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용기예요.
나에게 온 작은 생명체가 내 아이라고 인정할 용기요.
열 달 동안
우리 아기가 온전한 사람으로 몸도 마음도 잘 갖출 수 있도록
내 몸으로 잘 품었다가
세상에 내놓을 용기요.
나는 그 아이의 엄마이니
아이가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고
궁극적으로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키워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 믿음이 필요해요.
그래 동주야 무서워하지 마.
결코 쉬운 일 아니고 너의 일생을 온전히 바쳐야 할 만큼
어렵고 어쩌면 고통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동주는 잘 해낼 거라고
결국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힘내라고, 도전해 보라고,
그런 응원의 말이 필요해요.
제 울음은 나눠드리지 않을게요.
이제 저는 울지 않을 거니까요.
그 대신 저를 축복해 주세요.’
최지영 권사는
어둑신한 예배당에 홀로 앉아있다.
어린것이
지 말마따나
며칠 전까지 열아홉이었다면서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이 어찌나 기막히던지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임신을 했단다.
남친은 외국 어디로 가서 연락두절이란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면 연락은 닿을 거고
본인의 상태를 알릴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을 거란다.
톡을 보냈는데
읽지도 않는 사람한테
굳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을 작정이란다.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겠단다.
아이를 안 낳기로 결정하면
부모님은 누구보다 상처받으실 거고
낳겠다고 하면
상처보다 깊은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거란다.
그래서 혼자 아이를 낳을 거고
주변 모든 사람이
걱정 안 해도 되고
상처받지 않아도 되고
당신의 딸이 평생 불행하게 살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와 함께 충분히 행복해지면
적어도 그런 확신이 들 때
그때 말씀드려도 늦지 않을 거 같단다.
최지영 권사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나쁜 물음을 물었다.
왜 꼭 낳아야 하냐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그 나이에
꼭 그래야 하냐고.
'그런 사람들의 사정은 잘 모르겠고요,'
당돌하기가 짝이 없는 그 애가 그랬다.
자기는 존엄하기 때문이란다.
아울러
작지만 펄떡거리는 심장을 달고 있는
자기 몸속 생명 또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존재에 걸맞은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단다.
고작
스물의 어린 입에서 나온 말이
최지영 권사의 명치에 덜컥 걸렸다.
뭐 때문에 그리 우나 싶어
사연이나 들어 볼까
위로나 좀 해줄까,
그저 가볍게 말 걸어 봤건만
‘권사님 말씀대로
생판 남이라 서요.’
너무 엄청난 걸 들이미니
생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축복이든 응원이든
마음이 담겨야 하는 것이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
‘처음 뵀는데
너무 큰 짐을 안겨 드렸죠?’
동주의 얼굴에 여린 웃음이 담겼다.
좋을 것 하나 없는 남의 인생사에 끼고 싶지 않은
이 마음 안다는 듯
뭔가 아쉽고 어정쩡한 웃음이
괜히 민망했다.
오죽 외롭고 무서우면
그야말로 생판 남에게 달려들어
축복 좀 해달라고 저럴까,
짠한 이 마음도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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