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50 _ Siena, Italy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유럽 여행 중 큰 도시를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은 시간을 내어 근교 도시까지 함께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마드리드를 방문할 때 근교인 톨레도를 함께 여행한다거나, 파리를 방문할 때 베르사유를 방문하는 등 한 곳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일정에 근교 도시를 추가하게 된다. 덕분에 근교 도시를 향한 교통량, 인프라 등이 함께 발전함에 따라 점점 근교 도시 접근성이 편리해지고, 다양한 패키지 관광 상품들이 등장하는 등 기존의 큰 관광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게 된다.
이탈리아 시에나는 피렌체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다. 역사적으로 피렌체와 비교해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그 도시의 크기나 명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 여행자들에게 시에나는 피렌체 여행 중 잠깐 시간 내어 하루 정도 다녀오는 근교 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피렌체 여행 중 시에나를 함께 다녀오면 좋다는 정보를 접하고 일정에 추가하게 되었다.
늘 새롭고 낯선 곳을 방문하는 게 기대되는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에나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피렌체와 시에나를 잇는 길은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을 남북으로 횡단한다. 한국 사람들은 '토스카나'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단순 영문 표기의 차이이며, 현지어로는 '토스카나'가 맞는 표현이다. 우리나라의 '주(州)'에 해당하는 이 지방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문화, 역사, 예술, 자연 등 모든 것을 집대성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만큼 이탈리아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토스카나 지방의 다양한 풍경들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풍부한 일조량에 따라 와이너리가 발전했고, 덕분에 정돈된 포도밭들과 곳곳의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운치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스틸링뷰티' '투스카니의 태양' 등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종종 봤었다. 그리고 늘 그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마침내 그 풍경 안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낯설었고, 마치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런 두근거리는 감정은 시에나를 여행하는 내내 지속되었다.
피렌체에 비해 시에나는 매우 한적한 도시였다. 시에나를 제대로 그리고 오래 여행하고 싶었던 마음에 아침 8시가 되기도 전 시에나에 도착했다. 시에나 현지인들과 하루를 같이 시작하는 느낌이었고, 덕분에 시에나에서 잠시나마 머물러 살아가는 느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시에나 역사 지구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에서 천천히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시에나 역사 지구는 마치 스페인의 톨레도처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톨레도가 중세시대모습을 간직했던 것처럼, 시에나도 과거 이탈리아의 중세시대로 다가왔다. 넓지도 그렇다고 너무 좁지도 않은 골목길 사이로 현대적인 복장의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에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건물 외벽 벽돌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고, 물건 하나하나 각자만의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듯했다.
피렌체의 거리보다 훨씬 더 한적하고 조용한 게 매력이었다.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상대적으로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적인 장소들을 선호하는 나는 이런 시에나가 피렌체보다 훨씬 좋게 다가왔다. 정신없고 분주한 자극 속에서 온전히 여행 장소의 분위기를 느끼긴 어렵다. 그러나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느낌, 골목 속 작은 대화 소리, 여유로운 공간들 등 잔잔함을 통해 시에나를 구성하는 사소한 것들에도 훨씬 집중할 수 있었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가로등들이 특히 인상 깊었다. 물고기의 모습 혹은 정체 모를 형상들 위로 다발의 조명이 있었고, 직접적이지 않게 거리를 은은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처음 조명을 봤을 때, 거리마다 개성을 더하기 위한 그저 하나의 조형물이라 여겼지만, 저녁이 되어 어둑해졌을 때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조명처럼 줄줄이 이어진 작은 전구들은 거리에 잔잔한 따뜻함을 더해줬다.
시에나 여행 중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였다. 좁은 골목 때문에 차가 양쪽으로 통행하기 어려워 시에나 사람들은 작은 스쿠터를 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건 이탈리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상대적으로 많이 개발된 도시들은 그에 맞는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현대적 모습을 많이 갖추고 있지만,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들의 경우, 넓은 도로를 만들 수 없기에 사람들은 작은 교통수단을 활용하게 되었다. 이에 이탈리아에서 큰 차를 보는 일은 드문 편이며, 수도인 로마에서조차 주 교통수단은 작은 스쿠터인 듯했다. 이처럼 차들의 부재는 시에나에 더욱 잔잔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고, 그 고요한 적막이 나는 너무 좋았다.
시에나 역사지구의 고요함에 녹아 천천히 산책하기도, 앉아있기도, 심지어 누워있기도 하며, 현지의 여유를 고스란히 즐기고 있었다. 시에나는 피렌체를 여행하며 시간 내어 잠시 방문하는 근교 도시의 인식이 강하지만, 나에게 시에나는 오히려 피렌체보다 훨씬 더 감명 깊은 도시였고, 혹시나 다음에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반대로 시에나를 방문하기 때문에 피렌체에 잠깐 들르게 될 것 같다.
시에나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은 '캄포 광장'이다. 역사지구 건물들 속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이 광장은 갑작스러운 드넓은 공간에 감탄하게 되는 한 편, 그 생김새도 여타 다른 광장들과 달라 많은 매력을 지닌 장소다. 먼 과거부터 시에나의 대표 공공장소로 활용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의 관광객들까지 사랑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캄포 광장의 모양은 조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 푸블리코 궁을 중심으로 8개의 선, 9개의 구역이 나눠져 있어 더욱 조개의 모양이 떠오르게 만든다. 또한 여기서 가장 특이했던 점은 광장이 푸블리코 궁 쪽으로 갈수록 살짝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직접 방문한다면 그 편안한 경사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누워있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광장 끝자락에 누워 만지아 종탑과 함께 살짝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한 껏 여유를 만끽했다.
시에나가 이처럼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나름 가슴 아픈 역사와 관련 있다.
과거 중세시대의 이탈리아는 도시 국가들처럼 각 도시별로 분열돼 다른 정체성과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 혹은 교황처럼 중앙 세력이 존재했지만, 각 도시 하나하나의 영향력도 컸기에 각 지역의 군주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에 있어서만큼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대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떤 도시는 잠시 공화정이 되기도 하고, 어떤 도시는 절대적인 한 가문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과거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는 도시들의 연합과 분열이 반복되는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마찬가지로 투스카니 지방에는 시에나, 피렌체, 그리고 피사 등 각 도시들이 서로 세력 다툼을 하며 절대적 패권을 향해 도전하고 있었다. 각자의 영토와 영향력을 확장하는 과정 중에 자주 부딪히게 되었는데, 시에나는 투스카니 지역에서 특히나 피렌체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지속적으로 경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에나의 영향력이 조금 더 강했다. 13세기말, 시에나 공화국의 군대는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피렌체 군대를 격파하는 등 선전했지만, 흑사병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힘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 시에나 공화국은 점점 쇠퇴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6세기에 영원히 몰락하고, 피렌체에게 패권을 넘겨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처럼 시에나는 과거 피렌체와 몇 세기동안 경쟁하는 번영했던 도시였지만, 결국 경쟁에서 패하게 되며 더 이상 발전 없이 과거에서 그대로 멈추게 되었다. 그렇게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역설적으로 피렌체를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시에나를 함께 찾게 되며 경쟁상대였던 피렌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 피렌체의 존재 덕분에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에나와 피렌체는 경쟁 속에서 서로 자극하며 번영하게도, 몰락하게도, 그리고 도움을 주기도 하는 재미있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 시에나와 피렌체처럼 세상에는 유명한 세기의 라이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 두 예술가들은 동시대에 살며 서로 경쟁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숱한 걸작들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라이벌의 성격과 성향이 완전 다른 점이었다. 다 빈치는 화려함을 추구해 자신을 치장하고 사람들과 유희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반대로 미켈란젤로는 보이는 것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조금 외골수적인 성격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대비되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완벽했기에 세기의 라이벌로 자리 잡았다.
이 외, 식품계에서는 코카콜라와 펩시, 스포츠에는 메시와 호날두, 나달과 페더러, 학계에는 고려대와 연세대 등 다양한 라이벌들이 존재한다. 이런 경쟁 관계는 흥미를 유발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뿐더러, 영화나 소설 속 주제로도 자주 활용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하지만, 정작 경쟁에 있어 가장 많은 자극을 받는 사람들은 경쟁에 속해 있는 본인들일 것이다. 경쟁 구도 속 경쟁자를 의식하며 그들은 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동기부여해 성장하고 발전해 나간다. 이렇듯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선의의 경쟁'이 있다.
서로 발전을 도모하는 낭만적인 선의의 경쟁이 있다면, 반대로 서로 파괴하고 스스로 파멸로 이끄는 '악의의 경쟁'이 있다. 후자 쪽이 훨씬 더 일반적인 경쟁에 가까울 것이다.
'경쟁'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 관계 개념이며, 인류사 대부분이 경쟁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진화론적 측면에도 지금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경쟁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가설이 전제되어 있다. 한정된 자원, 안정적인 보금자리, 매력적인 이성 등 풍족하지 않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차지하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경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에 우리는 경쟁을 바탕으로 싸우고 성장하며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경쟁이란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상대방보다 우월해야 하며, 본능적으로 상대를 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속 뿌리 깊은 곳에는 대체적으로 다른 타인을 향한 존중보다는 공격성이 자리 잡게 된다. 경쟁자가 사라져야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고, 적어도 그들보다 우월해야지만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을 질투하거나 교만한 심리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부추기게 된다. 즉, 비성숙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는 경쟁은 타인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할 현대 문명사회 속 사회를 병들게 하고 주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며 그 끝에는 스스로 파멸하게 된다.
나는 선의의 경쟁을 위해서는 타인을, 상대방을, 경쟁자들을 향한 존중이 기본적으로 밑바탕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존중의 밑바탕 안에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볼 줄 알며, 더 나아가 그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단점을 정확히 인지할 때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상대방이 가진 장점을 인정함으로 제거 대상이 아닌 나의 발전을 위한 기준점 혹은 동기부여를 위한 자극제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의 마음이 작을수록, 본인이 가진 열등감이 많을수록, 부정적 감정이 마음을 채워 통찰력과 여유가 들어올 틈이 없게 된다. 이렇게 악의의 경쟁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그릇이 넓고 여유가 많은 똑똑한 사람들은 경쟁에 있어 좋은 부분은 활용할 줄 알되, 경쟁보다는 상호존중 속 협력과 발전을 도모한다. 브라이언 헤어 작가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에서도 강조하듯 경쟁은 오히려 타인을 적으로 만들어 생존에 불리하게 만들고, 타인과 잘 융화되어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함을 잘 알려주고 있다. 악의적 경쟁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며, 사회적 지능이 부족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비성숙한 사람의 온갖 비도덕적 행동들로 인해 성숙한 사람은 상처받아 좌절하거나 지지 않기 위해 똑같이 동화되기에 이렇게 사회가 점점 병들어가게 된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당시 내가 늘 좌우명처럼 하고 다니는 말이 있었다. 바로 '꿀리지 말자'였다. 지금 와서 보니 다소 '중2병'스러운 좌우명에 부끄러워지는 다른 한 편, 무의식적으로 열등감의 다른 표출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 자존감이 높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자존심은 강했었다. 그렇기에 더욱이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했고, 누구에게 진다면 내 존재가 무너질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날이 선 성격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점점 무뎌지면서 성숙해질 수 있었고, 스스로 병들어 있는 마음을 인식함에 따라 악의적 경쟁심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가정의 요인, 환경의 요인 등 다양하게 있지만, 우리나라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했던 것 같다. 좁은 영토에 자원은 없고 인구는 많은 우리나라 특징상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저 한 낱 작은 등수와 점수 차이일 뿐인데 급을 나누고, 우열을 가르며, 도태되면 안 된다는 경쟁의식을 가지고 성장했다. 덕분에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나 삶의 질이 올라간 것은 맞지만, 반대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점점 퇴보해 가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분명한 지향점 혹은 도착점이 있고, 그 과정에 따른 평가기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짧은 자본주의 역사 속 그 철학적 깊이와 의식 수준이 미쳐 따라오기도 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뤘기에, 우리나라는 한 가지 분명한 지향점과 평가기준이 '돈'이 되었다. 크게는 주변 선진국에 비해 작게는 옆 집 이웃에 비해 빈곤하기 싫은 경쟁적 심리 덕분에 실제로 발전을 도모하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혹자는 올바른 요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시대적 상황으로 꼭 필요한 부분이었음을 인정하며, 경쟁을 통해 사람들을 고무할 수 있었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로도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과거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경쟁과 비교에 연약한 우리나라 사회는 불필요한 열등감과 한 낱 가벼운 우월감 속 다 같이 어려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당하지 못한 경쟁방식 혹은 옳지 못한 행동임을 스스로 알면서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들도 다 한다'는 둥 스스로 합리화하며 윤리와 인간성을 버리고 있다. 다층적인 면을 전혀 보지 못한 채 점수와 돈으로 급을 나누고 '쟤보다 똑똑해' '쟤보다 나아' 등의 비성숙한 생각으로 안도하고 위로한다. 서로를 끌어내리는 경쟁이 당연하듯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악의적 경쟁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나라 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아파가고 있다.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겨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질투할 사람도 늘어난다.
알랭 드 보통, '불안'
경쟁에서 가장 재밌는 점은 자신과 비슷한 무리의 사람들에게서만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뛰어넘을 수 없는 사람들에 있어서 경쟁심리를 느낄 수 없으며, 자신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다. 이 또한 나는 사람의 가장 찌질한 강약약강의 본성이 그대로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본성을 극복하고 초월한다면, 그 개인은 아마 가장 많은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타인을 경쟁자가 아닌 보완의 지표로 삼아 성장하고, 궁극적인 목표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니기에 한계와 끝이 없는 발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제일 고차원의 올바른 경쟁은 상호보완의 관계라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의 장단점을 참고하며 발전할 때에 선의의 경쟁이 이뤄지고, 이 관계 속 진정한 경쟁자는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일 것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에게도 여유가 있고, 그의 진취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그 발전의 발걸음을 따라 배우고 같이 성장할 수 있다. 반대로 가장 최악의 경쟁은 증오와 열등감 혹은 우월한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경쟁이다. 이는 반드시 상대방을 제거해야 끝나는 경쟁이기에 그 끝은 인간성을 버린 파멸밖에 없다.
행복노트 #47
넓은 마음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나는 경쟁을 싫어한다. 나는 누군가를 밟고 이기는 것보다 다 함께 승자가 되는 이상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상황이 있기에 이런 이상향을 실현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또한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부분도 있다. 다만, 되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선의의 경쟁을 만들어 나가거나, 조금 손해 보더라도 양보하며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들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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