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내게 힘들었던 그 해는,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해였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재미있었던 해라는 사실이다.
누군가 내게 고통의 반댓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 단어는 행복이겠지만 결코 행복했던 시간은 아니었기에, 행복보다는 재미로 이름 붙였다. 고통과 재미는 나란히 설 수 있는 개념이었다. 그와 동시에 행복이 곧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재미'를 느낀 포인트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시점, 하나는 그 시점을 지나온 현재이다.
과거의 내가 느꼈던 재미는, 다양한 것들을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공부만 하다가 멈춤을 선언하고 회복하기 위해 다시 사람을 만나고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분명 고통도 존재했지만 분명 중간중간 즐거움의 순간들도 찾아왔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우울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했었고, 그 고통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에 내가 느낀 찰나의 즐거움은 쉽게 증발했던 것 같다.
공부를 하면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래서 잊고 있었던 즐거움을 그 시간들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되찾아가기도 했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내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내 과거에 재미를 느낀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 공존한다는 것이 참 웃기면서도 재밌다.
불행은 이야기를 안고 오나 보다. 무한할 것 같았던 불행은 어느새 불행의 고유함으로 무채색인 줄 알았던 내 삶은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졌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대로 이뤄진 걸 지도 모른다. 내게 지옥같았던 2023년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 그 어떠한 순간보다 다양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리고 삶의 방식에는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의 답이 있을 뿐이다. 아플지라도 발전하고 싶은 사람은 도전하고, 아프고 싶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며 살고 싶은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문다.
그저 본인의 선택이 선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