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조 <개여울>, 레코드 가게에서

사라진 풍경이 노래 안에만 남아 있다는 것

by 황준선

장소 — 그때 거기

레코드 가게라는 곳이 있었다.

음악을 사러 가는 곳.

지금처럼 검색 후 스트리밍으로 듣는 게 아니라,

가게에 가서 LP판을 직접 꺼내 보고,

재킷을 들여다보고,

주인에게 한번 틀어달라고 부탁하고,

마음에 들면 사는 곳.


이 과정이 중요했다.

음악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안에서 모르던 노래를 우연히 만났다.


주인이 추천해 주는 노래가 있었고,

옆 사람이 듣고 있는 노래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일도 있었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이 음악을 연결해 주던 시대.


가게 안에는 LP판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카운터 위에 턴테이블이 돌아가고 있었다.

작은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녀 — 1978년의 스물

서울로 올라와 피복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그녀는,

월급을 받으면 종로 쪽 레코드 가게에 들렀다.


그녀의 고향은 충청도 시골이었다.

봄이면 개울가에 올챙이가 나오고,

여름이면 풀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던 곳.


서울에는 그런 게 없었다.


진열대를 훑다가 재킷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미조의 앨범.


주인에게 틀어달라고 했다.

턴테이블 바늘이 LP판 위에 내려앉았고,

잠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다가,

노래가 시작됐다.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가게 안이 시골이 됐다.


가사 한 줄 — 그때 이렇게 들렸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이 가사는 김소월이 1922년에 쓴 시다.

스무 살의 김소월이 쓴 시를,

쉰 년 뒤에 정미조가 불렀고,

또 몇 년 뒤에 서울의 레코드 가게에서 스무 살의 그녀가 들었다.


스무 살의 그녀에게 이 가사는 고향이었다.


개여울.

집 앞 개울.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는 봄.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이는 소리.


서울에 와서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풍경이,

이 노래 안에서 갑자기 돌아왔다.


같은 가사, 다른 귀 — 2025년의 예순일곱

그녀는 몇 해 전 명절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개울이 없어진 걸 알았다.


정확히는 없어진 게 아니라 복개되어 도로가 깔려 있었다.

개여울은 이제 주소 위에만 남아 있었다.


예순일곱에 다시 듣는 이 가사는,

더 이상 고향 풍경이 아니었다.

그 풍경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개여울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스무 살에는 그 사람이 시골에 남겨진 누군가라고 생각했다.

예순일곱에는 그 사람이 나였다.


사라진 장소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

돌아갈 곳이 기억 속에만 있는 사람.


김소월의 시가 1922년, 정미조의 노래가 1972년, 아이유의 리메이크가 2017년.

백 년 넘게 같은 가사가 불리고 있다.


개여울이라는 장소는 대부분 사라졌는데,

노래 안에서는 아직 물이 흐르고 풀이 돋아나고 있다.


풍경은 사라져도 노래는 남는다.

그게 이 곡이 백 년을 버틴 이유인 것 같다.




72년에 발표된 이 노래. 그녀는 79년에 가수를 은퇴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파리 제7대학교에서 미술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2014년까지 서양화 교수로 지낸다. 2016년, 37년 만에 복귀 앨범 <37년>을 발표한다. 정미조는 "스무 살의 김소월이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을까 지금도 존경스럽다. 이제 '개여울'은 제게 분신 같은 존재"라며 인터뷰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