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사내전문강사로 선발된 후 벌써 8번의 강의를 진행하였다. 나와 같은 직렬의 후배, 다양한 직렬이 통합된 교육과정, 고객지원관, 보안실무관 등... 교육대상도 다양했다. 공정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 사내전문강사로 발탁되었을 때의 기쁨은 상당했다. 선발된 직후 가게 된 강릉에서 열린 사내전문강사 보수교육에서 고용노동부 장관님 발급의 위촉장, 만년필을 받을 때만 해도 그저 영광스럽고 마냥 들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막상 한국노동교육원에서 출강의뢰서를 받으니 엄청난 부담감에 압도되었다. 격무 중에 틈틈이 강의안과 교재를 준비하는 작업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미 업무지식과 민원응대 수준이 훌륭한 내부직원들 역시 바쁜 업무 중에 대무자와 어렵게 스케줄을 조정해서 온 소중한 기회일 텐데 내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나의 쓸모에 대한 한없이 작아짐과의 대면이었다.
첫 강의는 줌교육이어서 소통의 장애가 많은 열악한 조건인 데다 교육생들과 낯 가림도 심했었다. 나 자신을 오픈할 자신이 없어 이론 정리 및 내용 전달 위주로 많은 양을 빠르게 진행하는 형식으로 강의를 준비하였다. 교육생들에게 너무 많이 질문하고 시키면 부담스러워하겠지, 너무 길게 하면 힘드시겠지... 나 혼자 지레짐작하고 일방적으로 민원응대에 도움이 될 만한 이론들을 빠르게 최대한 많이 쏟아내고 내가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며 후다닥 정신없이 끝냈다. 첫 강의를 방송사고 없이 마친 안도감도 잠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알 수 없는 찝찝함과 부끄러움, 후회가 밀려들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이게 아닌데...라는 안타까움에 계속 질척였고, 아니다 다를까 강의만족도가 매우 낮게 나왔다. 처음엔 교육생들에게 몹시 서운했다. 부정출혈이 여전하여 몸 상태가 매우 나빴고, 만남의 날 채용행사 진행으로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하나라도 더 많은 양을 전달하기 위해 끝없이 강의안을 업그레이드하느라 일주일 동안 하루 2시간만 자고, 수강생들을 위한 사비를 들인 선물과 손편지까지 준비했는데, 강의만족도를 죽 쒔으니 말이다. 마치 악플 세례를 받은 유명인처럼 수치스럽고 심적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찰나 내가 손편지와 선물을 드린 1등 교육생께서 사내메신저로 말을 걸어주었다. “선생님, 선물 감사드립니다. 근데 혹시 손 편지 쓰신 편지지 배경에 영문으로 무언가 적혀있던데 그 내용도 제게 무언가 전달하시려고 하신 건가요?”
헉... 그저 난 편지지의 캐릭터가 예뻐서 고른 것뿐이었는데 교육생들은 강사의 언행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구나... 강사의 영향력에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기 내어 교육생께 말을 걸었다. “예, 편지지의 캐릭터가 예뻐서 고른 거였고 배경의 영어문장은 아무 의미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생님~ 부끄럽지만 제가 그날 강의준비를 나름 열심히 하였는데 강의만족도 결과가 매우 낮게 나왔습니다. 제가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까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교육생분이 보내준 답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실 강의 내용은 제가 그간 모르던 것도 많고 도움 될 내용도 많아서 참 좋았어요. 이렇게 많은 양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 위한 강사님의 노력도 다 느껴졌고요. 그런데 하나 아쉬운 건 전 강사님의 인간적인 이야기, 사례들을 많이 듣고 싶었고 저역시도 그간의 업무상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내고 싶었어요. 줌교육이라는 제약도 컸지만 전반적으로 인간적인 이야기를 서로 많이 주고받지 못한 점 하나가 아쉬웠습니다.”
치부를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은 잠시였고, 난 교육생님의 진심 어린 조언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내년에도 새로운 루키 사내전문강사는 발탁되어 치고 올라올 것이고 나의 강의만족도가 계속 낮게 나온다면 난 도태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 사내전문강사로 발탁된 이유에는 분명 하늘의 소명이 있을 것이다. 내가 고용노동부에 입사한 13년 동안 민원인과 잘 소통하기 위해 흘린 피, 땀, 눈물, 열정의 과정에서 분명 직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어 발탁되었을 텐데, 그 도움이 될 만한 내용 중 내가 놓친 부분은 없는지, 전달방법에 있어서 더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해 보았다. 빠른 민원처리를 고대할 민원인들의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 새벽 2시까지 일하다 퇴근한 수많은 나날들, 동료들의 민원도 내 민원으로 생각하고 함께 고민해 주었던 순수한 나의 마음, 그럼에도 민원인들과 동료들, 관리자들에게 수많은 배신을 당했고 그럼에도 끝없이 그들을 용서했던 나의 다친 마음... 이 13년을 겪어낸 나름 묵은지로서 나만의 내공, 나만의 민원응대 비법을 교육생들과 소통하고 진심으로 전달해 보아야겠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분명 어느 순간 나에게 출강의뢰가 오지 않는 순간은 올 것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고용노동부를 다니며 장관상 3번, 지청장상 2번을 수상하였지만 항상 상을 타고 난 영광 다음에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시련이 늘 따랐었기에 내리막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없다. 늘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고 삶의 거름이 될 내리막도 내 삶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출강의뢰가 없어도 난 내 고유 업무에 집중하면 되니 어차피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첫 강의 이후부터 강의안에서 이론 부분을 대폭 줄이고 대신 나만의 독특한 실패담, 성공담, 노하우를 추가하였고 강의전달방식에도 교육생들이 대폭 참여하고 강사와 소통하는 영역을 넓혀 나갔다. 강의교재 제작에도 참여하여 평소 직원들이 고객지원관님들, 보안실무관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직접 앙케트도 진행하여 교재에 싣는 시도도 해보았다. 강의를 마치고 오면 강의후기를 바로 정리하며 잘한 점, 보완할 점도 기록해 두고 복기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여 최근 11.9. 다녀온 강의에서는 만족도 5.0 만점을 달성하였다. 교육생들의 따뜻한 마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려본다.
자녀 셋을 키우며 때론 자식이 나를 키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혼자 독신으로 살았다면 느슨해지기도 하고 안주한 순간이 많았을 나인데, 이렇게 예쁜 천사들을 내게 허락해 주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더 열심히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니 말이다. 교육생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교육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오히려 내가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그분들의 순수하고 훈훈한 마음들을 통해 감동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