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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본 Apr 01. 2023

오늘, 안녕, 그리고 음악

  처음엔 물방울들의 춤이었다, 라벨의 볼레로에 이끌린. 타- 타탓타 타- 타탓타 탓- 타-, 잔잔하게 속삭이면서 시작되는 스네어 드럼의 안정적인 비트에 맞춰 물방울들도 낮은 점프로 작은 율동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도- 시도레도시라 도- 도라도- 플루트 솔로의 멜로디에 따라 회전하면서 좌우로 움직였다. 물방울, 물방울, 그리고 더 많은 물방울. 앞서가는 물방울 뒤로 뒤따라오는 물방울들이 차례로 유선형을 그려냈다. 뭉쳤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뭉치는 물방울들. 뒤이어 플루트로부터 클라리넷이 같은 선율을 이어받자 투명한 물방울들을 투과해 조명들이 색을 주사했다. 물방울들은 규칙적인 몸짓을 조금씩 변주해 나가며 쌓여가는 소리와 함께 춤의 지도를 확장해 나갔다. 바순, 피콜로, 오보에, 트럼펫, 색소폰, 호른, 첼레스타, 트롬본. 그렇게 악기, 악기, 그리고 더 많은 악기. 굴릴수록 점점 더 크게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소리. 점점 더 멀리까지 튀어나가는 물세례에도 몸이 젖든 말든 어린이들이 물 앞으로 바짝 붙어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방울들의 춤을 지켜봤다. 바로 그때, 어린이 한 명이 반복되는 멜로디에 익숙해졌는지 음을 따라 부르며 기세 가득한 지휘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음과 악을 노래했다. 이리저리 새처럼 팔랑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양팔을 가득 움직여 물방울의 흐름을 묘사하기도 했다. 어린이, 어린이, 그리고 더 많은 어린이.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크레센도, 그 끝의 클라이막스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하늘 끝까지 솟구친 물줄기에 탄성이 터지며 17분의 무도회는 막을 내렸다.


  음악 분수 주변의 잔디밭에 멀찍이 앉아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어른들은 물방울들과 아이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새가 둥지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각자의 가족들에게로 팽그르르 되돌아가는 어린이들. 춤의 시작을 주도했던 처음의 어린이는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채로 당연하다는 듯이 엉덩이를 들이밀며 아빠의 무릎 위에 안착했다. 어떻게 그렇게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흥과 기쁨에 솔직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티 없이 맑고 순수할까. 신나서 붉게 얼굴을 물들인 채로 아빠를 올려다보며 재잘대는 그 아이를 보고 새삼 ‘어린이’라는 존재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아빠는 아이의 얼굴에 묻은 물방울들을 다정하게 닦아주고, 얼굴에 아무렇게나 붙은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쓸어 넘겨주었다. 다행히 우리에게 허락된 오늘, 허락된 안녕, 그래서 허락된 음악. 어떤 안도와 동시에 마음 한편이 따가워졌다.


  나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상반된 감정이 들었던 데에는 그 분수쇼 전에 들었던 연주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날은 미처 여름의 열기가 다 가시지 않은 2022년 9월의 저녁, 예술의 전당에서 쇼팽을 들었던 날이었다. ‘오마주 투 쇼팽’이라는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돕기 나눔 콘서트.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로마놉스키의 연주로 들었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마단조, 작품 11번>과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바단조, 작품 21번>. 깔끔하고 아름다운 연주였다. 그는 관객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두 번의 앙코르를 선사했는데, 첫 번째 앙코르의 선곡이 의미심장했다. 역시나 같은 쇼팽, <에튀드 다단조 작품 10번 중의 제12곡, 혁명(Revolutionary)>. 도입부부터 혁명을 위한 비장함과 웅장함이 가히 압도적이다. 비록 쇼팽의 의사와 관계없이 붙여진 별칭이지만, 이 곡이 작곡되었을 무렵 1831년 9월에 작성된 쇼팽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있다.


  “바르샤바가 교외까지 모두 파괴되고 불타 버렸다. 모스크바가 온 세계를 통치하다니! 오 하느님, 하느님은 정말 계신 것입니까? 계신데 복수를 안 하시다니, 러시아가 얼마나 많은 죄를 더 범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혹시 하느님도 러시아 분인가요? 나는 전혀 쓸모없는 모습으로 여기 있다. 속수무책이다. 가끔씩 괴로워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할 뿐, 그리고 내 모든 절망을 피아노에 쏟아부을 뿐…….”

  - 클래식 클라우드 쇼팽, 김주영, ARTE, p.79에서 재인용


  폴란드 역시 우크라이나처럼 러시아에 의해 우여곡절을 겪은 복잡하고도 긴 역사가 있다. 폴란드는 자신들을 분할하고 해체시키려는 러시아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지만, 결국 바르샤바는 함락되고 만다. 자신이 유년을 보낸 땅과 하늘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상황에서 비극은 그의 조국을 덮쳤다. 그럼에도 음악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의 슬픔, 안타까움, 그리고 죄책감이 고스란히 쇼팽의 일기와 음악에 묻어 있는 듯하다. 


  알렉산더 로마놉스키가 연주하는 쇼팽을 들으며, 나는 문득 3월의 마리우폴 극장을 떠올렸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그곳에 위치한 한 극장. 그리스 신전처럼 페디먼트에 섬세한 조각상들이 있어서 단정하면서도 고상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던 흰색 건물. 전쟁의 폭격을 피해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 1300여 명이 은신했던 공간이었다. 공포와 두려움에 찬 서로를 위로하며 웅크리고 있다가도 그 안에서 기어코 웃을 일을 찾거나 스스로 만들었을 어린이들. 상상 속에서 나는, 하얀색 커다란 글씨로 ‘어린이(Дети)’라고 러시아어로 쓰인 극장 앞 광장 바닥을 응시한다. 그러다 점점 시선을 높이면, 그 시선의 끝에 폭격 당해 처참한 몰골의 극장이 거대한 무덤이 되어 쓰러져 있다.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600명 이상이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폭탄을 투하한 그 폭격기 조종사. ‘어린이’라고 써진 빨간 지붕의 극장을 조준해 투하 버튼을 누르던 순간, 그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또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었을까. 생각하라, 머리여. 기억하라, 몸이여. 그대도 연약하고 작은 어린이였을 시기가 있었으니. 우크라이나 정부는 마리우폴 극장 공습을 전쟁 범죄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지금에 와서야 나를 감동시켰던 피아니스트가 7월에 극장의 폐허를 배경으로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연주를 하고 러시아 언론에 인터뷰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이 협연한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가 러시아 군대와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이기 때문에 위키피디아의 '러시아 침략을 협력한 우크라이나인’ 명단에 그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 이유로 그가 교수로 재직하던 영국 왕립 음악대학은 그를 정직시켰다. 무너진 잔해를 뒤로 하고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던 순간, 그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가 내놓는 답은 오해일까, 이해일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는 딱히 러시아에 대한 명확한 지지 혹은 그날 마리우폴 극장 앞에서 한 연주에 대한 해명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 같지는 않다. 그곳을 직접 본 슬픔에 대한 언급만이 텔레그램에 올라왔다고 전해질 뿐. 그 밑에 깔린 사연이나 진심은 본인만 안다. 안타까움 혹은 배신감에 해명의 실마리라도 찾고 싶어서 열심히 파헤쳐봐도 찾을 수 없어 내심 홀로 실망하다가 마음속에서 낙인찍기를 그만두었다.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다만 배후에 어떤 이유가 있건 음악가로서, 인간으로서, 한때 어린이였던 사람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를 바라며. 러시아군은 12월에 극장을 가림막으로 가려놨다가 열흘 뒤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철거했다. 자신의 과오를 증명할 어떤 폐허조차도 남기지 않는 푸틴의 철두철미함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비단 이렇게 강제 표백된 우크라이나의 무덤이 마리우폴 극장뿐일까. 벌써 1년이 넘도록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어린이, 어린이, 그리고 더 많은 어린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전쟁인지 평화인지 옳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무력과 절망, 허무로 번질 수 있음에도 이 슬픈 세상에 깃든 아름다운 반짝임인 어린이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절망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가장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혁명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바로 어린이일 것이다. 간절히 기도한다, 이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오늘과 안녕, 그리고 음악이 허락되기를. 어른이라는 이름의 우리가 아이들로부터 무엇도 약탈하지 않기를.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진짜인 음악 안에서 물방울들과 어린이들과 함께 춤추는 어른들이 되기를.



202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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