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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선 Aug 18. 2024

길을 잃은 심리학의 집착, 평균

평균적인 사람이란 없다. 우리가 가진 어떠한 정보 5개를 무작위로 나열했을 때, 그중 1개 이상은 반드시 평균을 벗어나게 되어있다. 예를 들면,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했을 때, 키, 몸무게, 성적, 친구 숫자, 부모 관계에서 평균을 충족하는 학생은 단 1명도 없다. 어떠한 학생이라도 반드시 저 5개 항목에서 1개 이상은 평균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이 평균에서 벗어난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부분에서 어떻게든 비정상 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


"내가 비정상이라고?" 불쾌한 반응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길을 잃은 심리학이 주장하는 치료는 비정상의 정상화, 즉 평균을 벗어난 것을 평균으로 맞추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평균에 부합하는 사람은 '신' 말고는 없다. 모든 것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한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신과 닮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수도승이나 종교인에게는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모든 지구인이 수도자가 아닌 이상에야, 이러한 접근 방식은 큰 오해와 어려움을 낳으며, 위험한 상황까지 이르게 만든다. 길을 잃은 심리학은 개개인이 자신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커녕 평균을 잣대로 정상인을 만드는데 바쁘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간의 역사, 심리학의 역사를 공부하고 현대 사회가 보이는 현상을 통해 이해해 보자.


이분법적인 사고

옳고 그른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모 아니면 도'처럼 이분법적인 사고가 편리하다. 인간이 이분법적인 사고를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심리적, 인지적, 사회적 요인들과 관련이 있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그만큼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정을 내리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음은 그 주요 이유들이다(이분법적인 사고를 선호하는 상세한 이유이므로 생략하고 넘어가도 상관없음).


인지적 경제성

이분법적인 사고는 복잡한 문제나 상황을 단순하게 이분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예를 들어, 사람이나 상황을 "좋다" 또는 "나쁘다", "정상" 또는 "비정상" 등으로 나누면,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여 더 빠르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다. 이는 복잡한 생각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결정을 내리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명확한 경계 설정

이분법적 사고는 세상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해 준다. 이러한 경계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며,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확신을 제공한다. 명확한 경계가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행동이 "올바르다" 또는 "잘못되었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도덕적, 사회적 결정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준다.


사회적 일관성 유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이분법적 사고는 일관성을 유지시켜 준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가 명확한 규칙과 경계를 가지고 있기를 원하며, 이는 집단 내에서의 일관성과 결속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사회적 규범과 규칙을 강화하고, 집단 내에서의 질서를 유지한다.


진화적 관점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이분법적 사고는 생존에 유리한 방식이다. 원시 환경에서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또는 포식자와 먹이를 즉각적으로 구분하거나, 위험한 상황과 안전한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는 것은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정체성과 소속감

이분법적 사고는 개인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화하는 데도 기여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특정 집단이나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느낄 때, 더 큰 소속감과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 vs. 그들"이라는 구분은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고, 외부 집단과의 경계를 명확히 한다. 이는 인간의 본능적인 집단주의적 성향과도 연결된다.


심리적 안정감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분법적 사고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면, 복잡한 문제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믿음이 있다. 특히 갈수록 복잡해져 가는 세상에서 단순하고 확실한 답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사람들을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이끌며, 이를 통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 한다.




길은 잃은 심리학이 빠진 함정, 이분법적 사고

편리한 건 편리한 거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특히,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심리학이 어떻게 이런 사고방식에 빠지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접근 방식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어떤 위협을 끼치는지 살펴보자.


과학적 방법의 도입과 통계적 접근

19세기 후반, 심리학이 철학에서 독립된 과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방법론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이 시기에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숫자로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통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통계적 방법론은 인간이라는 하나의 동물이 보이는 일반적인 패턴이나 경향을 파악하는 데 유용했다. 특히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과 같은 인물들은 인간의 특성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대부분의 인간은 이러하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기 적합했다. 이 과정에서 평균값은 집단의 전형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이로 인해 평균에 기반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도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의학 모델의 영향

의학에서는 질병과 건강을 구분하기 위해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중심이 되었으며, 이는 심리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과 같은 정신과 의사들은 특정 정신 질환을 진단하고 분류하기 위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접근을 사용했다. 이러한 의학적 모델은 심리학 전반에 걸쳐 평균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데 기여했다.


산업화와 효율성의 강조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효율성과 생산성은 사회의 핵심 가치였다. 교육, 군사, 직업 배치 등에서 사람들을 평가하고 분류하고자 했다. 즉, 인간을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 속 하나의 부품으로 취급했으며, 그에 따라 적합 또는 부적합으로 구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예를 들어,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와 같은 심리학자들은 지능 검사를 개발하여 학생들의 지능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교육적 개입이 필요한 학생들을 선별하려 했다. 이러한 검사들은 평균을 기준으로 정상적인 지능 범위를 설정하고, 그 밖의 경우를 비정상으로 분류하는 데 사용되었다.


즉, 통계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보이는 대중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개개인 가진 고유한 특성을 밝히는 노력은 부족했다.




평균에 집착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분법적 사고와 심리학의 위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접근은 인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접근은 사회적 규범을 강화하고, 차별과 소외를 낳는다. 20세기 초 우생학(eugenics) 운동과 같은 사회적 흐름은 특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심리학적 연구를 이용했다. 우생학이란 간단히 말해,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 특히 장애인을 제거하고, "우월한 정상인"만 남겨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결국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계 대전 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길을 잃은 심리학은 새로운 형태의 우생학

오늘날, 비슷한 일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또래보다 말이 늦으면 언어 장애로 분류되고, 사회성이 평균보다 낮으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되며, 집중력이 떨어지면 ADHD 환자가 된다. 너무 조용해도 문제, 너무 활발해도 문제, 붙임성이 부족해도 문제, 지나치게 붙임성이 많아도 문제가 된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치료법"은 이 아이들이 평균에 맞추어지도록 약물을 복용시키는 것이다.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 즉 평균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고, 이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정상" 범위로 포함시키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우생학이다.


이러한 행태의 극단적인 예시가 조현병이다. 이전에 "사이코패스"이라는 용어가 빠르게 유행했고 지금은 일상적인 언어로 자리 잡았다. "너 싸패야?"라는 표현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익숙하게 사용된다. 조현병도 마찬가지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봤을 때 조현병 환자는 완전히 "미친 사람", 즉 비정상 그 자체로 여겨진다. 앞서 언급되었듯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런 분류를 복잡하게 이해하기보다는 단순히 제거하는 방식이 선호된다. 안타까운 점은 심리학은 조현병 환자가 왜 그런 증상을 보이는지,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이들을 사회에서 제거하는 결정에 우아한 포장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심리학은 조현병 환자라는 비정상인이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하는 검은색 바람을 "치료"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평균에 의한 비정상화의 위험성

만약 평균보다 훨씬 작은 키를 가진 사람을 약물로 불임화시킨다면, 또는 심각하게 비만인 사람들을 따로 격리시킨다면 어떨까? 그들이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해서 차별을 겪을 미래의 아이를 보호하고, 또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비만 치료를 돕는다는 명목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주장은 듣기만 해도 비윤리적이고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심리학의 영역에서는 비슷한 접근이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은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행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큰 위험을 내포한다. 심리학은 각 개인의 특성과 고유성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심리학이 이러한 평균적 기준에만 매몰되지 않고, 사람들의 개별적인 필요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잃었던 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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