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anne May 03. 2024

로그 원: 우리의 뿌리는 ‘희망’에 있다

딸 J의 시선



비교적 ‘신예’라고 할 가렛 에드워즈(Gareth Edwards) 감독의 2016년 작 [로그 원]은, “스타워즈 스토리”라는 부제에서 유추되듯 전통적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파생한 “스핀오프”이다. 주 시리즈와 갖는 내용상의 밀접성보다는 [스타워즈] 세계관 안에서의 외전, 혹은 부록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듯하며, 그런 이유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부담 없이 즐길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스타워즈] 세계관의 중요한 뼈대를 짧게 설명하자면,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에서”(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여러 행성들을 탄압하고 식민지화하며 영토를 넓혀 나간 “제국”(the Empire)과 이에 저항하는 “반란 연합군”(the Rebel Alliance)의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그 유명한 “스카이워커 남매”(레아 공주와 루크)가 반란군의 구심점이 되어 그들의 친부이자 제국의 2인자인 “다스 베이더”에게 맞서는 내용의 오리지널 3부작(4-6편)과 유사하다. 정확하게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첫 작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A New Hope)](1977) 직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 4편에서 아주 짧게 언급된 내용들을 토대로 - 영화화한 셈이다.


[로그 원]은 여러 행성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공화국”(the Republic)의 체제가 완전히 멸망하고 제국이 그 야심과 공포 정책을 드러낸 4년 후, 한때 제국의 고위급 과학자였으나 그 행보에 염증을 느껴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숨어 살던 “겔런 어소”를 비춘다. 제국의 특수 무기 연구국장 “크레닉”이 결국 그를 찾아내며 가족의 불완전한 평화는 끝이 나는데, 크레닉은 겔런에게 제국으로 돌아와 그의 미완성작, 행성 단위의 파괴력을 가진 대량 살상 무기 “데스 스타”(the Death Star)를 완성하도록 강요한다. 겔런의 아내는 그 과정에서 살해되고, 겔런은 어쩔 수 없이 크레닉을 따라 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부부의 어린 딸 “진 어소”(펠리시티 존스)는 부모님이 가르쳐 준 대로 근처 동굴에 피신한 채 도움을 기다리고, 어소 가족의 친구이자 반란 연합군 소속인 “쏘우 게레라”(포레스트 위태커)에게 거두어지며 연합군 사이에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15년 후, 쏘우의 보살핌을 벗어나 혼자 어렵게 살아온 듯 보이는 진은 제국군에게 잡혀 수송되던 중 “카시안 안도르” 중위(디에고 루나)가 이끄는 반란군에게 구출된다. 반란군 연합은 진에게 아버지 겔런이 대학살 무기 데스 스타를 거의 완성했음을 알리면서, 완성 전 그를 찾아 제국군으로부터 구출시키는 작전을 돕기를 요청한다. 사악한 제국의 ‘협력자’의 딸로 어느 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며 냉소적으로 변한 진은 반란군의 대의와 사명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데스 스타에 관한 주요 정보를 빼내 전향한 제국군 소속 조종사가 쏘우 게레라를 찾아갔다는 소식에 카시안 중위와 쏘우의 접촉까지만 도운 뒤 발을 빼려고 한다. 하지만 진은 쏘우와의 재회에서 제국 조종사를 그에게 보낸 인물이 아버지 겔런임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메시지에서 그가 데스 스타를 만드는 데 공헌한 ‘진짜’ 이유와 함께 자신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전해 듣게 된다. 결국 그녀는 제국군의 주요 기지인 “스카리프” 행성에 침투해 제국의 데이터 뱅크에서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훔치겠다는 위험하고도 무모한 작전을 기획한다.





일단 사심을 담아 편파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 영화를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다. 4-6편(오리지널 3부작)을 제외한 [스타워즈] 시리즈 후속작들(TV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으므로 영화만 가지고 얘기하자면) 중에서 [로그 원]이 가장 훌륭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를(정확하게는 오리지널 3부작을) 정말 정말 좋아하는데 - 지금 나의 문화적 취향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 1990-2000년대에 제작된 1-3편과 2010년대에 개봉한 7-9편 등은 오리지널 [스타워즈] 시리즈의 매력적 요소들을 오히려 퇴색시킨 감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스타워즈] 4-6편이 ‘제국’이라는 이름의 압도적인, 동시에 약간 모호하기도 한 ‘거대 권력’에 맞선 연대 세력의 서사와, ‘쉬운’ 악 앞에서 ‘어려운’ 선을 택할 때 극에 달하는 개개인의 힘과 능력을 “포스”(the force)라는 에너지로 실체화하는 비유 등의, ‘공상과학’의 탈을 쓴 철학적 고찰에 기반을 두며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거머쥘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반면, 대부분의 후속작들은 영화의 세계관 그 자체, 또한 “스카이워커” 가문의 어떤 ‘신화’(mythology)를 확대하는 데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는 다른 어떤 후속작들과 스핀오프 작품들보다 [로그 원]이 오리지널 [스타워즈] 3부작의 정신적 후속작(spiritual successor)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독립운동”이라는 소재의 미묘한 명암을 꽤 세밀하게 다루고 있는데, 사실 어떤 대의, 고귀한 목표를 가지고 행해지는 일들은 때로 지나치게 미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실수가 많은, 불완전하고 불완벽한 ‘인간’이 해 나가는 일들이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의 주장(“ends justify the means”) 역시 상당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키려고 시작된 싸움이 도리어 저항하는 이들 자신의 인간성을 해치며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 또한 존재하고 말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경우에도 반란군 연합이 ‘옳은’ 편에 서서 도덕적, 윤리적 ‘우위’를 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에 이상적으로, 무조건적 ‘선’으로 무장해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진 앞에서는 아버지를 제국군의 손아귀로부터 구하는 작전이라고 설명했던 지도부가 카시안 중위에게는 무기의 완성을 막기 위해 겔런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따로 내리는 등,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합리적이며 선에 더 ‘가까운’ 결정일지라도 냉혹한 이중성을 함께 지닌 모습임이 드러난다.


이 이중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은 연합군의 중위 카시안으로, 영화 초반에서의 그는 반란 연합의 대의와 이상에 회의와 거부감을 표시하는 진과 달리 “모든 반란은 희망 위에 세워져 있다”며 이상적인 신념, 대의에 대한 맹목을 보여 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정탐 활동 중 자신의 발목을 잡을 듯한 아군을 망설임 없이 살해하거나 진을 속이고 그녀의 아버지를 사살하기 위해 혼자 길을 나서는 등 냉소적이고 잔혹한 면모도 동시에 나타낸다. 어느 쪽이 잘했다, 잘못했다의 문제라기보다 그 어떤 옳고 숭고한 대의를 위해서라도 결국 모든 싸움과 전쟁에는 피와 거짓이 묻어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덤덤하게 일깨워 주는 단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던 진의 태도가 영화의 중반부터 180도 변하며 그녀가 이 작품의, 또한 반란 연합군의 ‘moral center’(도덕적, 윤리적 구심점)가 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를 통해 데스 스타 내부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알게 된 이후 그것의 설계도를 빼내어 오자고 - 데스 스타의 끔찍한 파괴력에 경악하며 제국에의 무모한 저항에 회의를 표하는 반란군들 사이에서도 - 주장하는 기백을 보이는 장면은 당황스러울 만큼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인데(전반적으로 무척 뛰어난 영화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런 특정 장면들의 대사는… 조금 오글거릴 정도이다), 예전에는 서사를 진전시키고 완성시키기 위한 필연적 서술적 장치 정도로만 짐작했던 진의 이런 변화가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는 조금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진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쏘우 게레라를 만나 듣게 된 아버지의 ‘진심’이자 ‘진실’이며, 그것이 그녀의 진심과 진실 또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반란군 사이에서 자랐고 한때는 뛰어난 반란 연합군의 ‘군인’이기도 했다는 진이 반란군의 대의와 사명에 냉소적인 태도로 변하게 된 것은 사실 어떤 이념적 환멸, 혹은 신념의 전환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진의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 자신을 두고 제국의 편에 가담한 아버지 겔런에게 ‘버려진’ 경험이 있는 데다, 그후 자신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 주던 쏘우 게레라로부터도 내쳐지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물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음이 밝혀지기는 한다). 다시 말해 진이 반란군 연합을 저버리게 된 이유는 ‘감정적’인 상처, 더 정확하게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지켜 주지 않은 ‘아버지들’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카시안에게 반란군의 ‘대의’(the cause)가 자신에겐 “고통밖에 준 것이 없다”고 조소하는 진의 대사에서도 그녀의 이런 상처를 엿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 겔런이 자신에게 남긴 메시지를 듣고 난 진은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감정적’ 오해를 풀게 된다. 겔런은 제국이 자기 없이도 데스 스타를 완성시키리라는 것을 깨닫고 차라리 그들과 협력하는 척 신뢰를 쌓은 뒤 안정적 위치에 올라 데스 스타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구도적 결함을 심어 놓고자 제국으로 돌아갔음을 밝힌다. 그리곤 어릴 적 딸을 불렀던 애칭, “stardust”로 다시 진을 부르며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를 들려 준다. 변치 않는 사랑을 전하는 아버지의 홀로그램을 보며 진이 아이처럼 우는 장면에서 이번에는 나도 같이 훌쩍이게 되었다. 이때 진은 아버지에게 버림 받았다는 상처와 오해를 해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연합을 배신하며 악의 편에 선 줄 알았던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로서뿐 아니라 겔런 어소라는 인물 자체의 실체, 정확하게는 그의 ‘정체성’이 그녀 안에서 새롭고 올바르게 확립된 것이다. 겔런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대의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용감한 영웅’이라는 정체성을 되찾게 되고, 그로 인해 진의 정체성 또한 회복된다. 진은 더 이상 무심하고 냉소적인 제삼자가 아닌, 정의와 자유를 추구하며 대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독립군으로서의 ‘진짜 정체성’으로 변화하게 - 더 정확하게는 ‘복귀하게’ - 된다. 말하자면 진은 예전과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고, 이렇게 해석했을 때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은 진은 사사건건 대립해 왔던 카시안과도 진실된 연대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반란군의 ‘대의’에 대해 ‘냉소가’(cynic)와 ‘신봉자’(believer)로서 둘의 위치가 계속 바뀌며 ‘대치’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스카리프 행성으로 잠입하려는 진의 무모한(자살행위 비슷한) 작전에 카시안과 여러 반란군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결국 나란히 같은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카시안은 자신들이 대의를 위해 많은 끔찍한 짓을 범했음을 시인하면서 그 모든 행동들이 대의를 위한 - 더 정확하게는 ‘희망’을 위한 - 것이 아니었다면 모든 의미가 사라진다며 진의 순진할 만큼 낙관적인 계획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다. 누군가의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어둠이 오히려 그를 빛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이 가능성은, 아버지의 정체성을 확신함으로 자신의 정체성 또한 확신하게 된 진의 맥동하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찬란한 빛 안에서 카시안과 다른 반란군들 역시 대의의 이름으로 손에 피를 묻힌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닌, ‘선’과 대의를 위해 모든 희생과 고난을 감내해 온 진짜 정체성을 돌려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의 구현’ 작전의 선봉에 선 자신의 모습을 멋쩍어하는 진에게 “집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home)며 위로하는 카시안의 대사는 사실상 본인 자신을 위한 말로 들리기도 한다. 





스카리프 행성에 잠입해 철통 같은 경비를 뚫고 아군의 목숨을 희생하며 제국군의 군사 기밀이 모여 있는 데이터 뱅크에 도착한 진과 겔런이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찾을 수 있던 이유 또한 아버지의 사랑에 기반한 진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암호명으로 분류된 정보들 속에서 진은 아버지가 자신을 부르던 애칭인 “stardust”라는 이름의 파일을 발견하고, 겔런의 안내대로 설계도를 반란 연합군에게 송출하는 일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군사 기밀의 유출을 우려한 제국군이 스카리프 행성을 (데스 스타로) 파괴하기로 결정하면서 진과 카시안 등 스카리프에 침투한 모든 반란군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직접 종말을 준비한 데스 스타에 의해 죽음을 맞지만, 예상했던 끝을 앞둔 진과 카시안의 표정에서 절망이나 슬픔은 읽히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을 당당히 맞기 위해 두 사람은 고단한 몸을 이끌어 스카리프의 해변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함께 바라보는 행성의 전멸은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네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라는 카시안의 대사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사명을 끝까지 놓지 않은 이들의 자긍심과 평온함이 함께 들리는 듯도 하다.


그들의 ‘죽음’이, 희생이, 그저 안타깝지만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이미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벌써 수십 년 전에 개봉된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은 이들이 훔쳐 낸 설계도를 통해 반란 연합군이 데스 스타를 완전히 파괴시키는 내용, 또 제국의 무시무시한 힘과 권력을 무너뜨리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미 이야기의 끝을 아는 관객에게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반란군들의 손과 손을 거쳐 레아 공주에게 무사히 전달되는 이 설계도가 진실로 ‘새로운 희망’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당연한 것이다.





독재와 부패에 맞서며 어떤 ‘대의’를 위해 힘쓰는 인물들이 다루어진 작품들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고통과 고난에 직면한 사람들이 정의나 대의를 등지는 이유, 교회를 떠나는 이유, 이기심과 무관심이라는 무기로 다른 이들을 상처 입히는 이유의 대부분은 이성이나 신념에 따른 결과가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 받는 존재라는 확신, 아무리 세상이 불합리하고 불공평해 보여도 결국은 정의와 평화, 평등이 구현되리라는 사실에 대한 ‘감정적’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지. 그렇다면 세상을 바꾸는, 대의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용기는 결국 사랑 위에 세워진 희망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듯하다. 약한 자의 편에서 언제나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깃든 그분의 정체성을 확신한다면,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의 진짜 정체성 또한 확립한다면, 어떠한 상황 속에 있다 해도 희망을 잃을 이유는 없다. 그 희망이 어둠 가운데 서로를 가까이 끌어당기는 등불처럼 여러 마음을 모아, 세상의 모든 크고 두려운 탄압과 불평등을 마침내 무너뜨릴 것을 믿는다. 그 또한 아주 오래전에 이미 정해진 결말이니 말이다.




엄마 C의 시선 



영화 “로그 원”은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SF 대작 “스타워즈(Star Wars)” 프랜차이즈의 앤솔로지(Anthology) 시리즈 첫 번째 작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연출한 “스타워즈”는 애초 6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 가운데 감독 스스로 더 재미있고 상업성도 있으리라고 예측한 4, 5, 6편(오리지널 3부작: Original Trilogy)을 먼저 제작하고 후에 1, 2, 3편(프리퀄 3부작: Prequel Trilogy)이 만들어진 다음, 다시 9부작으로 기획을 바꿔 7, 8, 9편(시퀄 3부작: Sequel Trilogy)에까지 이어진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가족 3대가 함께 관람하는 영화로도 알려진 이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SF(Science Fiction)”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 역시도 – 사실 “스타워즈”가 SF로보다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로 불리는 경향도 있기는 하지만 – 중고교 시절부터 그 매력에 흠뻑 빠져 개봉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 보도록 만든 매력 있는 작품입니다.  


2016년 개봉되었던 영화 “로그 원”의 시간적 배경은 시리즈 최초작인 에피소드 4편 “새로운 희망(A New Hope)”의 바로 전 시간대로, 영화 도입부마다 등장해 이제는 하나의 전통처럼 된 - 위로 빨려 올라가는 듯한 특이한 형태로 다른 영화들도 종종 차용하는 - 자막(4편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국군이 개발한 무기 “데스 스타(Death Star)”의 설계도를 찾아낸 저항군의 활약으로 이 설계도가 “레아(Leia)” 공주에게 전달되고 이를 전해 받은 로봇 “R2-D2”와 “C3PO”가 “오비완 케노비(Obi-Wan Kenobi)”를 찾으려 “타투인(Tatooine)” 행성에 가는 것으로 스타워즈 4편의 막이 오르기 때문이지요. 마블(Marvel) 시리즈가 특히 그렇듯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물은 이전 영화들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가 힘들 만큼 내용이 복잡하고 스토리의 연결성이 중요한 반면 스타워즈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런 면이 덜한 데다가, 특히 이 작품에서는 시간대가 4편 직전으로 설정된 만큼 - 애초 모든 관객들이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것이 4편이기에 - 그 이전의 다른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들도 큰 어려움 없이 내용에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글의 시작 부분에서 간단히 언급했던 것처럼 한국인에게는 3월이라는 달이 “독립,” “저항”의 개념과 따로 떠에 생각할 수 없는 달이기에 진작 이 작품을 다루려고 계획했었는데 – 사실상 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 “세계 여성의 날”을 먼저 기념하느라 뒤로 미루다 보니 이 영화의 포스팅이 뜻하지 않게 늦어졌습니다. 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내용들을 포함한 이 작품을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해 본다면,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진(Jyn Erso)”은 뛰어난 과학자 “겔런(Galen Erso)”의 딸로, 제국군에게 더 이상 이용 당하지 않으려 가족들과 숨어 살던 그를 첨단 무기부 국장 “크레닉(Orson Krennic)”이 찾아내어 과거 그가 설계하던 미완성 무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강제로 데려 가는 과정에서 겔런의 아내가 살해되고 딸인 진만 가까스로 도망쳐 가족의 지인이던 “쏘우(Saw Gerrera)” 밑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15년의 시간이 지난 후, 진과 쏘우를 이용해 겔런이 발명했던 무기에 관한 정보를 캐내는 동시에 그를 죽여 무기의 완성을 막으려는 저항군 연합이 정보부 소속 장교인(남자 주인공 격인) “카시안(Cassian Andor)”을 진과 함께 쏘우에게 보내지요. 





한편 쏘우가 머물고 있던 “제다(Jedha)” 행성에는 겔런이 비밀리에 보낸 파일럿 “보디(Bodhi Rook)”가 쏘우에게 억류되어 있었는데, 제국군 소속인 그가 첩자일 것을 우려하던 쏘우가 자신을 찾아온 진에게 보여 준 홀로그램 메시지(겔런이 보디를 통해 보낸)에는 본인의 의지와 달리 강압에 의해 제작했던 무기 “데스 스타”에 치명적 약점을 일부러 만들어 두었고 그 설계도가 “스카리프(Scarif)”라는 행성의 제국군 데이터 뱅크에 보관되어 있다는 겔런의 전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다 행성을 파괴하려는 제국군의 공격을 피해 진과 카시안, 보디는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쏘우는 그대로 남아 죽음을 맞습니다. 보디가 진과 카시안을 겔런과 그의 연구 시설이 있는 “이두(Eadu)” 행성으로 안내해 이루어진 딸과 아버지(진과 겔런)의 짧은 재회는 반란군이 연구 시설을 폭파함에 의해 겔런이 숨을 거두며 끝나게 됩니다.  


반란군 연합으로 돌아온 진은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탈취할 것을 제의하지만 그녀의 제의를 무모한 계획으로 본 지도부의 반대로 위기에 봉착하지요. 그러나 그녀를 믿고 지지하는 카시안과 저항군 내 일부 병력들의 도움으로 자발대가 결성되고, 제국군을 속여 스카리프로의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비행사인 보디가 자신들의 우주선 이름을 “로그 원(Rogue One)”이라고 - 얼떨결에 - 급조해 보고합니다. 스카리프 도착 이후 다른 병력들의 지원에 힘입어 진과 카시안은 데이터 뱅크를 찾아내고, 제국군들과 크레닉, 심지어 공포스러운 초능력을 지닌 “다스 베이더(Darth Vader)”까지 합류해 방해 공작을 펼치는 중에도 진과 카시안이 설계도를 지도부에 전송하는데 성공하지만, 제국군의 스카리프 폭파로 두 사람을 포함한 남은 병력들은 모두 목숨을 잃고 맙니다. 천신만고 끝에 전송된 설계도를 레아 공주가 전달 받는 장면으로 영화는 그 끝을 맺게 되지요.  





영화 “로그 원”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일반적 작품들과 몇 가지 다른 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곤 하는데, 앤솔로지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 SF를 ‘차용한’ 무협 판타지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면 “로그 원”은 본격적인 전쟁 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 대표적 차이점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의 분위기를 전쟁 장면에 도입했다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이 영화의 주인공들, 즉 우주선 “로그 원”으로 대변되는 저항군 병력들은 2차 대전 당시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던 연합국(프랑스, 영국, 미국, 소련, 중국) 내 저항 세력인 “레지스탕스”로 치환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 등의 고전 명화들은 물론, 비교적 최근작인 “바스터즈(Inglorious Basterds)”나 “작전명 발키리(Valkyrie)” 같은 수많은 작품들에서 이런 저항 세력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다루어졌지만,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주인공들이 한꺼번에 희생되는 안타까운 내용 때문인지 청소년 시절 감명 깊게 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새벽의 7인(Operation Daybreak)”이 함께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위에 소개한 영화들 가운데 민간인 아닌 고위급 군인들이 침략군에 저항하는 반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의 마음에 더 깊이 와닿는 모습은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순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일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저항군”의 이름으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사람들 대다수도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들인 것처럼 말이지요. 영화의 화면을 통해 거리를 두고 보더라도 무기와 설비 등 모든 면에서 비교 불가일 정도의 우위이기에 너무도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제국군에게 맞서겠다는 결정 자체가 가히 ‘자살 행위’라고 할 만큼 두렵고도 위험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는 ‘용기’라는 말을 제외하고 다른 근거로는 설명되지 않는 행동이기도 하지요. 최근 접했던 어느 평론가의, “어렵고 힘든 상황에 직면해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자신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를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내릴 결정이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에 근거해 결정하는 사람도 있다”는 해설이 생각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전에 저희가 올린 “동주”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일신의 유익보다 ‘정의’와 ‘신념’을 우선시하는 이런 사람들을 이 영화에서는 “로그 원(Rogue One),” 즉 “무리를 떠나 사는(그래서 위험에 처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작품의 내적 깊이를 간과한 채 외형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우라면 이 영화를 단순한 “SF(Science Fantasy)”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저는 이 작품 안에서 두 가지의 기독교적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스타워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사가 “May the Force be with you(포스가 함께하기를)”일 정도로 이 시리즈에서 중요한 “the Force”의 개념이 그 첫 번째로 - 이 단어의 의미를 지금 다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는 만큼 “스타워즈”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논의할 기회가 있을 때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 하나님을 만난 이후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the Force”를 “the Spirit(하나님의 영)”으로 바꿔 보게 되었을 만큼 두 개념 사이에는 따로 떼어 생각하기 힘든 공통점이 있습니다. “로그 원”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Trust the Force(포스를 믿어라)”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엄마가 남긴 목걸이를 꺼내 들고 기도하는 듯한 진의 모습도 물론 그렇지만, 제국군과의 전투에서 진을 도와주고 스카리프에도 그녀를 돕기 위해 함께 왔던, 수도사 비슷한 이미지의 “치루트(Chirrut Imwe)”가 포화 속을 뚫고 가는 장면에서 그 개념은 절정에 이릅니다. “I am one with Force, Force is with me(포스와 나는 하나이고 포스는 나와 함께한다”고 계속 혼자 되뇌이는 그의 모습과 함께 말이지요.   





또 하나의 메시지는 “희망(hope)”과 관계된 것으로, “Rebellion is built on hope(저항군의 뿌리는 희망에 있다)”는 진의 선포와, 도주를 포기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쏘우가 피신하는 진을 향해 남긴 “Save the dream(꿈/희망을 지켜 내라)”이라는 당부에 이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전달 받은 레아 공주에게 “공주님, 그들이 뭘 보낸 거죠?”라고 묻는 병사의 질문에 “Hope(희망이지)”라며 그녀가 답한 짧은 한마디에서 그 의미는 정점을 드러냅니다. 치루트가 빗발치는 포화 속을 뚫고 가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야 피격되어 사망하는 모습이 상징하듯, 죽음을 이기는 우리의 ‘승리’란 육신의 생명이 죽지 않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이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은혜로 - 완수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또한 우리의 사명 완수가 “승리를 ‘위한’ 것(for victory)”이 아니라 “승리를 ‘바탕으로 한’ 것(From Victory)”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리를 떠난 사람들”인(‘무리’나 ‘군중’이 아닌)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희망’이자 소망이기에, 영화가 막을 내릴 때 저에게 떠오른 말씀은 다름 아닌 로마서 15장 13절이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 생활 가운데 모든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하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흘러넘치게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말성경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as you trust in him, so that you may overflow with hop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작가의 이전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다시 본 4편의 영화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