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보낸 빈자리와 파마냄새
미장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지금은 미용실 또는 헤어숍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미장원이었다.
파마를 하러 가는 곳이었고, 파마는 오래 걸렸다.
머리에 롤을 말고, 약을 바르고, 드라이기 밑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건 잡지를 넘기거나, 옆 사람과 수다를 떨거나, 라디오를 듣는 것뿐이었다.
미장원에는 늘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아니면 주인아주머니가 좋아하는 가요 테이프가 돌아갔다.
파마 냄새, 그러니까 그 독특한 약품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면 아직도 그 시절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냄새가 기억을 부르고, 기억이 노래를 부른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중매로 만난 사람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냐고 물으면,
나쁘지 않다고 대답하는 정도의 감정.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하는 거였다.
그 시절 인터뷰를 읽으면 "스물이면 늦은 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지금 기준으로는 믿기 어렵지만, 그때는 그랬다고 한다.
결혼식 전에 미장원에 갔다.
파마를 해야 했다.
롤을 말고 드라이기 밑에 앉아 있는데,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패티김의 목소리가 가게 안을 채웠다.
그대를 보내고 나서 꽃을 피웠네
서러운 마음에 꽃을 피웠네
스무 살의 그녀에게 이 가사는 그냥 예쁜 노래였다.
마리아라는 이름이 이국적이고, 멜로디가 부드럽고, 패티김의 목소리가 근사했다.
누구를 보냈고, 서럽고 하는 그런 말이
누구에게 하는 건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드라이기 소리에 섞여 들리는 노래.
파마 냄새 사이로 스며드는 멜로디.
패티김의 노래를 들으면서, 잡지를 넘겼다.
웨딩드레스 사진이 나왔다.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게 전부였다.
남편이 먼저 갔다.
3년 전이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빈 집에서, 라디오를 켰다.
아무 채널이나.
소리가 필요했다.
조용하면 생각이 너무 많아지니까.
어느 날 유튜브에서 패티김의 노래가 떴다.
알고리즘이 띄워준 건지, 누가 공유한 건지 기억이 안 난다.
재생을 눌렀다.
그대를 보내고 나서 꽃을 피웠네
서러운 마음에 꽃을 피웠네
스무 살에는 그냥 예쁜 노래였던 이 가사가, 전혀 다르게 들렸다.
울지 말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건 울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울고 있다는 걸 알아챈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스무 살에는 이 노래가 누군가에게 하는 예쁜 말이었다.
지금은 이 노래가 나에게 하는 말이 되어 있었다.
울었지만,
울 것도 없다.
70살 가까운 내 나이에 배우자의 죽음으로
가슴 절절하게 눈물을 흘릴 일이 있을까.
그저 빈 집의 공기 속에서
그때의 파마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