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 May 10. 2024

복학생과 유학생회장

우리가 가까워지기까지

나는 일본에 살고 있다.

군대 복무 후 복학한 오빠와 미술 대학교 CC로 만난 후 직장인 6년 차까지, 8년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빠가 복학당시, 2학년이었던 나는 미술 대학에서 한국인 유학생 회장을 하고 있었다. 자정을 넘어선 새벽, 집에서 푹 빠져있던 ‘냄새를 보는 소녀’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학교 친구들이 새로 복학한 선배가 있어 다들 볼링장에 모여있는데, 와보지 않겠냐고 했고, 급하게 앵그리버드의 노란 삼각형 새가 그려진 남색 후드에, 호피무늬 뿔테안경을 쓰고, 볼링장에 나섰다.


그때 우리는 처음 인사를 했다.

오빠는 검정 코트를 입고 있었고, 진하고 까만 눈썹과 머리카락으로 첫인상은 매우 까마귀 같았다.

막 제대해서 와서 그런지, 정말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셨고, 웃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2차로 야키토리 집에 갔을 땐, 오빠는 내 앞에 앉았었고, 보기 어려운 일본어 메뉴를 보며 떠들었고, 그 이상 그 이하의 다른 교류는 없었다.


그 이후로도, 걷는 걸 좋아하는 오빠는 학교 어디서든지 자주 출몰했고, 너무나도 친절한 것이, 나에게만 그런 건지 남들에게도 친절한 건지 긴가민가 했었다.


미대를 다녔던 우리는 각자 작품활동과 과제를 바쁘게 해야 했다. 공간디자인학과로서 큰 작업을 해야 했던 나는, 작은 원룸에서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 평균적으로 큰 집에 살았던 오빠의 집을 빌려가며 과제를 했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가까워졌다.


이런 게 미대의 로망이지 않을까.

밤새 작업을 하며,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고, 서로의 작품활동을 응원하며 타지에서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교 2학년 때 만나, 서로를 믿고, 도와줬으며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시간을 걸었다. 취향도 취미도 비슷했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문득 흘러간 세월을 보니, 나는 28살, 오빠는 30이 되어있었고, 우리의 20대의 전부를 함께 나눈 사이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하고, 섬세하고 예민해 서로 토라지기도 하지만, 하루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한결같은 오빠가 좋았고, 자신의 인생을 열정적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 배우고 싶은 게 많았다. 그렇게 연애한 지 8년 차,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 나는 28살엔 결혼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나이대 즈음, 오빠한테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우리는 결혼과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