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담 Dec 05. 2023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숙한 사회의 조건"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28 _ Barcelona, Spain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페인 바르셀로나,

첫 번째 이야기: 성숙한 사회의 조건.





바르셀로나로 가는 길



    호텔의 얇은 쉬폰커튼은 말라가의 눈부신 햇살을 막지 못해 이른 아침부터 온 방이 환해지게끔 방치하고 있었다. 채광이 좋은 객실 침대 위에는 오전 6시부터 게으름에 쉬이 일어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해가 한번 더 다시 뜰 때까지 침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나에게 그럴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말라가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가 오전 10시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말라가 마리아 잠브라노'역까지는 걸어서 1시간, 버스로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3박 4일의 편안함을 준 도시인만큼 말라가와는 천천히 작별하고 싶었다. 다행히 새벽동안 바다 습기를 머금은 시원한 공기가 아침의 더위로부터 지켜주고 있었고, 그 틈을 이용해 마지막으로 말라가의 해변을 산책하며 역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로 다짐하였다.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스페인 렌페 고속열차는 마드리드, 사라고사를 경유해 바르셀로나에 오후 4시에 도착한다. 편도 6시간이나 되는 긴 여정인만큼 출발 전 객차에서 먹을 점심을 미리 구입해 열차에 올라탔다.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기차는 종착역인 바르셀로나로 출발했다.


    스페인을 사선으로 횡단하는 구간이었다. 창가 좌석에 앉아 풍경을 구경하며 마음이 한껏 들떠있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넓은 황무지를 마주하였다. 또 다른 대도시가 나오기 전까지 자연 그대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것만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페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국토 3% 면적 안에 집중되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건조한 사막지역과 초목이 무성한 초원지대를 지나기도 하고, 산맥 사이로 산악 지형을 통과하기도 했다. 한 기차 안에서 스페인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즐거웠다. 음악과 함께 풍경을 감상하니 금방 6시간이 흘렀고, '바르셀로나 산츠'역에 다다랐다. 스페인의 마지막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길





천재가 세운 도시



    바르셀로나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모두가 잘 아는 '안토니 가우디'이다. '메시' 아니다. 가우디가 디자인하고 건축한 예술 작품들이 바르셀로나 도시 곳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당 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해 해마다 약 천만명이나 되는 전 세계 여행객들이 바르셀로나를 방문한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와 바로 접하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과거부터 항구를 통한 교역으로 발달한 도시였다. 구도심에서는 로마 시대 유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고딕 지구'에는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신도심의 경우 격자 모양의 도로를 따라 사각형의 빌딩블록(Manzana)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상공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때 반듯하게 잘 설계된 계획도시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크고 넓은 대로 사이를 걷다 보면 유난히 눈길이 가는 건축물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모양새가 매우 충격적이고 독특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바로 가우디의 건축물이다. 현대 바르셀로나 경관을 계획한 사람이 '일데폰스 세르다'라면, 바르셀로나에 상징을 더한 사람은 바로 '안토니 가우디'이다.


    현대에 들어 지어지는 건축물과 가우디의 건축물은 생김새부터 직관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현대의 건축물들은 단순히 '건물적 기능'에 집중하고 건축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에 가치를 두어 그 생김새가 상대적으로 비슷하고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가우디의 건축물은 건물적 장소 기능을 넘어 장식 하나하나에 상징을 더하고 미학적 디테일을 추가함으로 건물 하나가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기술적, 기능적 측면에서 현대의 건축물이 훨씬 뛰어날 수 있으나, 가우디의 작품에는 철학과 상징성이 더해져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효과를 일으켰다. 이로써 약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르셀로나의 관광산업을 성장시켰고, 현재까지도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고 있다.


    가우디와 바르셀로나를 두고 "천재 한 명이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린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바르셀로나는 관광산업 외에도 무역, 공업, 서비스업 등과 같은 다양한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저 말이 존재하는 만큼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가 가지는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Park Güell - Recinte Modernista de Sant Pau - Casa Batlló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가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가우디의 대표 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나는 그 웅장한 크기와 독특한 디자인을 마주하였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건물 외벽에는 종교적 조각을 표현해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에 따라 자연스레 성경적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또한 성당 내부에도 외벽 못지않은 화려한 장식들로 각 기둥, 천장, 창문 등을 꾸미며 자연에 대한 상징을 녹여내고 있다. 약 15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아직까지 건축을 끝내지 못해 현재도 진행 중에 있으며, 2026년이 되어서야 완공될 예정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가이드 해설은 필수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가우디는 상징과 이야기를 녹여내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가히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 모든 부분이 설계되고 실현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하고 위대한 작품이었다. 대예배당 의자에 앉아 조용히 공간에 집중하면 마치 초현실적 장소에 머물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한편으로 건물 하나가 숨 쉬는 거대한 생명체 같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버 투어리즘'으로 인해 건물 주위와 내부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며,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환경임으로 여유를 가지고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존 관람시간을 2-3시간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인파에 지쳐 1시간 만에 건물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La Sagrada Familia





성숙한 사회의 조건



    가우디만의 자연을 담은 디자인건축철학은 과거 그가 건축대학에 재학하던 때부터 이미 발현되고 있었다. 안정과 균형을 중시하는 기존 보수적 건축 트렌드에 반하는 가우디의 독특한 스타일은 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때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으며, 학회 및 교수들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는 것이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꾸준히 고수하였다.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계속 시도하며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변화를 꾀하였다. 결국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구엘'이라는 후원자 겸 은인을 만나 그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위대한 업적은 현재까지 남아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만들었다.


    만약 업계의 냉담한 시선과 평가로 가우디가 낙담하고 자신의 뜻을 굽혔다면 현재의 바르셀로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느 공동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이 그들만의 질서 혹은 규칙을 만들고, 그것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는, 특히 동아시아 문화권의 우리나라 사회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독특한 사람, 주류를 거스르는 사람을 포용하는 것이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오랜 농경사회로 대도시를 형성하고, 독단적 행동보다 협업을 통해 큰 수확을 이룰 수 있었음에 공동체 정신을 미덕으로 삼았다. 개인의 개성을 뾰족하게 살리기보다는 뭉뚝하게 깎아 다른 사람과 비슷해짐으로 마찰을 최소화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그에 대한 단점으로 자신들과 다른 모양의 사람을 수용하는데 망설이게 되었고, 심하게는 거부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은 각자가 가진 재능과 창의적 사고를 제한하는 것에 있어 일등공신인 것 같다. 한 가지 방향성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다른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괜히 불안하게 만든다. 또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잘 나가는 주류에 속하기 위해 비슷한 모양을 만드는 과정에서 박탈감을 느끼거나 과욕을 부리게 만든다.


    '새로운 것'을 배척하는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들이 급격한 변화 때문에 부정당하는 게 싫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모두 개인의 몫이지만, '절대적으로 자신이 맞다'는 생각은 버릴 필요가 있다. 과거부터 꽉 막힌 사고관만 유지되었다면 지금의 지동설, 민주주의, 현대미술 등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가우디의 아름다운 작품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 속 많은 위대한 업적들은 다양한 생각이 상호작용하는 과정 중에 탄생하였고, 또한 다양성을 포용하는 과정 중에 선진적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주류를 벗어나는 모든 것'에 있어 '한 번쯤은 되돌아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세상의 풍요로움과 꽤 많은 발전들은 비관론자보다는 낙관론자모험가, 몽상가들의 말도 안 되는 다양한 꿈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천재'일지 '괴짜'일지에 대한 평가는 사회와 역사가 정의해 주는 것이지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듯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신념, 철학, 가치관을 가지고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는 것이 어떨까. 


    마음이 넓은 사람은 이해심이 깊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성숙한 사람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도 마음이 넓은 공동체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개인의 다양한 재능과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는 곳, 그곳이 나는 '성숙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행복노트 #25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말자.




Portugal - Spain - Switzerland - Italy - Slovenia - Croatia - Hungary - Slovakia - Austria - Czech Republic - Poland - Lithuania - Latvia - Estonia - Finland - Sweden - Norway - Denmark - Germany - Netherlands - Belgium - Luxembourg - France - UK - Turkey



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 해당 글의 모든 사진은 작가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음을 밝힙니다.

* 해당 글과 사진을 출처 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해당 글을 모바일 앱보다 웹사이트 큰 화면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 네르하, "견문을 넓혀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