는 있었지만 해가 지고 있었기에 오늘 마지막 행선지 만리포로 향했다.



만리포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두컴컴 해졌을 때였다. 조금 저렴한 펜션을 잡고 신변 정리를 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괜찮아 보이는 호텔의 카페로 들어섰다. BAY breeze cafe 라는 곳이었는데 내블로그 이름과 비슷해서 왠지 정이 갔다. 밤 바다에 취하기에 좋은 커피숍이었지만 아쉽게도 10시까지가 마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첫째날의 여정은 끝이 났다. 이동거리는 250km정도를 달려왔는데, 여행 중에 겪은 에피소드는 여기서 다 겪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여행 일정 중 가장 짧지만 무게감 있는 여정이었고, 기억에 많이 남고 고민도 많이 했던, 그렇지만 끝내 헤쳐나갔던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아침에 길을 나설때의 만리포의 확 트인 모습이 진정한 자유여행임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write in 2017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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