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48 _ Florence, Italy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하고 항상 느꼈던 한 가지는 바로 '하늘이 예쁘다'는 것이다.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일까 이탈리아의 하늘은 늘 맑고 청명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구름 한 점 볼 수 없는 것이 이곳 하늘의 특징이었다. 밝은 자연 태양빛 덕분에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반대로 그 뜨거움 때문에 야외에서 장시간 여행이 어려운 단점도 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계속 더위와 엄청난 인파에 시달려 즐거움보다 불평불만만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여행을 끝마치고 시간이 한참 지나 다시 되돌아보니 이탈리아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예쁘게 남아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하늘 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하늘의 풍경을 항상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이끌려 중학생 학창 시절 당시 장래희망이 파일럿이었을 정도다. 혹여나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꼭 파일럿의 꿈을 실현하고 싶다. 바쁜 일상 속에 잠깐이라도 하늘을 우러러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 맑고 푸른 하늘에 집중하며 마음 깊은 곳부터 시원함을 느끼는 것, 그렇게 무거운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늘을 좋아하는 이유다.
맑고 투명한 넓은 하늘은 밝고 환한 햇빛을 아래로 비추어 더욱 많은 사람들을 품어주고 이끌어준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우러러보고 감사하며 하늘이 주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피렌체에는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만큼 유명한 랜드마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베키오 다리'다.
피렌체의 중심에는 아르노 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이에 피렌체의 북쪽과 남쪽을 자유롭게 건너기 위해 베키오 다리를 건설했었고, 피렌체의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리를 활용하고 있었다. '베키오'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오래된, 옛 것의'라는 뜻이다. 다리가 지어진 기원을 찾으려면 시간을 많이 거슬러 기원전까지 올라가야 한다. 먼 옛날 로마시대 때부터 베키오 다리를 활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물론, 현재의 모습은 몇 번의 재건축을 통해 과거와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르겠지만, 피렌체 역사에 있어서 꼭 빠질 수 없는 주요 건축물임은 확실하다.
내가 베키오 다리를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강 위로 집들을 줄지어 이어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다리 양 옆 공간을 확장한 흔적과 다리 위의 지붕이 독특했다. 일반적인 평범한 모습의 다리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고, 덕분에 많은 관광객들이 단순 역사적 의미 이상으로 베키오 다리를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베키오 다리 위 양 옆에는 보석과 관련된 상점과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상점들이 가득하지만, 과거에는 피렌체 주민들에게 시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 베키오 다리 위에서 각종 물물교환과 교류가 이루어졌고, 다리의 중심에는 넓은 광장의 공간이 있어 아르노 강 전망 확보와 함께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장소로 건설되었다. 특히, 피렌체 시에서 다리와 관련된 건축 규제를 풀어줌과 동시에 상점의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기형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실제로 베키오 다리를 건널 때면, 다리가 아닌 일반 도로를 걷는 느낌이 든다.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의 오랜 역사와 함께 했기에 수많은 역사적 주요 사건과 일화들이 베키오 다리 위에서 일어났다. 중세시대 피렌체의 두 귀족 가문이 전쟁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고, 중세 고전문학인 '신곡'을 집필한 단테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도 서려있는 곳이다. 또 당연하겠지만, 중세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를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 지금의 베키오 다리가 지붕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피렌체 가문을 부흥시켰던 코지모 1세 데 메디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지모 1세의 유년기는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메디치 가문이지만 모계 쪽이었기에 주요 인사가 아니었을뿐더러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암살되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수장 자리에 공백이 생겼고, '메디치'가의 사람들은 뜬금없이 코지모 1세를 수장으로 추대했다. 이 배경에는 어떤 정치적 계산이 분명 존재했을 터이지만, 그렇게 우연히 권력을 잡은 코지모 1세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고 본인의 힘을 공고히 다져 추후 토스카나(투스카니)의 대공으로까지 성장한다.
코지모 1세는 국가의 성장에 잘 어울리는 권위적이고 거센 피렌체의 군주였다. 그는 권력욕과 영토 확장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주변 경쟁 도시였던 시에나 공화국을 굴복시켰고, 계속해서 군대를 증강시켜 토스카나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또한 메디치가의 전통인 예술 후원에도 적극적이었기에 현재 피렌체의 대표 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우피치 미술관을 건설했다. 또한 아르노 강 건너 남쪽에 있는 '피티 궁전(당시에는 대저택)'을 매입해 피렌체 도시의 중심 공간을 모두 장악했다.
그러나 코지모 1세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암살 시도였다. 선대 메디치 가문의 수장도 암살로 명을 달리했고, 코지모 1세도 숱한 암살 위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의 과한 세금 부과로 인해 시민의 미움을 받았고, 밑사람을 하대하며 본인의 출세에만 집중하는 그의 오만한 태도는 주변에 많은 적을 두게끔 만들었다. 이에 그가 거주하는 베키오 궁전부터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 베키오 다리 건너 피티 궁전까지 일반 군중들과는 마주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을 갈망하게 되었고, 이에 약 1km 길이의 '바사리 회랑'이라 불리는 공중통로가 건설되었다. 베키오 다리 상층부의 지붕 형태는 이런 코지모 1세의 요구에 의한 '바사리 회랑'의 일부분이다.
이처럼 피렌체 중심에 늘 존재했던 베키오 다리는 지금도 피렌체 중심에 서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학을 전공했던 나에게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 하면 빠질 수 없이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군주론'을 집필했던 마키아벨리다. 그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시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았고, 이를 활용해 군주가 권력을 공고히 다지는데 필요한 여러 방법과 조언을 집필한 책이다. 16세기에 쓰인 이 책은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권력자와 리더들에게 사랑받았던 책이며, 누가 읽느냐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책' 별명을 가진 책이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의 군주였던 '로렌초 2세 데 메디치'를 위해 군주론을 집필했다. 그 당시 공직에서 파면당했던 마키아벨리는 다시 공직으로의 복귀를 위해 로렌초 2세에게 군주론을 헌정했으며, 군주론을 통해 다시 한번 위대한 피렌체를 건설하고 싶은 야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군주론을 읽은 당시 지도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역사적 군주들의 평가에 있어 위협을 느끼고 금서로 지정했다. 군주론은 이렇게 어둠으로 사라지는 듯했으나, 마키아벨리 사후 군주론은 출판되었고 그의 현실적인 조언이 명성을 타고 퍼져 현재의 지도자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끼칠 만큼 정치학의 고전이 되었다.
마키아벨리즘 혹은 마키아벨리주의는 군주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도 합리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현재의 민주주의와 윤리에 어긋나는 가치 때문에 대중에게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군주론을 읽으며 느꼈던 마키아벨리는 누구보다 인간을 정확히 파악한 인물이었고 군주의 시선에서 보는 다양한 현실적인 상황을 잘 분석한 사람이었다.
* 하기 모든 인용은 페이지2북스 출판사의 '군주론'을 참고했다.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이나 악행을 정당화하는 문장은 이 책이 위험한 책으로 느끼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밑의 인용문들을 보았을 때, 읽는 사람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넓히기 위해 전쟁 혹은 악행이 합리화될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 "전쟁이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연기될 뿐이며, 전쟁을 미루면 미룰수록 당신은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p. 44)
* "사실 도시를 완전하게 소유하는 방법은 도시를 파괴하는 것 외에는 없다." (p. 54)
* "만약 악행에 대해 '잘 사용했다'라는 표현이 허락된다면, 잘 사용했다는 것은 본인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한 상황에 처했을 때 악행을 단 번에 저질렀다는 것을 말한다." (p. 86)
그러나 나에게 마키아벨리는 전쟁 혹은 악행을 옹호하는 사람이 절대 아닌, 그도 올바른 미덕을 가진 군주를 존경하며 올바른 이상과 가치, 도덕성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군주가 다양한 시선을 가지기를 원했으며 위대한 인물의 좋은 점을 갖추기를 희망했다. 또한, 군주의 한계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독단적인 행동과 결정보다는 겸손함을 갖춰 타인의 의견을 수용할 필요도 있음을 권했다.
* "풍경을 그리려는 자가 산과 고지대의 특성을 밑에서 살펴보기 위해 평야로 내려가고 반대로 낮은 곳의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산 위 높은 곳으로 올라가듯이" (p. 22)
* "인간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 걸어간 길을 걷기 마련이고, 그들이 살았던 행적을 모방하기 마련이다. ... 현명한 사람이라면 위인들의 행적을 따르며 가장 뛰어난 자를 모방해야 한다." (p. 57)
* "모범을 몸소 보이는 것만큼 군주를 존경받게 하는 일은 없다." (p. 183)
* "군주는 널리 지혜로운 조언을 구하고, 자신이 조언을 구한 일에 관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실을 경청해야 한다. 누구든지 또 어떤 이유로든지,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자가 있다면 오히려 화를 내야 한다." (p. 196)
또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군주가 피렌체를 버리고 잠시 떠났었던 공화정 시대의 공직에 있던 사람으로서, 민중의 힘에 대해서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비록 군주론의 모든 말들이 결국 군주의 권위를 위한 조언들이지만, 그도 이상적인 덕목과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 "현존하는 최고의 성채는 바로 일반 시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p. 181)
그런 그가 군주의 악행을 정당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그가 느낀 인간본성 때문이다.
* "인간이란 잘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예 끝장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 인간에게 해를 가할 때는 복수를 당하게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야 한다." (p. 35)
*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확실히 경험하기 전까지 진심으로 믿지 않는 인간의 불신하는 특성에 기인한다." (p. 60)
* "인간의 변덕스러운 본성 ... 인간을 설득하기는 쉽지만, 설득된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p. 61)
* "인간이 남을 해치는 이유는 공포 혹은 증오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p. 77)
* "평화로울 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달려오고, 모두가 충성을 약속하고, ... 그러나 진정한 어려움이 닥쳐오면, 즉 국가가 시민을 필요로 할 때가 오면 그런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사라지고 만다." (p. 94)
* "인간은 신중함이 부족해서 일단 맛이 좋으면 그 아래에 놓여 있는 독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p. 124)
***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앞과 뒤가 다르고, 위선적이며, 위험은 피해 가고, 이득이 되는 일에는 극성을 부린다. ...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다른 준비를 해두지 않은 군주는 몰락하게 된다 ... 저열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본인의 유익을 위하여 이를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p. 144)
* "인간은 사악하고, 당신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 (p. 151)
* "인간이란 필수 불가결한 조건에 따라 선하게 행동하도록 강제되지 않는다면, 언제나 당신을 악하게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p. 197)
이처럼 마키아벨리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인간을 신뢰할 수 없고 악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사실 그도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인품을 갖춘 인간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최악의 경우만을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사회에는 무조건 악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좋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사회가 병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철저히 군주의 시선에서 권력의 안전을 위해 인간의 악한 본성을 고려한 채 현실적으로 이상과 현실을 분리 후 글을 써야 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 모든 면에서 선함을 업으로 삼으려는 자는 선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패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p. 133) ... 만사를 곰곰이 따져보면 어떤 것은 덕으로 보이는데 이를 추구한 자는 패망하고, 어떤 것은 악으로 보이는데 이를 추구한 자는 안정을 얻고 그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p. 135)
그는 기본적으로 군주의 자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현대에도 대통령 선거를 보면, 국민이 반반으로 나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 대체적으로 많은 민주화된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과거 당시, 군주를 민주주의 형식이 아닌 대체적으로 세습에 의해 권력을 가지게 되었기에 모든 민중이 군주를 싫어해도 직접적으로 정당하게 군주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에 뒤에서 권모술수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 군주의 입장에서는 그런 권모술수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최악의 인간상과 상황을 고려한 채 군주론을 쓸 수밖에 없었다.
* "군주는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 악한 일을 해서 미움받는 것처럼 선한 일을 해서도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p. 163)
그렇게 마키아벨리의 생각에는 군주가 사랑의 군주가 되기보다는 군중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고,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악하기에 이는 합리화될 수 있었다. 그래야 군주는 타인의 뜻에 휘둘리지 않고, 군주 본인의 의지만으로 국가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분별력 있는 사람은 인색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것을 개의치 말아야 한다. 인색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 137)
* "군주가 너무 인자한 태도를 보이면 방종을 허락하여 살인과 강도가 발생하도록 방치하게 된다." (p. 143)
*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144 ...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유지되는데, 이는 절대로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다." (p. 145)
* "사람들이 군주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뜻에 따른 것이고, 두려워하는 것은 군주의 뜻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에 기초해야 한다." (p. 148)
결론적으로 나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전문적인 배경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군주론을 읽고 감히 판단한 바, 마키아벨리는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군주의 입장에서 각 상황에 맞는 훌륭한 조언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군주의 탁월함(역량)의 중요성도 매우 강조한 사람이었다. 늘 스스로의 힘을 기르고, 끊임없는 개발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평화의 시기를 한가롭게 보내서는 절대 안 된다. 열성을 다해 역량을 키워 자기 것으로 만들고, 역경 시에 그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p. 131)
무엇보다 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느껴졌던 부분은 군주도 자격이 없고 현명하지 못하면,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게 좋았다. 군주도 자격이 안되고 자질이 없으면, 그 권력으로 비롯된 각종 폭력과 악행은 자연스럽게 군주 본인에게 향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 "스스로 현명하지 않은 군주는 절대로 좋은 조언을 들을 수 없다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p. 197)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명작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그가 바라보았던 인간의 본성과 냉정한 상황들이 지금도 여전히 적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근현대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수많은 권력자와 독재자들이 군주론을 근거로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한 경우도 있었기에, 원문보다 해석의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느낀다.
나도 기본적인 인간의 본성은 유약하고 탐욕스러우며, 겁과 두려움에 지배된다는 생각에 마키아벨리와 동의한다. 하지만, 권력자도 같은 인간이므로 그의 악한 본성으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억압받고 죽을 수 있음을 마키아벨리는 생각했어야 했다. 그는 그의 책이 추후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가질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세상과 인간을 꿰뚫어 보는 그의 관점에 감탄을 한 다른 한편, 오히려 시대를 뛰어넘는 한 차원 높은 경지의 윤리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조언을 했었으면 어땠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욕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 "무엇인가 획득하고자 하는 욕망은 매우 자연스럽고도 일반적인 것으로, 그럴 만한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비난이 아니라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면서 어떻게든 이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다." (p. 42)
리더의 자리는 중요하다. 상하관계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리더'라는 의미가 누군가의 위에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나는 이런 관념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리더가 구성원들에 비해 훨씬 능력 있기에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리더 본인은 구성원들과 동등한 위치, 아니 더 낮은 위치에 있다는 겸손의 덕목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대표해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가지는 사람은 분명 그만한 능력과 자격이 있어야 한다. 그런 자리가 주는 무거움을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맡은 책임 이상으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로 요직을 차지하는 사람들 중 다수 이런 덕목이 너무 부족하게 느껴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회사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상을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과 연결되어 있기에 회사에서의 정치질은 너무 중요하고, 반대로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한테 아부하는 사람을 요직에 앉혀주며, 능력 우선이 아닌 학연, 지연 등으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사람에게 잘 보여 이득을 취하기 위해 윗사람에게 기고 아랫사람은 본인을 모시길 원하는 강약약강의 추악한 인간상이 존재한다. 특히, 회사처럼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경우, 전형적인 '잘 되면 내 덕분, 안 되면 니탓'의 추한 인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 "군주는 부담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은혜로운 것은 본인이 직접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p. 161)
또한 상명하복의 체계가 강한 군대에서도 인간이 권력을 잡고 누군가의 위에 올랐을 때의 본성을 너무나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분명 이병, 일병 때 본인이 느꼈던 부조리함을 답습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던 병사들이 선임이 되었을 때, 갑자기 180도 변해 부조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어떤 계기로 그런 부조리가 다 사라졌다 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형태의 부조리가 새로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 번 권력을 느끼면 누군가가 대접해 주는 것과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것에 매료되어, 자신이 정말 능력 있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한심한 착각을 하게 된다.
* "당신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집단이 부패했다면 당신은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성향을 따라야만 한다." (p. 165)
나는 누군가를 이끄는 직위, 직급, 직책에 서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오는 부, 권력, 명예에 더 비중을 두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올라가면 안 되는 자격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판단은 사실 본인만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남들 눈에 그것이 보였다면 더욱 자격 없는 멍청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 본인은 권력욕이 아닌 사명감으로 그 자리에 있다고 스스로 착각한다면, 그 또한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자격 없는 멍청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요직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그 조직은 부패한 것이다. 당장은 눈에 안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꼭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고, 유유상종의 법칙에 따라 자신과 비슷한 혹은 아부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이고, 그렇게 악행을 답습하며 조직은 서서히 썩어가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멍청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 리더의 자리에 스스로 충족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그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하는 자신의 자격에 대한 고민을 우선적으로 할 것이다. 또한, 멍청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대업을 이룬다 생각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도 꼭 필요함을 늘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조직원에 대한 감사함과 존중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우하라.
이마누엘 칸트
리더는 이끄는 존재다. 길을 안내하는 존재다.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순간 모두가 죽는다. 그렇기에 리더는 자신보다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의 무게를 견디고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최악의 순간에 남들을 밟고 생존해야 할 더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을 위해 조직원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누구보다 먼저 던질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능력이 더해지면 조직원들의 존경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며, 그것에도 늘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자리에서 오는 보상을 늘 경계해야 하며,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견제할만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노트 #45
진정한 리더는 존경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의 행복론을 두고 글을 마무리한다.
* "시대의 특성에 자신의 행동 방식을 맞추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 방식이 시대의 특성과 맞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믿는다." (p. 205)
* "운과 시대는 변하고,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완고하게 유지한다. 따라서 인간은 그 둘이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해지고 그 둘이 불화를 겪을 때 불행해진다." (p. 208)
마키아벨리는 시대적 특성과 주변의 상황이 얼마나 자신의 본성과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지에 따라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나 조직이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을 경우, 그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 한 나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기 싫은 인간상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성격상 그들에게 대항한다 해도 조직이 그것에 대한 잘못됨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이단아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좋은 방법은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 조직의 핵심 인원이 되어 내가 힘을 가졌을 때 조직을 바꾸는 것이다.
*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
어쩌면 마키아벨리도 그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군주론을 통해 공직에 복귀한 후, 자신만의 이상적인 사회를 요직에서 실현시키려 했던 세상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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