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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선 Aug 13. 2024

길을 잃은 심리학이 숭배하는 신, 뇌(Brain)

화장실은 어디에도 없고 갑작스럽게 급똥이 마려울 때, 평소에 믿지도 않던 신을 간절히 찾으며 "하느님, 부처님, 제발 이 위기를 넘기게만 해주시면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ㅠㅠㅠ!!!"라고 다짐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인내한 적이 있으며, 마음이 울적하고 심란할 때는 교회나 성당, 사찰을 찾아 위안을 얻기도 한다. 


완전히 다가갈 수는 없지만, 그 존재에 끊임없이 다가가 안정을 찾고자 하는 믿음은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예 종교에 귀의하여, 신의 말씀이 담긴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그 내용을 이해하고, 여러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인생을 바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학문으로서의 존재 이유와 방향을 잃은 심리학이 "뇌(Brain)"라는 신을 숭배하게 되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계가 마음이 뇌에 있다고 믿게 된 과정과 그 행태를 살펴보면, 이것이 인간이 신을 숭배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이유를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자.


보고 만져지는 물체는 믿을 수 있다

인간의 감각은 생존과 직결되어 예민하게 발달해왔다. 인간의 역사를 100년으로 압축해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원시적인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인간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을 통해 주변 환경을 판단하고, 손의 정교한 조작을 통해 도구를 만들어 생존을 도모했다. 이러한 감각적 경험은 인간의 사고방식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이는 인간이 시각적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체'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영어에서 "I see"라는 표현이 '이해했다' 또는 '알아들었다'는 의미를 갖는 것도 이러한 인간의 직관적 사고 방식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직접 눈으로 보고 인식하는 것을 이해의 과정으로 연결 짓는다.

심리학자들도 마음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이러한 인간의 직관적 사고 방식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마음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존재하며,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주장했고, 데카르트는 마음이 머리의 송과선에 있다고 믿었다. 이후 프란츠 요제프 갈은 두개골의 형태를 통해 인간의 성격을 분류하려 했으며, 브로카와 베르니케는 뇌의 특정 영역이 언어 기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세기 이후 신경과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심리학도 뇌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뇌는 심리학자들에게 절대자와 같은 존재로 자리잡았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 인지심리학이 등장하기 전, 심리학은 행동주의에 의해 지배되었고, 마음의 존재를 부정한 채 인간의 행동만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뇌 연구가 과학적 타당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마음의 신비를 풀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심리학은 뇌 연구를 종교와 같이 숭배하게 되었다.


결국, 마음이 뇌에 있다는 믿음은 종교에서 유일신을 숭배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오늘날 뇌의 특정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인용하는 것은, 종교 지도자나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성경 구절을 외우고 해석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는 인간이 여전히 뇌라는 '물체'를 통해 마음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이러한 시도가 신앙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 뇌의 미지의 영역을 대하는 모습과 종교에서 신을 모시는 모습 사이의 유사점은 다음과 같다.


경외감과 신비

뇌: 인간은 뇌의 복잡성과 신비로움에 대해 경외감을 느낀다. 뇌가 어떻게 의식, 감정, 사고 등을 창출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뇌는 여전히 신비한 존재로 남아 있다.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 모두, 뇌의 작용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그 복잡성에 매료되고 경외감을 느낀다. 

신: 종교에서 신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존재로서, 경외와 신비의 대상이 된다. 신의 존재와 작용은 종종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며, 이로 인해 믿음과 경외심이 형성된다.


탐구와 신앙 

 뇌: 과학자들은 뇌의 기능을 탐구하며 그 신비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뇌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뇌가 결국 모든 인간 행동과 의식의 근원이다"라는 믿음은 거의 신념에 가깝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많은 부분이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믿음은 과학적 탐구와 맞물려 신앙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신: 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종교의 핵심이다. 신학자들은 신의 뜻과 본질을 탐구하며, 신앙을 통해 그 존재를 받아들인다. 여기에는 신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지적 탐구와 신앙이 결합되어 있다.      


초월적 이해 

뇌: 뇌의 기능과 의식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과학으로는 어려운 일이어서, 사람들은 이를 초월적이고 신비한 것으로 여길 때가 있다. 이로 인해 뇌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신: 종교에서 신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존재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신의 모든 뜻과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믿으며, 이는 신을 더욱 신성한 존재로 만든다.      


의지와 해석 

뇌: 많은 사람들은 뇌가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결정한다고 믿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행위나 감정을 뇌의 활동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뇌에 대한 의지와 해석이 때로는 종교적인 믿음처럼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 종교에서는 신의 의지가 모든 일에 반영된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신의 의지에 따르려 한다.      


결론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뇌를 대하는 모습과 종교에서 신을 모시는 모습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살펴보았다. 뇌의 신비로움과 복잡성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이를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과학적 노력은, 신의 존재를 경외하며 신앙을 통해 그 본질을 이해하려는 종교적 태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뇌는 심리학자들에게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자, 아직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뇌라는 '물체'를 통해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마치 종교인이 신의 뜻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도 같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미지의 영역을 이해하려는 본능적인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마음이 뇌에 있다는 믿음은 현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심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심리학이 진정한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심리학이 뇌의 물리적 구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마음이라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개념이 단순히 뇌의 활동으로 환원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심리학자의 강연을 듣는 것과 종교 지도자의 "좋은 말씀"을 듣는 행위가 서로 닮아버린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위기에 처했을 때 종교 지도자를 찾아 마음의 위안을 구하던 전통이, 이제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 약물 치료를 받는 행위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뇌과학에 대한 신앙을 기반으로 한 약물에 의존하게 되면서, 마음의 깊이와 복잡성을 다루는 진정한 심리 연구는 점점 더 소홀히 다뤄지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더 큰 심리적 어려움에 처할 때, 거룩하다는 어떤 물질이나 약초를 마시듯, 이제는 뇌과학에 수련이 깊은 의사에게 약물을 처방받아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심리학이 신앙적 태도로 변질된 결과이자,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는 진정한 여정에서 멀어져 가는 현상을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신경과학적 접근이 단순히 문제를 표면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의 본질적 이해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마음이 뇌에 있다는 믿음이 심리학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있어서, 그 믿음이 과연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핵심 요약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마음이 뇌에 있다는 믿음이 심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심리학이 마음의 복잡성과 깊이를 탐구하는 데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심리적 위기 시 종교적 위안을 찾던 전통이 약물 치료로 변모했고, 심리학은 약물은 다루지 못하지만 거룩한 말씀을 전하는 공부로 변질되었다.

이로 인해 진정한 마음의 연구가 소홀해지고, 표면적인 문제 해결에만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심리학자는 뇌가 마음이라는 믿음에 머무르지 말고, 진정한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



레퍼런스 자료

"God on the Brain: Cognitive Science and Natural Theology" - 이 책은 신학적 개념과 인지 과학의 통합 접근 방식을 다루고 있으며,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 사고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The Marginalia Review of Books).


"What Brain Science Tells Us About Religious Belief" - Pew Research Center의 이 글은 뇌 과학이 종교적 믿음과 인간 본성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을 설명한다. 뇌의 감정적 영역과 신념 형성 간의 관계를 다룬다 (Pew Research Center).


"God on the Brain: What Cognitive Science Does (and Does Not) Tell Us about Faith, Human Nature, and the Divine" - 이 책은 현대 과학이 인간의 뇌에 대해 밝혀낸 사실들과 신앙 간의 철학적, 신학적 질문을 논의한다 (Crossway).


"Does Evolutionary Psychology Explain Why We Believe in God?" - BioLogos의 이 글은 진화심리학이 신앙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탐구하며, 신앙이 진화의 부산물일 수 있다는 이론을 다룬다 (BioLogos).


"How God Changes Your Brain: Breakthrough Findings from a Leading Neuroscientist" - Andrew Newberg의 연구는 영적인 믿음과 뇌의 상호작용을 다루며, 명상과 기도가 뇌 구조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Andrew New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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