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대학에서 두어 번 과제를 함께했던 귀여운 일본인 친구가 내 작은 자취방에 놀러 왔다. 내가 살았던 자취방은 *6조, 약 3평 남짓한 월세 3만 엔대인 아주 작은 원룸이었다.
畳(조): 일본 다다미 개수로 평수를 세는 단위로 다다미가 6장 들어가는 정도의 방 넓이를 얘기한다.
내 방에 일본인 친구가 놀러 왔던 것도 처음이었지만, 아주 비좁은 작은 방에서 같이 과제를 하거나 노는 것이 조금은 미안하고 민망했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나는, 나름 많이 친하다고 생각해 내 공간까지 초대를 한 것이었다.
같이 놀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만 앞선 나머지, 사실 내 방에 손님을 맞이하는 건 처음이었던 터라, 따뜻한 차를 내주거나 냉장고에 간식을 채워 넣거나 하물며 물을 내줘야 하는지 조차도, 대접하는 법을 모르는 만 19살이었다.
그룹과제를 하는 겸 같이 밥도 해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며 내 방을 구경한 친구는 이것저것 물어봤고, 그 질문들이 나에겐 너무 생소해 신기했었다.
음료수병을 다 마시고 냉장고에 넣는다고 일어선 일본인 친구는 대뜸 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혹시 냉장고 열어도 돼?
가정교육을 철저히 받은 집에서는 이 정도는 예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솔직히 한국에 있으면서 친한 친구네 집에만 가본 나로서는 냉장고를 열어봐도 되는지 물어보거나 물어보려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그냥 냉장고문을 열고 물을 마시고 그랬으니까. 사실 당시엔 이 질문이 매우 신기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생각한다. 냉장고야 말로 사람의 아주 개인적인 공간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 방엔 전신거울이 있었고, 3평인 작은 방에선 분명 아주 길고 큰 존재인 물건이다. 고개를 돌리는 어떤 각도에서도 보이는 거울일 터이다. 저녁에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이 친구는 양손등으로 거울이 안 보이게 눈을 가리면서 이렇게 물어봤다.
나, 혹시 거울 봐도 돼?
’뭐지?‘ 이 질문을 듣고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왜 물어본 걸까?’ ’같이 몇 시간 동안 있으면서 혹시 거울이 안 보이게 눈을 가리고 다녔었나?‘
이 생소하고 낯선 질문에, 잠옷차림으로 아주 편안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바로 고치며, 이 낯선 예의 혹은 배려라고 하는 것에 어딘가 뭔지 잘 모르겠는 불편함에 휩싸였다.
‘아직 처음이라 그럴 거야.’ ‘이 친구랑 그렇게 아직 안 친하니까, 거울 보는 것도 나에게 물어보는 게 배려라고 생각한 걸 꺼야.’ ‘이 친구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아닌가 원래 이렇게 하는 게 일상일까?’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괜스레 불편하게 만든 게 나인 것 같아 미안해했지만, 곧바로 이렇게 생각을 바로잡기로 했다.
이 친구는 이렇게 있기로 본인이 택한 것이니, 나는 나대로, 내 분위기대로 편하게 있어야지.
당시의 이 두 가지 질문들은 한동안 나에게 신선한 문화적인 충격을 주었고, 저때 바로잡은 나의 생각은 일본생활하는데 아주 두껍고 견고한 기준축이 되었다. 이 친구만큼은 아니어도 11년간 일본에 있으면서 나도 조금은 일본인보다는 적당히, 한국인보다는 많이, 어딘가 불편하게 배려하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고깃집에서 ’저기요 물 좀 주세요‘ 가 아닌, ’저기요 혹시 물을 주실 수가 있으실까요?‘ 와 같이 길게 돌려 말하는 나를 발견하고 친구가 피식 웃었으니 말이다.
글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일본의 일상, 여행 등을 영상으로도 담고 있어요. 올해로 11년 차인 도쿄의 직장인의 삶, 슬쩍 보러 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