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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Jun 06. 2024

스위스 바젤,
"낭만 있는 여행법"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35 _ Basel, Switzerland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위스 바젤,

낭만 있는 여행법.



    스위스의 작은 수도 '베른'은 하루 만에 대부분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베른에서의 2박 3일 일정 중 문득 둘째 날 스위스 '바젤'이라는 도시에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즉흥적으로 바젤행 기차에 올라탔다.


    바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보이는 풍경을 카메라로 담으며 한껏 스위스의 자연경관에 심취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복층 열차의 위층에 앉아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낯선 곳을 방문할 때의 여행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을 따라가다 보니 1시간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고, 혹여나 기차가 독일 국경을 넘어갈세라 바젤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짐을 챙겨 바젤 중앙역으로 나왔다.


    스위스 특유의 맑고 상쾌한 하늘은 알프스의 깨끗한 빙하수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주었다. 6월 중순 초여름의 시작이라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고 있었지만, 햇빛을 피해 그림자로 몸을 숨기면 곧이 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중앙역을 벗어나 도심으로 걸어갈 때쯤 불현듯 마음속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Basel Haupftbahnhof


    사진을 찍기 위해 주머니에 잠시 넣어뒀던 '카메라 렌즈 커버'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혹시나 싶어 온 가방을 뒤져봐도 렌즈 커버를 찾을 수 없었다. 추측컨대, 기차 안 사진 찍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 잠시 넣어뒀다 주머니에서 스르륵 빠져나간 것 같았다. 타고 온 기차는 이미 떠났고, 고가의 물건이 아닐뿐더러, 특히 유럽에서 누군가 주워서 맡겨뒀을 거라는 희망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다시는 만나지 못할 렌즈 커버와의 이별이었다.


    왠지 모를 상실감이 느껴졌다. 렌즈 커버야 다시 사면되는 것이고, 가격이 비싸지도 않다. 그러나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한 흔적이 새겨진 물건이기에 꽤나 애착이 생긴 물건이었다. 타인이 봤을 때 사소하고 작은 물건일지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추억과 정이 깃든 물건이었기에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기차를 타고 저 멀리 어딘가에 도달했을 '카메라 렌즈 커버'의 작은 여행을 응원할 따름이었다.


Basel, Switzerland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지났지만,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니 카메라의 상태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여행 전에는 거의 갓 포장을 뜯었을 때와 가까운 '민트 상태'의 카메라였다면, 여행을 시작하고는 카메라 바디에 스크래치가 생기고 가죽마감도 해지며 여러 접착된 부분들도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메라가 점점 낡아질수록 오히려 카메라에 대한 애정이 나날이 커져만 갔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피부 주름살이 생기는 것처럼 카메라에 새겨진 작은 흔적들이 나와 함께 한 기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건은 각자의 용도와 목적이 있다. 처음 새것의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하여 깨끗한 미관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각자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 사용되어 닳아가는 것도 하나의 '미(美)'인 것 같다. 카메라에 흠집이 나고, 시계가 부서지고, 옷이 해져도, 그 모든 게 내가 사용하고 함께한 추억이 깃든 증거이기에 오래되고 낡은 물건이라도 나에게는 제일 아름답고 소중하다.


    사람들의 생애 혹은 역사는 특별한 사건들로 구성된다. 아무런 사건 없이 평이하게 흘러갔다면, 그건 역사로 기록되기 어렵다. 물건들도 각자의 사건들을 마주하고 얻은 그 흔적과 결과물들은 모두 역사가 된다. 그 역사로 우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소중히 기억하며 추억을 간직하는 것이다.






여행에서의 무모함



    어른이 되어 일상생활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 어릴 적 부모님의 넓은 보호막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 울타리 쳐진 작은 세계 안에서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한없이 자유로웠다. 그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으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답답함을 느껴 스스로 울타리를 넘었고, 울타리 밖의 세계는 현실이었다.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 했고, 예상치 못한 변수와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안전과 안정을 최우선시하게 되었다.


    이렇게 언젠가부터 어른들은 무모함을 피하기 시작했다. 분명 무지했던 어린 시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 세상이 모험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세상을 알아가며 상처를 받았고, 책임감을 더욱 짊어질수록 무모한 도전정신은 계속해서 사라져 갔다.



    '여행'에는 적당한 '무모함'이 필요하다.


    나에겐 멀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 유명 관광지를 잠깐 보고, 왔다는 인증샷만 남기며, 투어 스케줄에 맞춰 그저 데려다주는 대로만 다니는 그런 고리타분한 여행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다. 그러나 비행기를 놓치거나, 유명 관광지가 아닌 생소한 곳에 방문해 접하지 못했던 현지 생활모습을 관찰하고, 정해진 틀 없이 즉흥적이고 주도적으로 다녔던 여행은 늘 발견과 모험으로 가득 차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끔은 편안하고 아늑한 곳에서 쉬는 휴양 개념의 여행도 좋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어떠한 '인사이트'를 얻기에는 무모하게 고생하고 도전했던 여행이 조금 더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다. '여행 (Travel)'과 '투어 (Tour)'는 다르다. 과거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나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었기에 자유로이 세상을 알아갔던 것처럼, 지금의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 더욱 자유롭고 또 새로운 다른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여행하는 법이 아닐까.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친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헤르멘 헤세, "데미안"






낭만 있는 여행법



    스위스에서 잃었던 것은 '카메라 렌즈 커버' 뿐만이 아니었다.


    스위스를 여행하는 내내 작은 모험을 했었다.

    일주일이 넘는 스위스 여행 기간 내내 인터넷 없이 여행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유럽여행 기간을 3개월 이상 계획했기 때문에 '한 달 기간의 유심칩'을 총 3개 구매해 사용했었다. 다행히 여행 첫 출발지인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유럽 범용으로 쓸 수 있는 선불 유심칩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고, 유럽 전 지역을 여행하는 내내 전화나 문자, 데이터까지 문제없이 통신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스위스에서 문제가 발생했었다. 프랑스에서 스위스의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휴대폰 통신이 끊기더니 인터넷이나 전화, 문자 등 어떠한 서비스도 사용할 수 없었다. 매우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자 마음속 불안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휴대폰에는 작은 알림이 떴다.


서비스 제공 불가 지역
서비스를 이용하시려면 스위스 전용 요금을 지불하세요


    선불 유심과는 별개로 스위스 내에서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따로 추가 요금을 내야 했다. 가격 또한 스위스의 악명 높은 물가답게 일주일 사용에 있어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요금을 지불하고 일주일 동안 편안하게 여행 다닐 수 있었지만, 그날따라 괜히 '그 돈이면 퐁듀를 한 번 더 사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인터넷 데이터를 포기했고, 스위스를 여행하는 일주일 내내 아날로그도전적인 여행을 했다.



    연고도 없고, 방문한 적도 없는 낯선 나라에 떨어져 아무런 정보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크나큰 위험이자 도박이었다. 지도 앱을 사용할 수 없음에 자칫 길을 잃어 세웠던 여행 계획이 모두 어긋날 수도 있다. 또한 호텔, 식당, 카페 등 검색이 불가능하자 길에 가만히 서서 멍해진 적도 있다. 무엇보다 '유레일 패스'에 연결되지 않아 기차 검표 당시 자칫 무임승차로 오해받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실 계속해서 내 마음속 들었던 감정은 두려움보다는 '재밌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에선 무모하거나 미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행 중 즐길 수 있는 낭만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있기 이전에는 모든 여행객들이 이렇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행을 했었다. 의도치 않게 그때 그 시절의 여행 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만 들었었다.


    지도를 보지 않아 걸어온 발걸음을 기억해야 했다. 골목 모퉁이마다 나만의 랜드마크를 지정해 길을 잃지 않도록 했다. 호텔의 위치는 출발 전 지도의 동선 및 주변의 큰 건물들을 확인해 놨다가 나중에 찾아 돌아와야 했다. 음식점의 경우에도 산책 중 우연히 마주한 맛있어 보이는 곳에 즉흥적으로 방문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오히려 좋은 부분도 많았다.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관광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를 찾기도 했다. 휴대폰을 볼 일이 없으니 순간순간에 집중하게 되고, 장소에서 비롯되는 모든 자극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향기, 시간에 따른 햇빛의 변화 등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사소한 아름다움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 뜻밖의 통신 두절을 겪었지만 덕분에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하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시간을 잊고 온전히 순간에 집중해 여행할 수 있었음에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다가왔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행복노트 #32

여행 중 무모해서 낭만있던 순간은 강렬한 사건으로 남아 개인적인 삶의 역사로 기록된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에 깊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길을 걸을 때조차 휴대폰에 빠져 현실의 세상과 동떨어져 휴대폰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장면을 목격할 때면 가끔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섭다. 정말 휴대폰에 지배받는 사회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휴대폰을 잠시 덮어두고 현실로 돌아와 순간에 존재한다.


    종종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자극적인 것들을 차단하고 연결된 관계를 잠시 끊어내 오로지 나와 내 주변에만 집중한 순간들이 필요하다. 너튜브, 별그램 쇼츠를 통해 분비되는 '도파민'이 아닌, 평안함에서 나오는 '세로토닌'이 필요하다. 스위스에서 인터넷 없이 여행하며 느꼈던 그 자유로움을 기억하며, 지금도 집에 있을 때 '디지털 디톡스'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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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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