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
우연히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이러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세계 80억 인구 중 한 명의 이름으로, 72시간 동안 실제 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다른 사람으로 살 기회라고?’ ‘ ‘이거 좀 대박인데?’
타인이 되어본다는 것. 장래 희망을 정할 때에는 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걱정이었다. 고운 유니폼을 입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승무원,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구호활동가, 삶을 정제된 글에 담아 위로를 전하는 작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를 누비는 연예인까지. 요즘이야 프로N잡러라며 여러 가지 일을 겸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장래 희망은 딱 하나만 정해야 하는 것인 줄만 알았으니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아’의 질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장래 희망을 정하는 일이었다. 그중 하나를 직업으로 택해 살고 있기는 하지만,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이 생긴다고 해서 다른 일에 대한 궁금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고, 이러한 이유로 책에서는 에세이를, TV 프로그램에서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노래에서는 자작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무슨 요일인지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될 만큼 반복되는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돈, 그리고 용기가 부족할 때, 심지어는 잠깐 타인의 시선 속에 자리하고 싶지 않을 때까지도 책장만 펼친다면, TV 전원만 켠다면, 재생 버튼만 누른다면 그곳이 어디든 다른 사람의 삶에 풍덩- 뛰어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마침 시청했던 회차는 방송인 박명수가 치앙마이에서 솜땀을 파는 ‘우티’로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더운 날씨에 우티(박명수)는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솜땀을 겨우 만들었지만, 장사는 잘되지 않았고, 심지어 돈을 받지 못한 손님도 있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가 자기 아내인 잼(우티의 아내)과 대화를 나눈다.
“돈도 받지 못하고 음식을 그냥 나눠준 것인데 괜찮아? 이렇게 장사하면 우리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어.” 그러자 잼은 대답한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만큼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눠주다 보면 물질적으로 부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내적으로 부자가 될 수는 있죠.”
우티는 잼과 대화하며 많이 가져야만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데뷔 이래로 휴식기 없이 방송일에 열중한 결과,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알아볼 정도의 성공 궤도에 올랐지만 그만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을 테니 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여전히 꿈 많은 어린이처럼 흐뭇한 상상을 한다. 넘실대는 상상의 나래 속에서 감성 브이로그로 실버버튼까지 받은 유명 유튜버가 될 때도 있고, 조용한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 주인이 되기도 한다. 프로그램에서는 솜땀이 나왔지만, 내게 솜땀은 그저 솜땀이 아니었다. 에세이와 다큐멘터리가, 음악과 영화가, 그리고 대화가 솜땀을 대신하여 문장 안에 자리했다. 많이 읽지도 잘 읽지도 않지만 계속 읽고 싶어 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뭘 그렇게까지 읽어?’라고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삶을 나눈다는 것은 나 자신과 긴밀히 관련되었거나 목표한 것만을 찾느라 좁아진 시야에 서로의 시야를 더 해준다는 것이었고, 알지 못하는 더 넓은 세계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고, 결국 우리의 삶이 각각 따로 위치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무엇도 아닌 내가 그 무엇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알지 못하는 이면 너머의 것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던 것이 아닐까. 태어나서 바다를 본 적 없는 아이에게 소금물을 찍어먹게 하는 것처럼. 비록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는 방법은 아닐지라도 내적으로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타인이 된다는 것은 꼭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