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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 Feb 08. 2024

6. 돈 없는 미대생의 설움

2014년 8월

 일본의 미술대학교는 한자리에 모인 국내외 학생들에게 자신의 예술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평균적으로 일반대학보다 학비가 비싼 미술대학교이지만, 미술, 디자인 혹은 다방면의 예술을 하고 싶은 친구들에겐 비싼 학비를 내고서라도 다니고 싶은 곳일 것이다.


학교에 들어오니, 역시 미술대학에 온 친구들은 집안에 여유가 많아 보이는 친구들이 많았다. 졸업 후 몇 년간 학비를 갚아야 하는 국가 장학금의 지원을 받으면서 다닐 수 있는 일본인 친구들보다, 유학으로 온 친구들이 평균적으로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생활이 가능한, 집안 환경이 여유로운 편이었다.


물론, 그중 몇몇은 여유롭진 않아도 성적을 열심히 올려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어떻게든 연명하는 유학생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 중간정도였다. 집에 돈이 많아서 일본생활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비만큼은 부모님께서 열심히 모아주신 돈으로 전액 지원받으면서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생활비만 마련하면 됐다.


대개 유학온 친구들의 평균 용돈은 한 달에 8만 엔이었다. 그 금액이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라는 것이 부모님들 사이에서 자리 잡혀있는 듯했다. 아, 물론 월세는 따로 빼고 8만 엔이다. 평균 월세가 8만 엔 정도라고 생각하면 매달 16만 엔 이상은 생활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았던 곳의 월세는 3만 5천 엔에 식비, 생활비 약 3만 엔으로 총 약 7만 엔으로 모든 생활비를 충당했다.


생활비는 그렇다 치고, 대학 학비가 그렇게 비싼데, 아이러니하게 학교 과제를 하는 데에도 끊임없이 재료비로 추가비용이 필요했다.


1학년 8월, 오픈캠퍼스 직전의 마지막과제 때였다. 미대의 학교 쓰레기장은 아주 쓸만한 물건과 과제에 쓸 수 있는 아주 멀쩡한 재료들이 많이 버려져있어 공짜로 많이들 주워서 과제에 활용하곤 했지만, 이번 과제만큼은 내가 원하는 재료를 구할 수 없었다.


첫 개인 과제인 패션과제로 모자를 만들었는데, 천을 살 돈이 아무래도 없었던 것이다. 단위를 따려면 콘셉트에 맞는 적절한 천을 사야 하는데.. 천값이 만만치 않았다.


급하게 가족에게 연락을 했지만, 당장 돈을 송금받아도 일본에서 확인되는 건 일주일 후였다. 그때 내게 필요한 값은 5천엔(약 5만 원)이었다. 일 학년땐 아직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고, 대학교가 고등학교처럼 사비를 들여서 과제에 따로 돈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같은 반 일본인 친구에게 5천엔 (약 5만 원)을 빌릴 수 있냐고 물어봤고, 그렇게 마음 편하게 친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 친구는 선뜻 “응~ 언제 돌려주든 상관없어~!”라고하며 그때당시 나에겐 거액의 돈을 빌려줬다.


천 가게의 세일 중인 자투리천 코너 앞에서 어렵게 빌린 5천 엔은 금방 천 몇 장과 맞바꿔졌고, 아주 조금 허무하게 쓰여진 천 조가리를 갖고 과제를 어떻게든 제출했다. 다행히도 그 작품은 우수작품으로 뽑혀 참고작으로 오픈캠퍼스에 전시가 됐고, 다행히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1학년 첫 개인과제.

오랜만에 과제 콘셉트를 읽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당시 제출한 과제 보드

프레젠보드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작품명: 해피스폿
한국에는 5개의 해피컬러가 있다. 행복의 기운을 표현한  오방색과 흥을 돋우는 한국의 전통놀이인 풍물놀이의 의상에 영감을 받아 나만의 행복의 기운을 모은 모자를 만들었다. 이 모자를 쓴 당신이 선 이곳은 해피 스폿입니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다른 친구들 작품과 같이 전시된 오픈캠퍼스 전시

교수님께선 조금 더 천 양이 풍부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었지만, 아쉽게도 이게 5천엔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볼륨이었다.


돈이 없어도 과제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상황을 해결하고, 해석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결국 돈을 빌려서까지 과제를 수행했지만, 결국 잘 해결할 수 있었고, 급하게 한국에서 송금받아 일주일 후에 들어온 생활비로 감사의 선물과 함께 5천 엔을 갚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작품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생각하는 것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행복을 디자인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나답게 행복을 즐기고 잃지 않는 것.

에 있어서 말이다.


글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일본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영상으로도 공유하고 있어요:) 슬쩍 놀러 와주세요!


https://youtube.com/@inalee?si=vKfAhbPFRwozW1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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