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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Sep 19. 2024

그 여자가 사는 법

남자는 술이래야 기껏 한 달에 두어 번 밖에서 마시는 것을 제외하면 여자가 늘 장을 보면서 라면 끼워오듯 들고 와 넣어두는 집 냉장고 안의 소주를 그저 찌게라도 입에 맞는 날에 반주하듯 마시는 게 전부다.


적당량으로 피우던 담배는 수년 전 어느 날인가 생각이 없어졌다면서 단박에 끊어버렸고 그저 여덟 시를 깃점으로 나가고 들어와서는 위아래층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화초에 물 주고 편한 자세로 누워 티브이 보는 일, 그러고 어쩌다 주말엔 옥상 화단가에 낚시 의자를 펼쳐놓고 반쯤 누워서 책을 보거나 고수부지에 나가서  네댓 시간쯤을 걷고 달리고 자전거 타며 혼자 노는 게 다였다.


자신이 고생하고 자라서, 자식들 공부시키는일 그리고도 여력이 있다면 노후대비를 위해서나 전력을 다해 살 것이었고 그래서 골프라던가 그 흔해빠진 취미생활 한 가지도 안 하고 살았다.

 

아이 둘을 낳을 때도 여자는 혼자 낳았다.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할 때에도 여자는 혼자서 들어갔었고, 자식들의 경사에도, 집안 중요행사에도 크건 작건 간에 그건 무조건 여자의 본분이라 생각했고 바깥일 하는 외에 가사에 마음을 써준 적이 없으면서도 남자는 여자에게 한 번도 미안해하는 일도 없었다.


그게 억울해서 여자는 한 십 년은 죽어라 억울함을 호소하며 살았다.


그럴 양이었으면, 계룡산 꼭대기에 가서 혼자 살지 뭐 하러 가정을 꾸려서는 여러 사람 고생시키느냐고.. 당신은 가정을 꾸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결혼에도 자격증 부여가 필수가 되는 세상이 반듯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던 어느 순간 남자가 말하는 목표까지 그렇게 따라 살아보기로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그리고 한 십 년쯤 지나자 형편은 좀 나아졌으나 아이들과 더불어 부담은 더 크게 늘었고  변화하지 않는 남자가 이번엔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게 별거냐 남들처럼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아프지 않고, 애들 잘 크고, 밥 굶지 않고, 그러면 됐지  큰 욕심 없다고. 


얼핏 맞는 거 같았지만 여자가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어느 때부턴가 아이들이 가끔씩은 엇나가는 것 같기도 해서  늘 가슴을 졸이고 있었고, 몸은 자꾸 아프고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남자는 늘 이만하면 순조로운 삶이었고 여자는 늘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헉헉대고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겉보기로는 평범해 보였지만 모든 게 결여된 채 기본권만으로 살던 때 자꾸만 밖으로 나가는 마음이 두려워서 겁이 나던 시절도 있었다. 아이들이 공부에 전념할 시기에 맞춰 스스로를 묶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여자는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고 아이들과 부딪히며 견뎌내기 힘든 시기를 체념반 집중반으로 그렇게 넘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쌓이고 아이들이 품에서 떠나갔고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녀석들이 없는 썰렁한 식탁에서 남자와 마주 앉으면 여자는 자꾸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휴일 나들이에서 돌아와 여자가 밥을 푸는 동안 남자는 수저를 놓는다. 그리고 여자가 국을 푸는 동안 남자는 물을 따른다. 


이제는 아이들 얘기도 반으로 줄고 반찬 수도 반으로 줄었다. 상을 물리고 몇 개 되지 않는 그릇을 냉장고에 넣는 동안 남자가 먼저 싱크대 앞에 선다.

달그락` 달그락``

공허한 식탁 앞에서  여자는 후식으로 먹을 과일을 준비한다.


초코파이 빛깔 보다도 더 끈끈한 情!

안됐지만, 여자와 남자는 앞으로 주어진  긴 날들도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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