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않았던 게 아니라, 잡을 수 없었던 거라고
사랑은 이제 내게 남아있지 않아요
아무런 느낌 가질 수 없어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DJ 다방이라는 곳이 있었다.
손님이 쪽지에 듣고 싶은 노래를 적어 내면, DJ가 그 곡을 틀어준다.
DJ가 노래 소개를 하고,
가끔은 사연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스트리밍과 정반대다.
지금은 내가 듣고 싶은 곡을 바로 누르면 된다.
그때는 쪽지를 쓰고, 기다려야 했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그 기다림 속에서, 다른 사람이 신청한 노래를 같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의 사연이 모르는 사람의 노래가 되어 흘러나왔다.
누가 어떤 마음을 담아 신청했느냐에 따라,
같은 노래가 다르게 울려 퍼진다.
다방 안은 커피 냄새와 담배 연기.
창가 자리는 늘 차 있었고,
구석 자리에 앉은 사람일수록 표정이 조금은 달랐다.
종로 쪽 무역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던 그녀는,
혼자 그 다방에 갔다.
사무실에서는 전화를 받고,
전표를 정리하고,
부장님 도장을 받으러 뛰어다니는 게 하루였다.
말을 많이 하는데 내 말은 하나도 없는 하루.
얼마 전 헤어진 사람이 있었다.
2년을 만났다.
양가 부모님까지 만난 사이였는데,
그 사람 아버지가 반대했다.
집안이 안 맞는다는 이유였다.
그 사람은 "좀만 기다려"라고 했고,
그녀는 기다렸다.
반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 "미안하다"는 전화 한 통이 왔다.
전화를 끊고 나서, 울지도 못했다.
화가 나는 건지 슬픈 건지 모르겠어서.
쪽지를 한 장 썼다.
접어서 DJ에게 건넸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대 왜 나를 그냥 떠나가게 했나요
이렇게 다시 후회할 줄 알았다면
아픈 시련 속에 방황하지 않았을텐데
사랑은 이제 내게 남아있지 않아요
아무런 느낌 가질 수 없어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그녀에게 이 가사는 떠난 사람을 향한 원망이었다.
미소를 띄우며 보냈다고? 잡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고? 그냥 웃으면서 보내버렸다고?
이 노래의 작곡가 장덕이
슬픔을 가슴에 감추고 불러달라 요구했다고 한다.
이은하는 그때까지 감정을 쏟아내는 창법이 자기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곡에서 참으면서 불렀다.
절제미라는 거창한 표현 없이도,
참으면서 부르는 슬픔이
터뜨리는 슬픔보다 간절하다는 걸 이 노래가 증명했다.
60대가 넘으면 보내본 사람이 많아진다.
연인만이 아니다.
먼저 간 부모, 멀어진 친구, 결혼한 자식.
가야 할 사람을 잡지 않고 보내는 법을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이 가사는 '왜 잡지 않았어'라는 원망이다.
멀리 떠나 닿지도 못하는 남자의 가슴팍을 펑펑치며 부르는 것 같다.
그러나 60대가 넘어가면 다르다.
이 가사는 '나도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해가 된다.
미소를 띄우며 보낸 게 무정해서가 아니라,
그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는 걸 안다.
이은하 본인이 이 곡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아버지의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자기 이야기를 담은 노래라고.
보낸 쪽도, 떠난 쪽도, 선택지가 없었다.
미소는 여유가 아니라 마지막 예의가 아니었을까.
같은 가사인데, 40년이 지나면, '왜'가 사라진다.
원망이 이해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
그게 이 노래 한 곡의 길이보다 훨씬 길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곳이 어디였나요?
DJ 다방의 스피커였을 수도 있고,
라디오 사연 코너였을 수도 있고,
택시 안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가 부른 버전이 첫 만남이었을 수도 있고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라는 가사가,
지금은 누구의 얼굴로 떠오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