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 작가님은 장례식때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겠다는 너무도 강렬했던 욕망이 생겨서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페터 한트케 작가님은 글을 쓸 때 반드시 본인의 옛날에 대해, 적어도 쓰고 있는 시간 동안은 지나가 버린 일에 대해 쓴다고 한다. 늘 그렇듯이 문학적으로 대상에 몰두하며 본인 자신을 회상하고, 문장을 만드는 기계로 피상화시키고 객관화시킨다고 한다. 이 페터 한트케 작가님은 본인 어머니의 이야기를 쓴 이유가 ① 첫번째 이유는 본인이 어머니에 대해서, 또 어머니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고 믿기 때문이고, ② 두번째 이유는 본인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고, ③ 마지막 이유는 방식은 좀 다르겠지만 마치 인터뷰 기자처럼 이 자살을 하나의 사건으로 재현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시절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치명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좋다는 안이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가능성이란 없었다. 사소한 불장난, 몇번의 킬킬대는 웃음, 잠깐의 당혹감, 그러고 나서 처음 짓게 되는 낯설고 침착한 표정. 다시금 찌든 집안 살림이 시작되고 첫아이가 태어난다. 부엌에서 바쁘게 일한 후 잠깐 사람들 틈에 끼지만 여자들의 말은 처음부터 누구나 건성으로 들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여자들 자신도 점점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고 혼잣말이나 중얼거리게 된다. 나중엔 두 다리로 서는 게 불편해지고, 혈관 경련이 오고, 잠자면서 중얼대기 시작하고, 자궁암에 걸리고, 드디어 죽게 되면 예정된 섭리는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의 여자 아이들이 많이들 하고 노는 말잇기 놀이도 '피곤하고/기진하고/병들고/죽어가고/죽고'라는 식으로 여자의 삶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런 어머니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고 한다. 독일 나치당원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은행원이었지만 전쟁 중에는 경리 담당 장교로 복무했으며 약간 특별한 데가 있는 남자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곧 임신하게 되었다. 그는 유부남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어머니에겐 상관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를 양친에게 소개했고, 함께 소풍도 갔고, 그의 고독한 군인 생활의 벗이 되어 주었다. 페터 한트케 작가님이 태어나기 직전에 어머니는 오랫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아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 어떤 독일군 하사와 결혼했다.
한 인물을 추상화하고 형식화하는 데 위험한 점은 물론 그 추상화 및 형식화 작업이 독립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작 이야기되고 있는 그 인물이 잊히고 꿈속의 이미지들처럼 구절들과 문장들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한 개인의 삶이 동기 이상의 어떤 것도 되지 못하는 문학적 의식(儀式)이 된다. 따라서 페터 한트케 작가님 본인은 문장마다 여자의 전기에 흔히 쓰이는 보편화된 형식들과 나의 어머니가 살았던 삶의 특수성을 비교했다고 한다.
청결하긴 하지만 변함없이 비참하기만 한 가난에 대해서는 묘사할 길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페터 한트케 작가님은 궁핍함을 묘사하기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난'이란 단어를 보면 항상 '옛날에 그랬었지.'라고 생각한다고 하며, "나는 가난했어."가 아니라 "나는 가난한 사람의 자식이었지."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책을 더 좋아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자신의 삶의 여정과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독서하고 토론하는데 열중했다가 돌연 새로운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책을 읽고 대화도 하니까 난 다시 한번 젊어지는 것 같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적 문화와 여자의 인생, 그리고 페터 한트케 작가님의 탄생비화 및 어머니의 전기, 또 페터 한트케 작가님의 불우하고 가난했던.. 이 책의 제목처럼 《 소망 없는 불행 》이었던 성장기를 투영해놓은듯한 내용들을 알수 있었다. 생각보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단순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