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시간 동안 원인을 알아야, 원인을 바꾸어야만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믿어왔다. 어쩌면 내가 생각이 많아지게 된 계기 또한 원인을 밝히기 위함이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모든 일에 원인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적어도 내 힘으로 알아낼 수 있는 원인에 한계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우울증과 식이장애를 앓게 되었는지, 왜 미친듯이 공부를 했는지. 그저 열심히 하고 싶었던 열정 그 뿐, 그 이상으로는 원인이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과연 그것을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열정이 잘못 된것은 아니니. 과한 열정은 물론 내게 악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더라.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굳이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에, 특히 모든 감정에 원인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여기서 주목할만한 포인트는 바로 '과거'에 있다.
현재라는 시점에서 특정 일 또는 감정이 생겼을 때, 즉시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것은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고 옳다 여겨지는 일이다.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설사 그것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계속밝혀내려고 해도 밝혀지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소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과거의 일이 현재까지 일어나고 있고 바뀌는 것이 하나 없어 답답하고 우울하다면, 원인말고 결과만 바꿔보자.
감정이라는 것은 결과가 바뀜으로 인해 원인이 찾아지기도 하는 것 같다.
현재의 우울함을 '그래도 괜찮음', '그럴 수 있지' 로 바꾸어보자. 내가 질질 끌어왔던 미지의 사건에 잠시 마침표를 찍고 그 다음을 더 좋게 바꾸어 보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연속적이기에 그 미지의 사건을 잠시 뒤로 한다고 해서 그것이 영영 잊혀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 쉬운 다른 사건에 신경쓰다보면 그 미지의 사건에 대한 증거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우울함을 행복 또는 삶의 의지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잠시 생각을 비우고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모두 개별적으로 보거나 개별적인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멈추어 보자.
만약 정말 그 사건에 내가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이유의 원인이 있다면, 그 원인은 시간이 지난 뒤 어떤 모습으로든 또 발현될 것 이다. 그럼 내겐 알아낼 수 있는 자료가 더 생기는 셈이다.
우리의 삶은 개별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여정임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