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 X 전기 <프리다 칼로>를 엮어서
나는 프리다의 고양이. 에메랄드 원석빛 눈동자에 검고 매끈한 몸을 가졌지.
어둠 속에 숨소리마저 숨길 수 있는 나는 캔버스들 틈 사이에서 온갖 스캔들의 목격자가 되곤 했어. 프리다의 다른 반려동물들—거미원숭이들, 앵무새, 독수리, 공작, 개, 사슴—과는 차원이 다른 밀정이지. 멕시코의 늦여름 밤, 그 속에서 두 남녀의 진득한 땀 냄새가 한 공간에 엉겨 붙었어. 디에고 저 자는 대담하기도 하지. 등잔 밑에서 크리스티나를 건드리다니. 프리다가 제 여동생과 남편이 뒹굴고 있는 저 장면을 본다면, 기함을 할 게 눈에 그려졌어. 내가 사람이었다면 프리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혼자 고민의 수렁에 빠졌을 테지만, 나는 고양이. 이럴 때는 프리다가 고양이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결한 장면을 계속 보고 있기가 힘들어 몸을 일으켜 세웠어. 휴, 저 배불뚝이 영감이 뭐가 좋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 여기는 산 앙헬에 있는 디에고의 스튜디오. 연한 붉은기가 도는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다리를 건너 프리다가 있는 파란 건물로 넘어갔어. 프리다는 여느 때처럼 테우안테펙 스타일의 흰색 자수 블라우스와 붉은 꽃무늬가 중간중간 새겨진 보랏빛 긴치마를 입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지. 야옹, 하고 우는 나의 목소리에 보랏빛 리본을 머리에 맨 그의 얼굴이 나를 돌아보았어.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당신 무릎 위에 앉아 갸르릉 대는 것일 뿐. 프리다가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어.
“기예르모, 어디 갔다 이제 왔어?”
불현듯 나를 쓰다듬던 프리다의 손이 멈춰 섰어.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층계를 올라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더라. 그래,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인간 여자의 촉이란 무서운 것이었지.
잠시 뒤 돌아온 프리다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분노를 토해냈어. 프리다가 들어오면서 연결 통로의 문을 잠가버렸는지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와 디에고가 프리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어. 후회해도 이미 늦었지. 프리다는 어렸을 때부터 고통이 그를 관통할 때마다 몸을 의지해오던 캐노피 침대에 모로 누워 울었어. 저런 한심한 놈에게 심장을 베여서. 핏방울이 몸을 타고 흘러내려. 선연히,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혈관의 마디마디가 납덩이에 묶인 채로 점점 가라앉았어. 침대는 절망의 눈물로 가득 차 바다를 이루고, 이제 그는 고통의 바다에 고립된 섬. 수위가 점점 높아져 프리다가 익사할 것만 같은 불안감 들어 나는 그의 등에 몸을 바짝 붙여 누웠어. 내 온기라도 나눠주려고. 나를 감지했는지 그가 뒤돌아서 나를 안았어. 프리다와 내가 캐노피 천장에 달린 거울 속에 함께 잠겨있는 모습이 보였지.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말이야. 그를 증오하는 이 순간에도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미워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아. 너는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알겠니?”
그의 복잡한 심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나에게 고양이의 생이 주어진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고 생각했어. 인간이란 종은 너무 복잡해. 차마 이해할 수 없는 눈물 속에라도 더 깊숙이 파고들었어.
다음 날, 프리다는 디에고에게 별거를 선언했지.
“나는 인생에서 두 번의 대형 사고를 당했죠. 하나는 전차와 충돌한 교통사고였고, 또 하나는 당신을 만난 것이었어요. 안젤라나 루페, 당신의 전처들에 대한 사랑과는 달리, 나에 대한 사랑만은 특별할 거라고 순진하게도 기대했죠. 당신이 나만의 남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어요. 당신은 평생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할 테고, 나는 당신을 소유할 수 없겠죠.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뭇사람들의 말처럼 나도 당신을 포기하겠어요. 당신이라는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거예요.”
“나는 항상 새로운 세계가 궁금해. 탐험하는 영혼이라고. 당신 이외에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는 내 경험의 세계를 넓히는 여행에 불과해. 다시 돌아올 집은 당신이야. 당신이 아내라는 이름으로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결혼은 이런 거야. 미국에서 내가 날개를 펼칠 기회를 당신이 거두어 갔으니, 당신은 내가 이런 소소한 모험이라도 하는 것을 감내해야 해.”
디에고를 따라 미국에 갔을 때, 프리다는 순종적인 아내로서 그를 내조하는 데 전력했어. 자기 그림도 그리긴 했지만, 디에고의 액세서리, 모자 위에 달린 공작 깃털 장식 정도로만 머물렀지. 미국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뉴욕 록펠러 센터 벽화에 레닌 초상을 그린 논란으로 파문이 일자 디에고는 분개했어. 어떻게라도 미국에 서 더 머물며 자기가 그려내려 했던 이상을, 사람들의 인정을 되찾고 싶어 하더라. 그는 미국의 산업화된 사회에서 영감을 얻었고 미국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으며, 멕시코로 귀향하는 것을 퇴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즈음의 프리다는 공허로 가득 찼던 미국 생활에 지쳐 보였어. 태중에 있던 아기를 잃었으며, 프리다는 모른 척했지만 그 와중에도 디에고는 계속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했어. 그리고 프리다는, 어머니 마틸데를 잃었지.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이었을 거야. 삭막한 미국의 도시를 벗어나 멕시코라는 장대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프리다의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멕시코로 돌아온 이후, 디에고는 내내 프리다에게 어린아이처럼 툴툴댔어. 듣고 있자니 디에고는 화가로서 일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지는 몰라도 좋은 남편으로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가 정의하는 정절은 이기적이었거든. 부끄러움 한 줌도 쥐지 못하는 저 당당함. 상처 위에 연고를 발라주지는 못할 망정 아물기도 전에 또 생채기를 내는 잔인함. 프리다에게 그는 적당히 가까운 곳에 있을 때는 따뜻하지만, 어느 이상 가까워지면 화상을 입히는 화마 같은 존재야.
얼마 뒤 이삿짐을 옮기는 인부들이 왔어. 인간들이 짐을 옮기느라 정신없는 사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를 살금살금 감행했지. 내가 저 코끼리보다 몸집이 거대해질 수만 있다면 한 대 세게 쥐어박고 싶었어. 프리다의 울분이 풀리려면 한 대 뿐이랴. 그런데 그를 때리면, 사랑하는 사람 때린다고 프리다가 나에게 도리어 화를 내려나. 잠시 고민하다 대신 디에고가 제일 아끼는 작품을 발톱으로 찢어 버리기로 했어. 발톱을 세운 채로 날아올라 벽에 걸린 캔버스에 도끼처럼 찍어 넣고 몸무게를 실어 중력과 함께 미끄러져 바닥으로 내려왔지. 찌지직 시원한 소리를 내며 그림이 갈라져 내렸어. 그러면서 내 발톱 사이에 안료 부스러기들이 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어. 그리고 틈틈이 사냥해 둔 쥐들로 찢긴 작품 주변을 멋지게 장식했지. 나야말로 예술가가 된 느낌이었어. 자, 디에고. 어서 이리로 와 이 멋진 작품을 감상해 보시게. 맞춤형 관객으로부터 최고의 감탄사를 들을 상상을 하니, 짜릿하고 두근거리는 기다림이었지. 뒤늦게 스튜디오로 들어온 디에고가 “저 망할 고양이! 당장 길바닥으로 쫓아낼 테다!”하고 울긋불긋 화염을 내뿜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어. 어디 한 번 그래 보라지. 어차피 나는 프리다와 함께 떠날 텐데. 나는 만족스러운 기지개를 켜고는 우아한 발걸음과 함께 꼬리로 춤을 추며 짐을 싸고 있는 프리다에게로 돌아갔어.
이사한 뒤 프리다는 자신의 위장에 테킬라를 들이붓더라. 그리고 고통과 술을 연료로 그림을 그리더군. 살짝 발 끝에 묻혀 맛본 그 테킬라라는 것은, 아주 쓰고 먹고 나서 바닥이 꿀렁이는 느낌이 들어 차라리 잠에 드는 것이 편하던데. 프리다는 어떻게 저렇게 많이 마시고 그림까지 그릴 수 있는 거지 나는 의아했어. 아마 자존심에 디에고에게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으려면 생계를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내가 건너편 시장에서 생선이라도 훔쳐오면 우리의 소박한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고민했어. 디에고가 프리다의 심장에 남겼던 ‘작은 칼자국 몇 개’는 결국 그림이 되었어. 그리고 프리다는 다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디에고가 좋아했던 긴 머리를 서걱서걱 가위로 직접 잘랐지. 화려한 테우안테펙 의상을 벗고 검은색 남성 양복을 입었어. 그의 눈빛에서 고작 비둘기, 고작 그의 공작 깃털 정도로는 더 이상 머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더라. 그리고 거울과 캔버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붓을 움직였어. ‘짧은 머리 자화상’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지. 특히나 머리카락을 한 가닥, 한 가닥 그림 위에 심어 넣는 그의 예리하고 섬세한 붓질은 놓칠 수 없는 장면이었어. 그런 디테일에 집착하는 거 보면 나도 조금은 예술가의 피를 가졌을까. 나는 프리다가 그림을 그릴 때, 늘 곁을 지켰어.
산 앙헬의 팔마스 가와 알타비스타 가 모퉁이에 사는 길고양이 친구들이 나의 아군이야.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 담장을 넘어 다니며 디에고의 연애질을 관찰하고 가끔씩 소식을 전해주는데, 별거 후에도 그의 외도는 계속되었다더군. 프리다는 별거를 했을지언정 이혼을 원하지는 않았어. 크리스티나를 용서하고 다른 연적들과도 친구가 될 만큼 대범함을 가장했지만, 소멸하지 않은 채 발 밑으로 가라앉은 질투와 고통이라는 유리 조각들이 여전히 걸음마다 프리다를 따갑게 했지. 디에고는 프리다를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내밀며 먼저 이혼을 청했어. 자신과 헤어지면 화가로서의 프리다의 인생이 더 환하게 필 거라는 응원과 함께. 물론 나는 대찬성이었지. 프리다도 그에게 지기 싫어서 이혼에 동의했어. 그 해 겨울, 프리다의 손에서 이혼 통지서가 그의 엄지손톱과 손아귀에 힘 없이 구겨지는 것을 보았어. 프리다는 입술을 깨물었어. 절차적 이혼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간단해서였을까. 그를 놓을 수 있겠다는 다짐이 서지 않아서였을까. 상심 때문인지 이혼 이후로 프리다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어. 크리스티나의 간병을 받기 위해서 프리다는 친정 코요아칸의 카사 아술로 돌아갔지.
그리고서 다음 겨울이 찾아올 무렵, 프리다가 몸도, 마음도 약할 대로 약해져 있을 때를 디에고는 놓치지 않았어.
“당신이 심장으로 그리는 작품들은 나의 작품들 보다도 훌륭해. 당신이 작업을 계속하도록 곁에서 돕고 싶어. 나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고. 당신의 세계를 나만큼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당신만큼 나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으리란 것도 알고 있고. 다정했던 우리의 과거가 그리워. 곁에 있어주지 않겠어?”
저놈의 변덕. 제멋대로 해야만 성이 풀리지. 내심 그를 그리워하던 프리다는 디에고의 청혼을 받아들였어.
“대신 조건이 있어요. 우리는 철저히 동지로만 함께 해요.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이고, 앞으로 우리 사이에 잠자리는 없을 거예요. 침대에서 만큼은 당신이 뒹굴었던 여자들을 생각하며 불쾌해지고 싶지 않아요.”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아아, 프리다. 기어이 왜, 다시 그에게로. 나라면 구태여 고통의 칼날을 손으로 쥔 채로 살지는 않을 텐데. 칼을 빼버리고 꿰매어 흉터로 남기고 말지, 계속 새어 나오는 피를 지켜보면서 살지는 않을 텐데. 내가 제안하는 방식은 고통을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일까. 고통을 끌어안고 살겠다는 당신이 하는 사랑이 오히려 진정한 사랑이려나. 디에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는 마음이 당신의 ‘아모르 파티(Amor fati)’일까. 나는 당신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당신의 운명이라면, 이것이 당신의 선택이라면 나는 지켜볼 밖에. 당신이 선택한 풍랑과 당신이 쟁취할 연극적 고요를. 이 생에 그를 붙들고 가면서 그 관계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 있겠지.
나의 프리다는 이제 ‘가시 목걸이’를 차고도 자유해. 더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고, 맞바람을 피우고,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쓸 뿐. 그런 식으로 고통을 과시하는 것으로 그는 더 화려한 연극의 주인공이 되어 가고 있어. 프리다, 저 벌새가 달린 가시 목걸이를 당신의 목에 맨 것이 디에고인지 당신인지 알 수 없지만, 전설이 되는 것으로 당신은 당신 자신을 구원해. 그 끝에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의 혈관을 붓으로, 당신의 피를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당신 인생의 증거가 될 테니까. 나는 기꺼이 당신이 죽어서도 흥행할 그 연극의 목격자가 될게.
2023.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