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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Dec 22. 2023

아더 크리스마스: 성탄의 기적, ‘회복’

엄마 C의 시선



“아더 크리스마스”는 2011년 개봉되었던 3D 애니메이션으로 “월레스와 그로밋(Wallace and Gromit)” 시리즈, “치킨 런(Chicken Run)” 등의 스톱 모션(Stop motion)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아드먼 스튜디오(Aardman Studio)와 소니 픽쳐스(Sony Pictures)가 협력 제작한 크리스마스 영화입니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선물’이나 ‘산타클로스’로 대변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애초 저희가 브런치를 시작하며 가졌던 의도가 ‘기독교’ 영화를 다루고 평가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 영화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독교적 ‘메시지’ 찾기였던 만큼 성탄절을 맞는 이번 주의 작품으로 본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드먼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스톱 모션 클레이(clay) 애니메이션”이라는, 엄청난 인내와 테크닉을 요구하는 – 5초의 장면을 찍기 위해 1주일 가량이 소요된다는 – 장르의 작품들을 놀랍도록 훌륭히 완성해 내는 제작사이기 때문인데, '아쉽게도' 그와 달리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드먼 특유의 정교함과 예술성, 유머 감각 등에는 변함이 없음으로써 오늘날까지 “잊혀진 크리스마스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버들 사이에 회자된다는 이 “아더 크리스마스”가 개봉 당시 흥행에는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가 지금까지 다룬 영화들 대부분이 – 굳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 흥행면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인 것 같습니다.    





산타 마을에 보내는 편지에서 “산타클로스는 어떻게 하룻밤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할 수 있는지”를 묻는 소녀 “그웬(Gwen)”의 질문에 답변이라도 하듯, 영화는 베레모를 쓴 산타가 관리하는 통제 센터(headquarter)에서 100만 명이 넘는 요정들이 선물을 준비, 포장하고 우주선 형태의 비행선으로 선물들을 배달하는 ‘시스템’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설정을 통해 오늘날의 상황에 어울리는 ‘현실성’을 제시합니다. 성탄절 새벽 모든 선물의 배달을 다 마친(다 마쳤다고 생각한) 산타클로스와 요정들이 북극으로 돌아온 후, 통제 센터에서 전체 상황을 지휘한 - 그리고 아버지가 '산타클로스'라는 지위에서 은퇴하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될 - 큰 아들 “스티브(Steve)”와 우편실에서 아이들의 편지에 답장 써 주는 업무를 하는 작은 아들 “아더(Arthur)” 등 온 가족이 모여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를 외치며 20억 개 선물 배달을  마친 일에 대해 자축하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하는데, 비행선 등 모든 시스템을 다음 해 크리스마스까지 off 시켜 놓은 상태에서 한 아이의 선물인 – 하필이면 첫 장면에 등장한 그웬에게 주었어야 할 – 자전거가 배달되지 않은 것이 뒤늦게 발견됩니다. 이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산타클로스인 아버지와 그의 ‘후계자’인 형이 일출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다시 ‘작전’을 개시하기 어려운 여러 요인들을 이유로 전달을 포기해 버린 것과 달리, 늘 이 작전에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되어 산타 왕국에서도 우편실 근무라는 주목 받지 못하는 일만 맡아 왔던 아더는 도리어 그들의 그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며, 자기를 돕겠다는 할아버지와 함께 그웬이 사는 작은 마을 Trelew(영국 콘월 지역)에 직접 가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영화 전체의 핵심 줄거리는 - 물론 내용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여러 해프닝과 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된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지만 - 눈 알러지와 고소공포증까지 있는 아더가 갖은 역경과 온갖 실수를 겪으면서 성탄절 아침 해가 뜨기 전 그웬에게 분홍색 자전거를 배달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과정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아버지와 형이 결국 그에게 ‘차기’ 산타클로스의 자리를 허락하고 양보하는 것으로 내용이 마무리되지요. 





산타클로스 ‘직’에서 은퇴한지 오랜 할아버지와 실수 투성이에 깡마른 체격의 볼품없는 아더가 오랫동안 뒷방 신세이던 낡은 썰매와 여덟 마리 순록의 도움을 받아 “S-1”이라는 이름의 ‘메카톤’ 급 비행선이나 수많은 인력(?)으로도 할 수 없다던 임무를 성공으로 이끄는 과정을 두고 ‘세상적’으로는 “슈렉(Shrek)”이나 “쿵푸팬더(Kung Fu Panda)”의 주인공들처럼 ‘허당’ 캐릭터를 내세운 - 일반인의 상식 속 영웅과 배치되는 - 신선한 설정이라고 표현하지만, 믿는 자의 눈으로 바라본 이들의 모습은 ‘능력’ 혹은 ‘능률’이 아니라 ‘진심’과 ‘열정’을 우선순위에 두시는, 그렇기에 연약하고 순수한 이들을 통해 일하기를 즐기시는 하나님의 '작업'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쉽사리 포기해 버리는 아버지나 “크리스마스는 감상에 젖는 때가 아니다(Christmas is not a time for emotion)”라는 매몰찬 말로 상황을 정리해 버린 형과 달리, 성탄절 아침을 큰 실망감으로 맞을 '한 명'의 아이를 생각하며 '떨치고 일어서는' 아더와 같이 약하지만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니 말입니다.     


“Dear Santa”로 시작되는 편지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인지(“Are you real?”)를 물으며 정말로 북극에 산다면 왜 ‘Google Earth’로 집이 검색되지 않는지, 그 많은 편지들을 언제 다 읽는 건지, 배낭 하나에 많은 선물들을 어떻게 다 담을 수 있는지 – 인구가 늘어나니 배낭도 계속 커져야 하는 건 아닌지 – 등을 연이어 묻는 그웬의 질문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갖고 있으면서 차마 꺼내어 말하지 못하는 의문과 질문들을 대변하는 듯도 느껴집니다.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에도 잠시 등장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많은 기도를 동시에 다 들으시는지, 그리고 그  많은 기도에 대해 어떻게 일일이 응답하시는지 - '하늘'에 계신다고 하는데 'sky'가 아닌 'heaven'이라는 곳이 대체 어디인지를 포함하여 - 등 믿는 이들도 품고 있을 궁금증(혹은 의심)과 결코 결이 다르지 않은 질문들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인지 그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를 처음엔 ‘마법(magic)’으로 설명하던 아더의 표현이 수많은 ‘현실적’ 어려움을 겪으며 다다른 실행 단계에서 ‘기적(miracle)’이라는 어휘로 바뀌는 장면을 볼 때 마음에 “쿵”하는 울림이 오더군요.   





지나치게 순진했던 것인지 한심할 정도로 어리석었던 것인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는 줄로 믿다가 친구들로부터 크게 놀림을 받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 저로서는, 그웬이 편지 끝머리에 쓴 “산타클로스가 진짜임을(진짜로 존재함을) 믿는다”고 한 말이 어린 시절 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할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그분의 “부재(不在)”를  입증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들이대는 세상 사람들 틈에서 이 순간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산타클로스가 존재함을 ‘증명’하여 동심을 지켜 주고자 이 영화의 제작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연구를 거듭했다고 하니, 눈에 보이는 증거 없이도 우리 안에 계시는 – 그리고 말씀으로 거하시는 –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는 우리는 그만큼 더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크리스마스를 맞는 이 즈음 다시 생각해 봅니다.      




딸 J의 시선



요즘 집에서 키우고 있는 식물 두 아이를 각각 "월레스" 와 "그로밋"으로 이름 지었을 만큼 내가 애정하는, 또한 내 유년기의 정서 가운데 상당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작품임에도, 그곳에서 제작한 “아더 크리스마스”가 2011년 개봉되었을 당시 나는 이 영화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아드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스톱 모션 기법이 쓰이지 않았다는 아쉬움과 내가 ‘인간’을 다루는 애니메이션은 사실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동물이 최고다), 어쨌든 최근까지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작년 겨울, 아드만 스튜디오에 대한 다큐멘터리(“A Grand Night In: The Story of Aardman”)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어디 한번 보기나 하자" 정도의 마음으로 [아더 크리스마스]를 틀었더랬다. 그리고 결과는… 음… 솔직히 말한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울어 버렸다. 역시 아드만, 하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아더 크리스마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산타클로스’에 대한 설화들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영화 속에서 ‘산타클로스’는 “클로스” 가문의 일원들이 대대로 물려받아 이어가는 ‘직업(더 정확하게는 가업)'으로 해석되는데, 주인공 "아더"는 현직 산타인 아버지 "말콤"의 둘째 아들이다. 아더는 오래전 은퇴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산타 부인이자 어머니인 "마거릿"과 형 "스티브"까지 총 다섯 명인 가족, 그리고 산타 일을 돕는 백만여 명의 작은 요정들과 함께 북극에 산다. 산타 가문의 일원임에도 눈 알러지, 순록 알러지, 고소공포증, ‘고속’공포증 등등을 가진 데다 큰 실수를 자주 저질러 결국 "우편부(전 세계 아이들이 산타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고 답장하는 일을 하는 부서)"로 ‘좌천’된 아더는 아버지와 형에게 은근한 무시를 당하는 것은 물론 요정들 사이에서도 놀림감이 될 만큼 허술하고 애매한 처지지만,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산타’의 임무에 대한 자부심, 전 세계의 모든 아이들에 대한 애정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서윗한’ 존재다.





영화는 산타클로스라는 인물이 어떻게 크리스마스 전날 하룻밤 만에 지구를 돌며 20억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당히 창의적이면서도 정성스러운 답을 내놓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소개되는 산타의 선물 배달 방법은 가히 블록버스터 급의 스케일로 진행되는데, 거대한 비행선 "S-1"을 타고 온 수많은 요정 ‘요원’들이 밧줄을 이용해 아이들이 자고 있는 주택 안으로 침투하면서 작전이 시작된다. 포장지, 테이프, 개가 짖을 때를 대비한 간식과 보안 알람 해지 도구들로 중무장한 요정들은 [미션 임파서블]을 상기시키는 민첩성과 숙련된 기술로 화장실 창문이나 환풍구 등을 통해 집 안에 잠입한 뒤 각 집마다 정확하게 "18.14초" 안에 선물을 배달한다 - 실제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하룻밤 사이 선물을 배달할 경우 각 가정에 할당될 시간을 감독과 작가가 계산한 수치라고 한다. 북극에 있는 나머지 요정들은 North Pole Mission Control, 그러니까 거대한 '관제 센터'에서 스티브의 지휘 아래 상황을 모니터하며, 요정들이 잠에서 깬 아이들에게 발각되거나 CCTV 같은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지원 작업을 담당한다. 


이렇게 요정들과 스티브가 고군분투하는 동안 ‘산타’는 선물 배달을 하는 시늉만 할 뿐, 미션에 크게 기여하는 바가 없다. 사실 이 최첨단 시스템을 고안하고 시행한 스티브가 실질적인 리더로서, 그는 이미 70년간 산타 역할을 해 온 아버지가 은퇴하면 자신이 21대 산타로 그 자리를 물려받을 꿈에 부풀어 있다. 올해에도 성공적으로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한 요정 군단과 산타가 위풍당당하게 귀환하지만, 한발 늦게 충격적인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진다. 선물 배달 작전을 수행하던 중 한 아이의 선물이 실수로 누락되는 '배달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인데, 심지어 배달되지 못한 선물의 주인공은 "그웬"이라는 영국 소녀로, 산타에게 자신의 친구는 산타를 믿지 않지만 자신은 믿는다는 사랑스러운 편지를 보내 아더가 편지를 따로 보관하기까지 했던 아이다. 곧장 다시 출동해 그웬에게도 선물을 배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더를 향해 형 스티브는 전 세계 아이들 중 겨우 ‘한 명’이 빠졌다는 이유로 다시 비행선을 운행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편히 쉬고 싶은 마음 밖에 없는 아버지 또한 어물쩍한 태도로 스티브와 같은 의견임을 드러낸다.





실망하던 아더는 우리가 대신 선물을 배달하자는 할아버지의 '꼬임' 덕분에 19대 산타였던 할아버지가 과거에 사용했으며 진작 폐기됐어야 했을 - 최첨단 S-1과 달리 순록이 끌어야 하는 - 고물 썰매 "이브"에 타기로 결심(고소공포증임에도)한다. ‘포장부’ 소속으로 자칭 ‘포장의 달인’이지만 현장 경험은 전혀 없는 요정 "브라이오니"도 얼떨결에 이들과 함께하면서 셋은 그웬이 있는 영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 셋의 여정이 결코 순탄할 리 없다. 스티브가 개발한 최첨단 GPS 시스템 대신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할아버지는 너무 오래된 지도에만 의지하다 길을 잃어 캐나다와 탄자니아 등 엉뚱한 나라에의 착륙을 거듭하고, 여러 국가의 카메라에 잡혀 UFO로 오인되면서 각국 군부에 쫓길 뿐 아니라 심지어 썰매를 잃고 낙오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해가 뜨기 전 그웬에게 선물을 배달하기 위해 아더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아더가 영국으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와 스티브 또한 결국 산타 부인과 함께 S-1을 타고 그를 돕기 위해 나선다.


(* 영화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하기 전에 짧게 덧붙이자면, 이 글에서 ‘산타클로스’라는 존재의 종교적 유래라거나 성경적 세계관과의 호환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산타클로스는 이미 종교적 색채를 잃은지 오래인 어떤 ‘문화적 상징’이라고 보는 데다가, 이 영화에서 그렇듯 산타 클로스를 통해 창작물들이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메시지와 서사가 가진 긍정적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특히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디즈니, 아드만, 픽사,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실사’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애니메이션적 연출이 매력적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로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어른들’을 위한 영화보다 뛰어날 때가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른보다 집중력과 이해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지라 메시지는 쉽고 간결하며 흥미로워야 하는데 그 축약된 내용에서 깊은 진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어른이 된 이후 특히 깨닫게 되는 사실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다시 감상할 때마다  새로운 해석과 생각이 더해진다는 점이다.


[아더 크리스마스] 또한 여러가지 해석과 이해가 가능한 작품이다. 실례로, ‘겨우 한 아이’의 누락 정도는 실수 축에도 끼지 않는다는 듯이 구는 아버지와 스티브의 태도, 그에 대비되어 ‘한 아이’도 놓지 않으려는 아더의 노력과 열정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과연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되새기고 있는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아더가 자신의 ‘단점’으로 생각되었던 것들을 이용해(촌스러운 크리스마스 슬리퍼를 사용해 그들을 공격하는 탄자니아의 사자들을 잠재우거나, 걱정 많은 소심한 성격을 역이용해 썰매를 되찾는 등)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격려나 응원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것은 ‘가족’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아더의 가족은 ‘산타’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만 빼면 우리 주위의 평범한 가족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이며, 세대 간의 갈등이 띄는 양상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일단 19대 산타였던, 136세(!)의 할아버지는 아들과 손자가 자신을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여전히 자신의 '퇴역'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그는, 여덟 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직접 선물을 나누어 주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요즘 애들’의 방법, 그러니까 스티브가 도입한 최첨단 시스템을 못마땅히 여기는 "라떼는 말이야"의 전형이다. 한편 20대 산타인 아버지 "말콤"은 그닥 좋은 아버지도, 또 그닥 좋은 산타도 아니다. 이미 큰 아들에게 산타 역할의 실질적 책임은 맡겨 놓고도 ‘산타’가 아닌 자신을 상상할 수 없어 정식으로 은퇴하는 것은 두려워한다. ‘과거 세대'인 아버지와 ‘신세대’인 아들의 중간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그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의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없는데, 그 때문인지 스티브에게 의존하는 동시에 아들의 진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큰 아들 스티브는 철저히 이성적인 듯, 효율성과 능률에만 관심이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 바쁜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관심과 인정을 ‘산타’로서의 혁신과 성공으로 보상 받고 싶어 하는 자신의 내면을 무의식 중 드러내는 인물이다. 


해서 이들 셋은 산타라는 직업의 본질(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함으로 아이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일)보다는 그것이 내포하는 어떤 상징성과 세력 과시에만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더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테마 보드 게임을 하면서는 ‘산타’ 역할을 맡겠다고 서로 싸우지만, 막상 산타가 정말 해야 하는 – 누락된 아이에게 선물을 배달하는 – 일 앞에서는 도리어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만 하니 말이다. 아더를 도와 선물을 배달하겠다던 할아버지도 그웬을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아들과 손자에게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증명하는 기회로 삼고자 나섰던 것임이 나중에 밝혀진다.   





한국에서는 조금 덜할지 모르겠지만 서구권 나라들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대표적 명절이다. 그렇다 보니 동양에서 설이나 추석 같은 때 사람들이 주로 경험할 "명절 증후군" 비슷한 것을 여기서는 크리스마스에 겪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거나 서먹한 가족들과 친척들, 시댁/처가 사람들(소위 "in-laws")을 만나야 하다 보니 부딪히는 부분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정치, 사회적 이슈나 개인사에 관한 세대적 갈등이 존재하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크리스마스를 ‘업’으로 삼은 클로스 가족들마저 그런 세대 간의 갈등과 충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클로스 가족 사이의 이런 갈등, 수면 아래에서 들끓던 감정들은 아더의 '일탈'을 매개로  폭발한다. 선물 하나가 배달에서 누락되었다는 소식이 요정들 사이에 퍼지자 아버지 말콤은 스티브를 탓하는 듯한 말을 하고, 그간 자신이 한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화가 난 스티브는 뒷일을 버려 둔 채 관제 센터를 나가 버린다. 입장이 난처해진 말콤은 뒤늦게나마 선물 배달을 돕겠다며 아내와 함께 S-1에 타지만, 애지중지하는 비행선에 사고라도 날까 스티브가 함께 탑승하면서 그동안 묵혀 왔던 원망을 아버지에게 쏟아붓는다.


그런 과정 속에 결국 3대가 그웬의 집으로 모이게 되는데, 나는 여기에서 영화의 진정한 목표이자 ‘기적’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아침 해가 뜨기 전 아이에게 성공적으로 선물을 배달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서로 너무나 다른 경험, 가치와 신념을 가진 가족이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같은 곳에 모인다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런 ‘훈훈함’ 속에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이 누가 ‘산타’로서 그웬의 선물을 트리 아래에 놓을 것인가를 두고 잠시 다투기는 하지만 – ‘사람’이 쉽게 변하진 않는다 – 아버지는 결국 이곳까지 온갖 고생을 하며 선물을 가져온 아더에게 그 임무를 양보하기로 한다. 그웬이 선물 여는 모습을 함께 보자고 부탁한 아더 덕분에 가족들은 산타의 선물을 열어 보는 아이의 표정을 처음으로, 그리고 ‘다 함께’ 지켜본다. 그 광경을 기쁨과 행복으로 바라보는 아더, 약간의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보는 스티브, 그리고 그런 두 아들을 미안함과 자랑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이 가족이 앞으로 나아갈  모습, 그러니까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제야 아버지 말콤은 아들 스티브에게 넌 산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고 전한다. 여태껏 쌓였던 아들의 울분, 애정과 인정에 대한 갈구를 늦게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아버지가 건네는 화해의 선물이다. 동시에 말콤은 순수한 행복 그 자체로 그웬을 지켜보는 아더를 향해 눈짓하며, 그럼에도 어쩌면 진정한 ‘산타’는 그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내가 언제나 울컥하게 되는 장면이다. 가장 효율적인 선물 배달 방식을 도입하려 엄청난 시간과 노력으로 북극의 시스템 자체를 바꿨고, 자신이 입을 산타 수트를 미리 준비해 두었으며(참고로 "베르사체" 브랜드의 맞춤형 수트이다), 가족들과 했던 보드 게임에서 나온 산타 역할 장기말을 갖고 다닐 정도로 ‘산타’라는 자리에 대한 애정과 절실함이 깊었던 스티브는 동생의 표정을 보곤 결국 아버지의 말에 동의한다. 


아더에게 ‘산타’ 장기말을 건네며 자신은 다른 역할을 하겠다는 그의 대사(“I’ll be the candle, eh?”)는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아더가 주인공이고 가족의 기적을 위한 촉매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MVP는 스티브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순수함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변함없이 '유지'한다고 볼 수 있는 아더와 달리 스티브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동생이 그 자리에 더 어울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자리에서 더 순수하게 행복하리라는 이유만으로 평생의 꿈과 목표를 포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준비한 제물이 하나님의 더 큰 인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동생을 살해한 형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의 어려운 결정과 희생으로 이 가족은 물론 북극 역시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리라 믿는다. 





‘가족’만큼 가까운, 동시에 먼 관계도 없는 듯하다. 세대 간의 오해와 갈등, 몰이해와 단절이 점점 심해지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크리스마스 같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이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더 이상 평온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지 못하는 것도 큰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세상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몇 시간 안에 전 세계에 선물을 배달할 수 있는 마법적인 힘이 아니라 의견 차이, 불화, 갈등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이해하고자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고집을, 욕망을 꺾고 상대방에게 자신이 귀히 여기는 무언가를 양보하는 일, 이해타산에 맞지 않는 선택을 기꺼이 감내하는 일, 그러니까 ‘사랑’을 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선택으로 인해 이전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화합과 조화, 사랑과 이해라는 새로운 방향이 잡혀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산타’의 자리는 아더가 물려 받은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북극의 COO, 즉 Chief Operating Officer(업무  담당 최고 책임자)가 된 스티브가 지금 "행복하다"는 자막에 더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은퇴한 아들과 전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할아버지도, 은퇴 생활을 즐기며 아내와 살사 댄스 강습을 받는 아버지 말콤도, 승진해서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있는 요정 브라이오니도, S-1을 끌게 된 순록들도, 아더도 모두 ‘행복하다’는 자막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이렇게 온 가족이 ‘행복’해지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으면 한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식물 화분을 하나 더 들여 온다면 "아더"라고 부르려 했었는데 이 글을 쓰다가 마음이 바뀌었다. 식물이 하나 더 생기면 그 아이의 이름은 "스티브"라고 지을 것이다. 우리의 진짜 영웅, 스티브. 오래오래 행복하길.) 


왼쪽 애가 월레스, 오른쪽 아이가 그로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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