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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May 24. 2024

입양 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부. 5장


  임 소장은 홀트에서 입양 업무를 오랫동안 해온 베테랑이었다. 그녀를 통해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국내로, 해외로 새 가정을 찾아 정착했다. 아이를 필요로 하는 부모들과 부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맺어주는 일은 정교한 예술이라 할 정도로 섬세함과 민감성, 냉정한 판단력, 때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임 소장은 그런 일을 하기에 적격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입양 상담을 하러 오는 부부들을 첫눈에 알아보는 혜안이 생겨 어떤 아이를 소개해야 할지, 입양이 성사될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가끔 예기치 않은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는 걸 그녀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일이 최근에 생겨 시도 때도 없이 임 소장의 머리가 송곳으로 콕콕 찌르듯 아팠다.

  일 년 전 경기도에 사는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던 소영 엄마에게서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입양한 지 아직 일 년이 되지 않았는데, 소영이는 처음부터 밤에 잠을 자다가 깨어나 한 시간이 넘게 울어서 가족들이 애를 먹었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소영이의 습관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가족들의 인내는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엄마 말로는 특히 함께 사는 소영이의 할머니가 스트레스가 심해져 우울증에 걸렸고 아이를 다시 보육원에 데려다주라고 성화라는 것이었다. 소영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엄마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남편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급기야 소영 엄마는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소영이가 지내던 보육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일주일만 맡아달라고 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임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설상가상으로 보육원 국장도 전화해 아이를 맡아줄 수 없다며 임 소장의 탓이기라도 한 듯 항의했다.

  임 소장은 즉시 보육원으로 가서 소영을 차에 태웠다. 그리고 이 년 전에 같은 보육원에서 남자아이를 입양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영 엄마, 나예요.”

“네, 소장님. 잘 지내셨어요? 무슨 일이세요?”

“좀 곤란한 일이 생겼어요. 나 좀 도와줘요.”

“무슨 일인데요, 소장님?”

“소영이 기억하죠? 작년에 입양되었던 아이.”

“그럼요, 잘 기억하죠. 진영이랑 같이 지냈던 아이잖아요. 나이가 한 살 어렸죠, 아마.”

“맞아요. 근데 소영 엄마가 소영이를 보육원에다 데려다 놨어요. 시어머니가 파양하라고 하신다고...일 주일 시간을 주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는데 보육원에서는 소영이를 맡아줄 수 없대요. 그리고 애를 거기에 다시 데려다 놓으면 어떡해?”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 소영이 어떡해요?”

“그래서 내가 소영이를 데리고 다시 나왔는데, 며칠만 진영 엄마가 데리고 있을 수 있을까 해서. 아이가 가정에서 지내야지. 그래도 진영 엄마가 소영이를 아니까 이렇게 어렵지만 부탁하는 거예요. 해줄 수 있겠어요?”

“그러세요. 데려오세요. 며칠 못 데리고 있겠어요? 지금 오실 거예요?”
 “내가 바로 갈께요. 고마워요, 진영 엄마.”

임 소장은 한숨을 휴 내쉬고 보육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진영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진영 엄마가 그리 고마울 수 없었다. 소영이를 진영 엄마에게 맡기고 돌아와서 임 소장은 앞으로 소영이가 입양된 집에서 정착할 수 있을지 그 생각을 한시도 머리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만약 파양이라도 하게 된다면...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좀 더 살펴봤어야 하는데...그러나 후회는 이미 늦었다. 소영이를 취한 최선의 길을 찾아야 했다.

  선유와 호진이 다녀간 후, 임 소장은 못내 아쉬웠다. ‘괜찮은 가정인데..신생아를 입양하면 잘 키울 것 같은데. 큰아이를 고집하니 난감해. 그게 어떤 일인지도 모르면서.’ 임 소장이 보기에도 선유의 결심은 아주 확고했다. ‘그 엄마가 희야를 입양할 수 있을까.’ 확률은 반반이었다. 작년 같은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 부부가 포기할 수도, 희야가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까워.’

  어느 순간, 소영이와 선유 부부 생각이 임 소장의 머리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그 부부가 큰아이를 입양할 수 있을지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소영이를 며칠 맡겨보면 어떨까.’ 임 소장은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었다. 어느새 선유 전화번호를 찾아 누르고 있었다. “네, 소장님.” 임 소장의 번호가 뜨자 선유는 파블로프의 개가 침을 흘리듯 반사적으로 가슴이 떨렸다. 무슨 일일까.

“저, 내가 어려운 부탁 하나 하려는데...”

“부탁이요?”

선유는 도대체 무슨 부탁일까 의아했다. 소장은 간단하게 소영의 사정을 설명하고 닷새만 소영을 집에서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닷새나요?”

“네. 진영이네도 엄마가 일을 해서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 돼요. 거기 이틀 있었는데 더는 어려울 것 같아요. 선유님은 직장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셨죠?”

“네, 강의가 있긴 한데 한 번 정도는 휴강할 수 있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선유는 잠시 망설였다. 다섯 살 아이를 닷새씩이나 돌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왠지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임 소장이 공연히 이런 부탁을 할 리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소영의 사정이 너무나 딱했다. 아니, 아이를 그렇게 방치할 수가 있을까. 선유는 소영이 희야와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라는 설명을 듣고 한번 해 보겠다고 부탁을 수락했다. 그럼, 희야라는 아이도 소영이를 알겠구나. 뭔가 알 수 없는 끈이 그들을 엮어주는 듯했다. 그것을 끊어버리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다음 날, 임 소장이 선유를 태우러 왔다. 진영의 집은 희야가 있는 보육원에서 가까운 아파트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진영의 엄마와 소영이 나란히 서서 선유와 임 소장을 맞았다. 곱슬곱슬하게 퍼머한 단발머리에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을 가진 고양이 눈을 닮은 여자아이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선유는 곧 그 아이의 한쪽 눈이 사시라는 것을 알았다. 주황색 티를 입은 윗배가 살짝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는 임 소장과 선유를 보자 흥분한 듯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진영이 엄마가 차를 내오자 선유 옆에 와서 털썩 앉는 것이 아닌가. 선유는 아이가 시무룩한 모습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영아, 이 아줌마 따라가서 며칠 지낼 건데 괜찮아?”

“네.”

소영이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처를 옮겨 다니는 게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선유의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잘해줘야겠어. 진영 엄마는 소영이가 자다 깨서 울면 쉬 잠들지 못하니 그때는 우황청심환을 먹이라며 한의원에서 지어온 약을 선유에게 건네주었다. 아이에게 주는 약이라 그런지 청심환 알이 콩알만큼 작았다. 진영 엄마가 소영이의 짐을 내왔다. 옷가지가 큰 시장바구니 하나에 가득했다. 거기에 앨범 두 개, 장난감, 크레파스, 머리끈...무슨 짐이 이리도 많아. 정말 소영이를 다시 데려가기나 할 건가. 임 소장은 두 번째로 소영의 짐을 차에 실으며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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