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추락할수록 우린 더 단단해졌다."
나는 아래로 추락하면 추락할수록 더 단단하고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선수로 성장하고 있었다. 추락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다는 용기와 배짱,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걸고 뛴다는 신념을 지닌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일만번의 다이빙>
다이빙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책.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이 두려운 이유는, 이 물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기에 내가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를 직접 확인하고 나면 더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별로 깊지 않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나, 깊긴 깊지만 이렇게 해서 수면위로 올라오면 되겠다. 하고 나만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어릴 때 인생의 바닥을 찍어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과 배움이 됩니다. 한살이라도 어릴 때 경험할수록 위험부담이 더 줄겠지요.
항상 평탄한 인생만 살아온 사람들은 인생의 밑바닥이 얼마나 깊고 깜깜한지 모릅니다.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기에 두렵기만 합니다.
저의 10대를 되돌아보자면, 항상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20살이 되어 대학교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는 그동안 항상 행복하기만했다 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손든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기만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 많아서 그 기억을 다 지우고 행복한 기억만 남겼을 수도 있습니다"
전 그말을 듣고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난 진짜 행복하기만 했는데~ 난 다른 사람에 비해 정말 행복하게 자라왔구나'
누군가는 부러워할 수 있겠지만 저는 20대에 이 댓가를 아주 톡톡히 치뤄야했습니다.
고통 총량의 법칙이 정말 존재하는걸까 싶을만큼 제 20대는 스스로에게 실망이 거듭되는 시기였습니다.
저는 이 어둠의 긴 통로를 지나면서 제 10대는 행복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행복한 기억 외에는 전부 삭제되었던 것이라는걸 알게되었습니다.
전 항상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요. 오죽하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친했던 남자애가 "넌 디게 웃기게 생겼는데 왜이렇게 인기가 많냐. 인기투표 하면 항상 1-3위 안에 너가 있어" 라고 할정도로요. 이게 칭찬인지 놀리는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제가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사람 1위부터 3위까지 말하는게 유행이였거든요.
선생님들에게도 항상 사랑만 받아왔습니다. 제가 특별히 잘보이려고 노력한 것도 없는데 어른들은 절 항상 예뻐하셨어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면서 내 딸이 널 닮았으면 좋겠다고 하실 정도였죠.
노력한 것에 비해 성적도 좋았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재수없을 정도로 아무 노력 없이 행복을 누리기만 했네요.
하지만, 너무 재수없어 하지 마세요,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구요.
저는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하는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채로 20살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생각인데 말이에요.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절 좋아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날 당연히 사랑해' 라고 생각하는 것과,
'대체로 사람들은 날 좋아하는 편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20대의 저는 누군가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대체 날 왜 안좋아하지? 원래 사람들은 내가 아무것도 안해도 항상 날 좋아했는데"
저의 괴로운 인생은 여기서 부터 시작됩니다.
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제 유일한 목표는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5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저의 최대 관심사는 '저 사람이 날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였다니, 믿어지세요?
그 시기의 절 떠올리면 너무도 안쓰럽고 불쌍합니다.
일의 본질은 뒤로 한채 저 사람이 날 안 좋아하는 것 같으면 전 움츠러들었습니다.
참 웃기죠?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지 않는다고 기가 죽을 것까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의 마음은 날씨와도 같아서 오늘은 누군가가 이유없이 좋을 수도 있고, 오늘은 이유없이 싫을 수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건데 말이에요. 전 그 날씨같은 마음을 제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몇년을 바쳐서 낭비했던 겁니다.
그래도, 5년 넘는 괴로운 시간들을 지나 저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으려는 것만큼 부질 없는 것이 없다는 아주 큰 인생의 교훈을 뼈에 새기게 됩니다. 아직도 그 교훈은 제 뇌에 가장 깊게 새겨져있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어쩌면 제게는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필요했던겁니다.
누군가가 저를 미워할까봐 그토록 두려워했는데
이유도 모른채 그리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미움을 받고나니
그제야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는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우친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의 문장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한 친구를 만나기전까지, 절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모두가 좋아할만한 사람이였고, 모두가 절 좋아하도록 행동해왔습니다.
모두에게 맞춰주는 사람이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미움을 처음 경험하게 해준 그 친구는,
제가 너무 밉고 싫다며 한시간 넘는 시간 동안 하염없이 제 앞에서 울었습니다.
'내가 미운데 왜 화를 내는게 아니라 우는걸까. 이 눈물의 의미는 뭘까. 눈물날 정도로 내가 싫은걸까. 그럴수가 있을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에 저는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제가 미워서 울고 있는 아이 앞에서 한시간을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 애쓰며 살았는데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다는 일은 막상 겪어보니 별게 아니더라구요. 누군가 날 미워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내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 왜 그토록 모두와 잘지내려고 애썼을까요?
한참을 울다가 그 아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싫은 이유에 대해서요.
자신은 사람들하고 두루두루 잘 어울리기가 어려운데 제가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며 재밌게 노는 모습이 너무 얄밉고 질투가 났다고 하더라구요. 그 속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저는 뭔가에서 풀려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좋아지는데에 이유 없듯, 사람이 싫어지는데에도 그 사람에게 이유가 있는게 아닐 수 있구나.
이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할 때에는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특별히 좋아서도 있지만, 그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랑 있을 때의 내 모습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와 있을 때 편안해지는 내 모습이 좋아서, 그 친구와 있으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나 잘살고 있구나 하는 자신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어서.
아마 그 친구가 절 싫어했던 진짜 이유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제 모습이 싫어서라기보다 자신이 싫어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제 곁에서 더욱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제 앞에서 하염없이 울던 날 이후로도 그 아이는 계속 절 미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차마 자기 자신을 미워할 수 없었기에 대신 절 미워하는거라고 생각하며 그 미움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이유없이 미움을 받은 댓가로 저는 저를 오랫동안 옭아매왔던 족쇄에서 자유로움을 얻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잘보이려고 애쓴다는건 그 사람에게 나의 자유를 내어준다는 것과도 같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저를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절 좋아한다고 해도 더이상 예전처럼 쉽게 들뜨거나 자신감을 얻지 않습니다. 사랑받고자 하는 제 본능이 들뜨려 할때면 언제 바람처럼 끝나버릴지 모를 그 사람의 사랑에 흔들리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마치 날씨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날씨가 좋을 때면 그 날씨를 만끽하고 비바람이 내리면 비를 피하는 것 뿐이죠.
저를 향한 누군가의 마음은 그저 흘러가는 바람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것을 깨닫기 위해 저는 저를 사랑해준 수많은 사람들보다 저를 이유없이 미워하는 사람이 필요했나봅니다. 저는 제가 간절히 노력했던 것에서 바닥을 찍고 나서야, 미움받을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항상 사랑만 받았다면 저는 평생 누군가에게 미움받을까 두려워하느라 진짜 저를 위한 인생을 살지 못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