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상상, 기억과 착각 사이
제법 두툼한 니트를 입었지만, 그 사람의 품은 따뜻하다. 풋사랑처럼 뜨겁던 열기는 니트의 얼기설기한 섬유를 지나며 적당히 식어서, 마침내 훈훈한 온기로 도착했다. 우리는 햇살이 남아있는 한낮에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잠을 깨우겠다며 아메리카노를 시킨 나는 연신 재잘거리기 바빴고, 라테를 시킨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종알거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선선한 저녁이 되자 우리는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골목 사이를 하염없이 걸었고, 밤하늘 아래 별빛 같은 반짝임이 만개할 때 애틋한 손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집에 온 순간, 꿈이었다.
깨지 않을 수 있다면 잠시 더 머무르고 싶을 만큼 짧은 행운이었다. 가슴과 왼손에 닿은 그의 온도가 채 식지도 않았는데, 비눗방울처럼 부풀다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꿈이라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꿈은 꿈이라는 것을 알아챈 순간 깨어나기 십 상이고, 행복한 꿈일수록 같은 꿈을 다시 꾸게 될 확률은 희박하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켜 SNS에 들어갔다. 간밤 사이 자신의 소식을 업데이트한 사람들 너머로 그가 보였다.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고 가끔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마주치던 것뿐이었다. 다만 조금 특별한 것이 있었다면 평소 닮고 싶었던 삶의 모습에 그 사람이 가깝게 자리했고, 남들은 독특하다고 말하는 이상형에 들어맞는 구석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동경으로 여겨지던 마음이 편안함을 넘어, 좋은 감정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적어도 꿈에서는 그랬다.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지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그는 내게서 연기처럼 사라지고도, 나비처럼 날아가버리고도, 여전히 웃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선명했던 물감이 마른 뒤 한 겹 흐려지는 것처럼, 생생했던 꿈결의 감촉은 어느새 옅어지고 생경한 헛헛함만이 느껴졌다.
백일몽(白日夢)은 대낮에 꿈을 꾼다는 뜻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의미한다. 꿈을 꿀 때면 나는 주로 백일몽을 꾸었다. 말이 안 되는 것만은 아니면서도 정작 나의 세상과는 닿지 않는 이야기가 많았기에, 깨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현실과 꿈결을 분간하지 못했고 뒤늦게 꿈이 빠져나간 자리를 아쉬움으로 채우기 바빴다. 꿈에는 거짓이 없었기에 공상인 동시에 환상으로 마주했던 것은 남모르게 마음을 품던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열광했던 연예인, 오랫동안 갖고 싶어 한 물건, 모른 체하던 꿈,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의식의 서랍에 넣어 놓았던 욕망의 부피는 날마다 조금씩 자라 무의식의 서랍까지 차지했다. 아니다, 무의식 아래에 모이던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의식의 경계를 뛰어넘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계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조차 가름하지 못하는 나는 좋아하는 것이 꿈에 나온 건지, 꿈에 나온 것을 보고 좋아하는 마음을 의식하게 된 것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이 닿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나약한 겁보는 단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다. 꾸밈없는 것이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한 욕망을 직면하는 것에는 보통 크기의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특히 당장 가질 수 없는 것을 계속 탐내거나 조바심으로 동동거릴 나를 볼 자신이 없다. 잔잔한 수면이 돌멩이 하나로 출렁이게 되는 것처럼 편안하던 관계가 잠깐의 파동으로 요동칠 것을 차마 견딜 용기가 내게는 없다. 내내 머무르고 싶어 굼뜨게 옮기던 꿈속 발걸음과 달리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복잡한 생각을 서둘러 의식 깊숙한 곳으로 보내고, 현실의 걱정을 누름돌 삼아 위를 덮는다. 비록 한낮에 스친, 깨고 나면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할 희미한 기억이지만, 헛된 희망으로 부풀지 않도록 그리고 더는 흐려지지 않도록 꽁꽁 숨기고 싶은 달콤한 백일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