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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바하 Jan 05. 2023

눈 떠보니 배신자가 되어 있는 건에 대하여

#유다

유다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달려드는 베드로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무언가 필시 잘못된 게 분명한데, 이 모든 일을 설명해 줄 주군이 아직까지도 나타나질 않고 있으니 답답해 죽을 노릇이었다. 유다는 베드로를 피해 전력질주하다 겨우 구석진 한 골목에 숨어들었다. 헉헉 거리며 숨을 고르던 유다는 자신에게 지난 일주일 간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유다는 셈이 빠르고 영리한 책략가였다. 먼저 몸으로 부딪히고 멍청하게 웃는 베드로와 달리 그는 이성적인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주군이 찾아와 비밀스럽게 말을 건넸다.

“유다야, 네가 나를 팔아넘겨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로마군에 나를 팔아넘겨라. 은 30편이면 족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죽일 것이나, 나는 사흘 만에 되살아나 로마군을 전멸시키고 나의 세상을 더욱 찬란히 빛내리라.”

유다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 인상을 쓰며 주군의 제안을 거절했다. 주군을 팔아넘긴다는 그 행위 자체도 명예롭지 못할뿐더러,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려온 유다 가문을 고려해보았을 때, 은 30편은 너무도 하찮은 액수였던 것이다. 그러자 주군은

“베드로도 새벽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이나 배신할 것이나, 영원히 나의 충실한 제자로 남을 것이다.”

하고 설득했다. 유다는 떨떠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마지못해 명을 받들었다.


며칠 후, 예정대로 주군은 로마 군사들에게 체포되었고, 그 시각 아무것도 모르는 베드로는 로마군에게 능욕당하는 주군을 보며 분에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배신감에 베드로는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유다 이 놈 만나기만 하면 기필코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러나 시커멓고 긴 손톱으로 주군의 옷을 죽-죽- 찢으며 킬킬 거리는 로마 병사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겁을 집어먹고 이내 허둥지둥 군중 속으로 도망갔다. 베드로를 알아본 군중이

“어? 당신도 저 이의 추종자가 아니오? 내 당신을 본 적이 있소!”

하며 병사들을 향해 소리치려 하자, 베드로는

“무슨 소리요?! 난 당신을 처음 보오! 난 추종자가 아니요!”

하며 호통을 쳤다. 그렇게 ‘하늘에 맹세코 난 저 이를 모른다.’고 부정하길 세 번, 멀리서 새벽닭이 꼬끼오- 하고 울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유다는 실소를 터트렸다. 저런 놈과 함께 충실한 제자로 남게 되다니, 가당치도 않은 게 창피스러울 지경이었다.


주군이 부활하기로 약속된 날. 유다는 그가 어서 자신을 배신자의 오명에서 벗겨주기만을 기다리며 로마군 소굴을 서성였다. 그러나 왠 걸? 로마군 소굴 그 어디에도, 주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서둘러 달려갔으나, 베드로가 대뜸 이를 악다문 채로 달려드는 통에 설명할 방도도 찾지 못한 채 문을 나서고 말았다. ‘이건 필시 무언가 잘못된 거다. 왜 주군은 나를 피하시는가?’ 그때 섬광처럼 유다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단 한 번도 주군은 자신에게 ‘배신자의 오명을 벗겨주겠다’ 약속한 적이 없었다! 충실한 제자는 베드로 하나였던 것이다.


절망한 유다는 주군을 저주하며 은 30편을 들고 로마군의 주둔지를 찾아가 그들의 얼굴에 뿌리며 외쳤다.

이까짓 돈 너나 가져라, 이 거지 같은 놈들아!


고작 은 30편에 인생을 팔아먹은 놈으로 기록될 운명이었다니∙∙∙. 몸에 타이트하게 핏팅된 슈트가 서글프게 주름지고, 은 100편짜리 망토가 허망하게 펄럭였다.



(커버사진: Jacques-Louis David, <Oath of the Horatii>, 1784, Lou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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