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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Jul 01. 2023

똑소리 나는 아이

내 어린 시절은 똑소리 나지 못했다

  

1학년 J은 여간 똑소리 나는 게 아니다.      


 수업을 하러 가면 선생님이 시키는 말에 대답만 하는 친구도 있고,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 친구도 있다. 시키는 말에 대답만 하는 친구는 토론 논술수업이 힘들 것이다. 대답조차도 단답형으로 끝내고 고개를 끄덕이는 등으로 말하는 것에 관심 없어하는 친구들이 있다. 반면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친구는 책상 앞에 앉으면 몸을 끄덕끄덕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답을 할 차례가 되면 더욱 끄덕거리거나 손을 움쩍거 린다. 그 또한 대답에 대한 두려움의 한 형태가 아닐까?     


내가 어린 시절에 독서논술 수업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친인척 어른들이 와도 숨기 바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도 대화를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른들과는 아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말을 하다가 실수할까 하는 두려움이었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는 불안한 어린 시절이었다.

인지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 불안감이었다. 예를 들면 6월인 오늘이 봄인지 여름인지 명확하지 않은 인식에 대한 불안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이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불안감이었다. 헤어질 때는 ‘안녕히 계세요’가 맞는지 ‘안녕히 가세요가 맞는지 헷갈리고 틀릴지도 모르는 말은 항상 입술 주위에 맴돌고 끝나 버렸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고개만 까닥할 때가 많았다. 그것 또한 부끄러워 살짝 고개만 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달아날 궁리만 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 ‘오성과 한음’은 조선시대 제일가는 개구쟁이에 장난꾸러기였다. 

담장을 넘어온 감나무에서 감을 따먹고는 이웃 어른이 나무라자 담안에 넘어왔기 때문에 따 먹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후에 자기 감나무에서 감이 담장을 넘어 이웃으로 커져 나가니 이웃 아저씨가 감을 보란 듯이 먹어 댔다. 그러자 오성은 이웃집 문지방을 넘어가서는 한지로 된 문짝 안에서 제 주먹을 들이밀면서 하는 말이 “이 손이 누구 손이냐?”라고 물었다.

“누구 손이긴 누구 손이냐? 니 손이지”라고 대답하니 오성은 그제야 담장을 넘어간 감나무는 우리 집 감나무니 먹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햐~어른을 갖고 노는구나”


어릴 때 읽었던 책이라 정확하지도 않지만 이런 어린이도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세상을 당당하게 살면 좋겠다는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나도 크면 더 당당하게 목소리도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하루에 한 번 발표하기를 내 마음에 목표를 삼아 학교 시간에 손들어 발표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바보로 살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1학년인 J은 말하는 것이 야무지고 똑 부러진다. 

“선생님, 제가 다니는 학교에 이 책에 나온 장난꾸러기 태호 같은 아이가 있거든요. 이 아이는 걸핏하면 친구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해요. 한 번은 제가 모둠수업하려고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눠주는데 이 아이가 내가 건네준 방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꾸 뭐라 했어요. 자기가 잡아당기면 자기 앞으로 가져 다 놓을 수 있는 걸 나한테 자꾸 뭐라 하면서요.” J은 의자에서 일어서서 그 당시를 재현하는 행동을 하면서 눈에 보이듯 자세히 설명한다. 나는 J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동시에 J의 당당하고 열성적인 말하는 태도에 감복하게 된다. 


 “또 한 번은 이 친구가 다 먹은 우유팩의 공기를 찌그러 뜨리면서 내 얼굴과 다른 친구 얼굴에 우유가 튀게 했어요.”

수업한 책 제목은 ‘수진이와 개미로봇’이었다. 2학년 수진이를 괴롭히는 태호 때문에 수진이가 학교 가기 싫어하다가 공룡보다 커진 개미가 태호를 혼내주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이야기하면서 J은 자신과 관련된 괴롭힘 당한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얼굴에 우유가 튀어서 속상했겠다. 너는 울었니?”

“안 울었어요. 나랑 같이 우유가 튄 아이는 울었어요. 나는 선생님께 일러 주러 가야 해서요”     

그런데 아이들의 말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공 같다. 


발표영상을 찍은 후 내가 손가락으로 OK사인을 보내며 영상저장을 끝냈다. 저장할 때까지 잠시 발표하는 모습으로 조금 더 참고 기다리는 센스. 

제 자리에 앉으며 J가 말했다.

“우리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OK사인을 할 줄 몰라요.”

“오케이 사인을? 음.. 모를 수도 있지. J가 모르면 가르쳐 주면 되고”

“우리 할머니는 알파벳을 몰라서 O를 모른단 말이에요”

“우리 할머니는 A도 모르고 B도 몰라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J의 모습을 보니 팩트만 말하는 것이다. 감정을 배제한 팩트만. 

그리고는

“근데 요 근래에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젊었을 때 선생님이셨대요. 난 정말 몰랐거든요. 근데 우리 할머니가 선생님이셨다고 말하는 거예요. 정말 멋있어요. 저도 크면 선생님이 되면 좋겠어요”     


‘햐~ 정말 맥락 없는 대화다’     


“선생님이 왜 되고 싶은데? 할머니를 보면서 생각한 거야?”

“네. 선생님이 되면 시험지에다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잖아요. 저는 그것을 해보고 싶어요”


어머니와 대화한 결과 할머니가 선생님이셨다는 것은 장난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태도가 좋아 보인다. 


J은 당당한 한 사람으로서 자기 몫을 해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처음 J을 만나고 수업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는 아이가 이해력이 없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국어 문제지의 말을 몰라 답을 못 적기 일쑤고 수학조차도 언어로 문제가 나오니 아이가 무슨 말인지 몰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따님을 두고도 여러 가지 걱정이 많은 것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나는 내가 가장 여리고 부족하고 이해력이 없었던 어린 시절을 겪어 봤기 때문에 나와 수업하는 모든 아이들의 가능성만 본다. 개미가 공룡만큼 커져서 심술꾸러기 태호를 혼내준 것은 바로 그 아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크면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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