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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Aug 02. 2023

방학이라는 골든타임을 생각하며

재밌는 책을 만나기를 소망한다

 연일 따가운 햇살이 정수리를 내리꽂고, 푸른 잎사귀 너머에 절절한 수컷매미가 찌르르 소리를 더하는 여름이다.

 나는 독서논술수업이 일주일간 '휴가'라는 공지를 내보내고, 아이들의 휴가일정을 점검하고, 보강이 필요한 아이들과는 따로 보강수업일정을 잡았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방학특강으로 더 빡세다며 방학이 없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것은 아이들의 '방학에도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하는 자조 섞인, 일종의 귀여운 푸념일 뿐이므로 곧이곧대로 들어선 안된다.

 아이들에게 방학이란 쥐꼬리만 한 자유일지언정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나도 학교 다닐 때 방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몸소 겪어봤다.

방학은 시간별 시간표에서 겨우 벗어나 내 몸이 원하는 시간대에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들이다.

한 달 반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었다. 나는 학원을 다녀본 경험도 없고, 방가후란 개념도 몰랐다. 방학은 좁은 방에 세 형제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 숙제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독서를 하거나 노는 시간이었다.(한방에서 이게 가능했다니 새삼 놀란다)


나는 막내였지만 TV 보는 오빠, 언니틈에 앉아 책을 읽었다. TV소리가 점차 내 귀에서 사라지는 신기한 체험을 해봤기에 책 읽기에는 어떤 방해요소도 없다는 것을 안다. 물론 책에 빠져들지 못할 경우에는 TV소리가 참 크게도 들린다.

기어이 몸을 돌이켜 TV앞에 앉기도 했다.


책 읽는 습관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내가 했던 기억들을 되살려 나의 예쁜 제자들에게도 책 읽는 습관을 들여주고 싶다.

그런데 그것은 각자의 기질과 살아오면서 형성되는 정서적 태도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정서와 요즘 아이들의 디지털적인 정서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모들은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싶어 한다.(중요한 것은 부모님만 그렇다는 거ᆢ)


나는 책이 재미없었다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는 집에 책이 귀했고, 학교 교실에는 책장 가득 친구들의 손때 묻은 책들이 가득 있었다.

새 학기가 되면 으당 학급문고를 채울 두 세권 정도의 책과 교실을 닦을 청소걸레를 만들어 가는 게 전례였다.

그러니까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새 책은 아닐지언정 처음 보는 책을 보는 것에 설렘을 느꼈던 것이다.

주로 과학책 같은 지식정보책이 아닌 전래동화나 그리스로마신화 같은 이야기책을 읽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책을 후루룩 넘기면 내가 좋아할 책인지 별로일 책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자신이 좋아할 책을 알아낸다는 것은 비슷한 유형의 책을 재밌게 읽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누가 책을 읽어라 말라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자신이 재밌게 읽어본 책의 목록을 두 손에 쥐고 있는 아이와 책을 읽으면서 재미라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럼 독서지도사는 이렇게 질문해 봐야 할 것이다.

"지금껏 네가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 뭐야?"


'가장'이라는 이 말에 기가 질러 우물쭈물할 수도 있다. best는 여러 목록 중 최상을 말하는 거니까.

그럼 이렇게 질문할까?

"지금껏 재미있게 읽어 본 책이 있을까?"


재미있게 읽어 본 책의 경험이야말로 앞으로 아이가 독서가로 나아갈 것인가, 독서와는 담을 쌓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경험치를 쌓아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자신의 성향의 책으로부터 시작하여 책의 지평을 넘어가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문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연과학, 사회과학, 심리학, 철학 책도 읽게 되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는 도서관에서 놀면서 자신이 좋아할 만한 책과 만나게 해주는 경험이 필요하리라 본다.


방학이다.

최고의 자유시간이다.

아이가 스스로 세우지 않은 학업시간표를 두고 망연자실하여 "방학 따윈 개한테나 줘버려"라고 중얼거리지 않기를 바란다.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아이의 마음에서 "바로 이런 책이 나는 좋더라"라고 히죽거리는 경험을 해보는 방학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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