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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바하 Jan 05. 2023

비바람 부는 새벽, 요양병원에서 귀신을 만났다

애기 귀신 이야기

그날은 비가 치적치적 내리는 밤이었읍니다.


비바람에 잎사귀들이 스스스 흩날리는데, 그 소리가 꼭 아이 잃은 엄마가 흐느끼는 소리 같지 않겠어요? 홀로 당직을 서고 있던 나는 오소소 돋는 소름을 애써 무시한채 게임이나 한 판 해야겠다고 생각했디요. 그런데 그때, 문 밖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읍니다. 


쿵-쿵-. 오도도도 쿵쿵쿵-

게임기를 두 손으로 쥔 채 잔뜩 겁에 질린 나는 문 밖의 발걸음 소리를 가만히 헤아려보았읍니다. 연약한듯 간절하고, 두려운듯 힘찬 소리. 필시 어린 아이가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누군가를 쫓는 발걸음 소리였읍니다. 설마... 귀신이 쫓는 사람이 나는 아니겠디요...? 나는 머리카락이 쭈볏 선채로 살금살금 당직실 문으로 다가가 천천히 잠금쇠를 돌렸읍니다. 달칵- 들려오는 소리에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때, 나는 간호사들이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읍니다. 이곳 요양 병원에 막 부임했을 때 들은, 바로 애기 귀신 이야기디요.


노인들만 득실거리는 이 요양 병원에, 애기 귀신 이야기는 사실 얼토당토않는 것이 틀림없읍니다. 대관절, 애기가 어디서 죽어 귀신이 되겠읍니까? 여기서 숨을 거두는 이들 대다수가 노인인 것을요. 그러니까, 여느 병원들처럼 전래동화로 귀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건 필시 콩콩할매 귀신 이야기여야디요. 그런데 지금 저 문 밖으로 들리는 쿵쿵거리는 힘찬 발소리는 단연코, 어린아이의 것이 분명합니다. 


평양 외곽지역, 노인들이 그득한 이 요양 병원에는 다양한 할마이, 할아바이들이 입원해 있읍니다. 게 중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한 할매는 치매기가 심했는데,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면 그렇게 ‘오마니’를 찾아댔읍니다.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자리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릴 때면, 우리 의료진은 우리가 엄마를 찾아주겠구마 할매를 달랬는데, 할매는 그때마다 총소리라도 들은 듯 몸을 파르르 떨어댔읍니다.


72년 전, 그러니까 6∙25 전쟁이 나던 그 해, 평양에 살던 할매의 가족은 무섭게 밀고 내려오던 중공군의 기세에 새하얗게 질려 남으로 피란을 떠났답디다. 할매는 아바이 품에, 오라비는 오마니 품에 안겨 남으로 내려가던 그 때, 폭격이 아바이와 오마니를 갈라놓았고 아바이는 할매를 품에 안은 채로 그대로 쓰러졌디요. 쓰러진 아바이 품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오마니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몇 년 전, 남조선에 있는 오마니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합니다. 오라비만이라도 보고 싶어 했던 할매는 핵폭탄이 대륙 사이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이산가족상봉을 기다리며 마지막 희망 한 가닥을 놓지 못했읍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할매는 그렇게 오랜 기간 아픔을 참고 기다리다 마지막까지 눈을 뜬 채 세상을 떠났디요. 할매의 눈을 감겨주며 난 속으로 할마이가 죽기 직전까지 앓던 병증을 천천히 되뇌어보았읍니다.


패혈증 2일, 흡인성 폐렴 8일, 그리고 그리움 24,455일. 


문 밖에서 쿵쿵거리던 발자국 소리가 사그라들었읍니다. 공포시럽던 마음이 혹 저 발소리가 그 할매의 것은 아닐까 싶어 쓰라리게 내려앉습니다. 죽어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할매가, 폭격 속에서 엄마를 찾아 사방을 헤매는 것이디요. 두려움에 가득 찬 발자국 소리와 흐느끼는 잎사귀 소리가 병원을 가득 휘감습니다. 밤마다 이 요양 병원에 애기 귀신이 돌아다니는 것은, 어쩌면 그리움을 안고 떠나간 수많은 할매들의 원혼 때문일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기도합네다. 할마이, 그간 긴 그리움 속을 걷느라 수고 많으셨소. 이제 그만 편히 쉬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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