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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바하 Jan 05. 2023

어느 날, 사람들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뻐끔뻐끔

1936년 경성.
한 남자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경성역 앞을 지나갔다.


‘꼬리라니, 꼬리라니.’

그가 허둥지둥 골목으로 들어서자 인력거꾼이 치릉치릉 경적을 울리며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었다. 남자는 인력거 꾼을 피해 몸을 급히 틀고는 멀어지는 인력거 꾼의 바지 아래로 길게 뻗어 나온 꼬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제비’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다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는 바로 소설가 ‘이상’이었다.

“여보게, 여보게!”

이상의 요란한 등장에,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차를 마시고 있던 ‘태원’이 문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태원이 반갑게 손을 흔들자, 때마침 태원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신문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은 며칠 전부터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괴기스러운 징후에 대해 태원에게 털어놓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이상이 급히 태원의 맞은편 자리로 가 앉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 내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나?”
“뜬금없이, 무슨 일인 겐가?”
“내 눈에 사람들의 꼬리가, 꼬리가 보인다네!”

사연인 즉 이러했다. 이레 전 유곽에서 금홍이와 영변가를 한 마디씩 주고받고 있는데, 술상을 가지고 들어 온 주모의 치마 자락 사이로 길게 삐져나온 꼬리가 보이더란 말이다. 기다랗게 생긴 이게 무어냐 묻는데, 금홍이는 당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못 잡더란다. 해서 주모 치마 자락 끝의 꼬리를 덥석 잡고 “이거 말이다, 이거!” 하였는데 웬걸, 이상의 손에 그 ‘꼬리’가 잡히지 않지 뭔가. 마치 유령 마냥 손을 통과하는 그 요상한 것에 이상은 “허허- 진정 말세로구만.” 하며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태원은 이상의 얼굴을 바라보며 장난치지 말라는 듯 찡그리며 말했다.

“취해 헛것을 본 건 아니었고?”

이상은 도리질을 치며 태원의 손을 덥석 잡으며 답했다.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밖에 나와 보니 여기저기서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네. 방금 이 다방을 나선 기자 양반 말일세. 그에게도 꼬리가 보였네. 아주 팔랑팔랑 신이 나 꼬리를 흔들고 있더구먼. 꼭 개의 것 같았어.”

그가 이레 동안 관찰해 본 즉, 이 ‘꼬리’라는 녀석은 마치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제국민들의 정신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예를 들어, 대한제국의 독립을 강경히 주장하는 이의 꼬리는 늑대의 것처럼 빳빳하게 굳어있었고, 친일을 주장하는 이의 꼬리는 아부라도 하듯 살랑거렸다. 그런데 슬픈 것은, 구한 말부터 고고한 선비로 칭송받던 이 진사도, 문단의 아이돌이라 주목받던 동인 형도, 광수 형도, 심지어 천명 누이도, 모두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상의 설명을 듣고 있던 태원이 안경다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마침 방금 나간 기자 친우가 돈을 받고 기사를 쓰고 있다 하여 큰 실망감을 느끼던 차였네… 우린 정말이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이 기분을 담아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소설로 담아볼까 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여보게, 내게도 꼬리가 있는가?”

이상이 침울하게 말했다.

“있네. 있고말고. 자네, 여기서 더 황망한 사실이 무언지 아는가?”
“무언가?”
“꼬리에도 종류가 있는 것 같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펜이나 칼로 친일을 하는 작자들의 꼬리는 ‘개’, 몰래 일본 고관대작들에게 돈을 대는 작자들의 꼬리는 ‘쥐’, 그리고 친일을 핑계로 가난한 시민들의 돈을 뜯어내는 작자들의 꼬리는 ‘돼지’의 형태라고 했다.

"그런데 자네와 나의 꼬리는 말일세..."
“아, 뜸 들이지 말고 말해보게!”

태원의 재촉에 그가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뻐끔뻐끔 거리기만 하는 생선 꼬리 모양이구먼….


(Cover: Rene Magritte, <The philosopher's Lamp>,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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