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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Jul 05. 2024

조용한 가족: ‘조용’해선 안 되는 그들


엄마 C의 시선 



한국 영화 “조용한 가족”은 1998년 개봉되었던 김지운 감독의 장편 데뷔 작품입니다. 이후 “반칙왕,”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등 예술적, 상업적으로 모두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를 연달아 발표한 감독 김지운의 첫 연출작이라는 사실뿐 아니라 최민식, 송강호, 박인환, 나문희 등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이 한 편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는 ‘특장점’도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이제는 엄청난 ‘거물’이 된 두 배우, 최민식과 송강호가 같은 영화에 함께 나온 적이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이 영화를 선택하며 그들의 공동 출연 작품임이 상기되었고, ‘내친 김에’ 검색해 본 결과 “넘버 3,” “쉬리,” “친절한 금자씨” 등에도 함께 출연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들에서는 서로 마주친 적이 없거나 한 쪽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의 경우였기에 두 배우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조용한 가족”이 유일한 작품임도 새삼 확인하게 되었지요.  


“코믹잔혹극,” “퓨전호러” 등의 장르로 일컬어지는 영화이기에 더운 여름을 맞이한 이 즈음 떠올리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공포,” “호러” 등의 단어가 붙는 영화라면 근처에도 얼씬 않는 저같이 겁 많은 관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엉뚱함과 기발함이 돋보이고 코미디적 요소도 많이 갖춘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당시로서는 큰 흥행이라고 할 만한 상당 수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일본에서도 “카타쿠리스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 타카시 미키 감독 연출로 – 리메이크 되었다고 하지요.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가족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도 무척 재미있는 이 영화는, 감독의 데뷔작인 동시에 수작(秀作)으로 인정되는, 또한 한국 영화사의 숨겨진 걸작이라고도 평가 받는 작품입니다.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아버지 “강대구”와 어머니 “정순임,” 큰아들 “강영민”과 큰딸 “강미수,” 작은딸(막내) “강미나” 등 부모와 세 자녀 외에, 대구의 동생이자 자녀들의 삼촌으로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강창구”까지 포함된 여섯 명의 가족입니다. 지난 회에 포스팅한 “오션스 일레븐”이 “앙상블 캐스트(ensemble cast)” 형식임을 간략히 언급했었지만, 이 영화 역시 그 여섯 배우들의 배역이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분배된, 유사한 구조를 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적 배경은 1997년 일어난 IMF 외환 위기 당시의 상황으로, 경제적 문제로 인해 외딴 산속에서 산장을 시작한 이들 가족은 개업 후에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첫 손님을 받게 됩니다. 어딘가 암울하고 음침한 느낌을 주는 “안개 산장”이라는 이름 외에도, 함께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가족들 모두가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과 뭔가 다른 듯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산장은 ‘이상’하고도 괴이한 장소라는 인상을 줍니다. 


하필 맨 처음 산장을 방문한 첫 손님이 다음날 아침 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 우려한 대구는 시신을 그냥 산장 근처에 묻어 버립니다. 게다가 두 번째로 찾아온 커플 역시 다음날 음독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등산 길에 들렀던 두 남성 중 한 명이 큰딸 미수를 한밤중 숲속으로 데려가 성폭행을 저지르려 하자 그를 저지하며 싸움을 시작한 오빠 영민이 절벽에서 그를 밀어 살해하는 일도 발생합니다(얼마 후 살아서 산장에 돌아왔으니 당시 ‘살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곳에 돌아왔다가 다시 죽음을 맞게 되지요). 비밀 유지를 위해 죽은 남성의 동료인 “장 선배”를 산장에 잡아 둔 가운데, 이 가족에게 산장을 소개해 준 마을 이장이 재산 상속 문제로 이복 여동생(“은주”)을 살해하려고 살인 청부업자를 그곳으로 부른 후 대구 부부에게 협조를 부탁하지만, 이 계획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던(그리고 은주의 외모에 매료되었던) 창구는 그녀가 도망치도록 도움을 주고,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산장을 찾은 청부업자는 실수와 혼동으로 경찰을 - 가족들을 의심하며 잠복 중이던 - 살해하고 맙니다. 





이후에도 기괴한 ‘죽음’은 계속 이어져, 그 살인 청부업자는 다시 강영민의 손에 죽음을 맞고, 계획대로 일이 잘 진행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산장에 들렀던 이장은 대구와 순임이 잠복 경찰의 시신을 옮기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도망치던 중 대구와 몸싸움을 벌이다 2층 난간에서 떨어져 사망합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묻어 둔 사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소각’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대구, 순임 부부는 창고에 들어가 불을 붙이려 하는데, TV를 보려던 창구와 미나가 전기 스위치를 올리면서 창고 전등에 큰 불꽃이 이는 바람에 시신과 부부의 몸에도 불이 붙은 채 창고가 온통 화염에 휩싸입니다. 그들이 분명 숨졌을 것이라고 관객들이 짐작할 때쯤, ‘다행히도’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등장한 대구와 순임 부부가 가족들과 합류해 저넉 식사를 합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없는 척 숨죽이고 있던 그들은 짖어 대는 개를 ‘조용히’ 시킵니다. 그렇게 그들은 “조용한 가족”이 되는 것이지요.  





“IMF 관리 체제”라는 국가 부도 상황을 배경으로 명예 퇴직 후 경제적 능력이 상실된 아버지, 아예 직업이 없는 채로 형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삼촌, 전과가 있어 취업조차 못하는 큰아들, 본인들의 힘으로는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어머니와 딸들 등의 면면을 보여 주는 이 영화는, 사람이 죽었음에도 문제가 커지면 영업을 못하게 될까 봐 시체를 숨기고 암매장하는 일에서 시작된 그들의 ‘엇나간’ 삶이, 인간의 기본적 양심이나 존엄마저 각자의 경제적 상황에 의해 지배될 수 있는 현실을 우려 섞인 상징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보게 합니다. 애초 경제적인 이유로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산장을 시작한 것이고 첫 손님부터 뜻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고는 해도 그 상황에 대한 대처법은 전혀 다른 방향이 될 수 있었는데, 너무도 잘못된 첫 선택과 결정으로 - 첫 단추를 잘못 끼움으로써 -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를 만큼 일이 ‘꼬여 버린’ 그들의 모습은, 실제 삶에서의 우리에게도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양상이니까요. 





자신의 언니가 늦은 밤 낯선 남자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미나가, 이장의 계략으로 은주가 살해 당할 위험에 처했음을 알게 된 후 삼촌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는 장면은, 굳이 참견하거나 관련되고 싶지 않은 일에 애써 눈을 감던 태도에서 ‘타인’의 삶에 보다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쪽으로 자세를 바꾼 한 사람의 모습을 제시하는 듯합니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감시’해야 할 일들이 주위에 산적해 있음에도 불편하거나 불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무의식 중 간과하고 무시하는 부분들이 우리 모두에게 한 두 가지씩은 있을 것입니다. 이같이 무심한 태도가 타인을 위해 작은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무풍지대(無風地帶)”에 자신을 안착시키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하는 우리 인간의 ‘편리한’ 속성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겠지요. 


영화 속 가상의 이야기라 하여 별 생각 없이 넘길 수도 있겠지만, 오빠 영민이 밤길에 찾아 나서는 수고를 감수하지 않았다면 언니 미수에게 되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기에 - 또한 그로 인해 결국 한 사람이 죽게 되기도 했기에 - 사실 미나의 ‘회심’은 너무 늦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내포된 태도입니다.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라는 ‘최고의 법’(레 19:18; 약 2:8)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가끔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며 “너무 늦기 전에” 타인들의 삶에 관심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일이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딸 J의 시선



** 이 글은 자살, 자해 등의 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 그 누구도 스스로 빛을 포기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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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데뷔 작품인 1998년 작 [조용한 가족]은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적 요소를 지닌 블랙 코미디로, 감독의 작품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어딘가 뒤틀리고 스산한 듯한 감성을 관객들에게 훌륭하게 ‘맛보여’ 주는 영화다. 워낙 겁이 많아 정통 "공포 영화"는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엄마와 내가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 ‘무서운’ 영화의 축에 든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물론 호러 매니아들이 보기엔 우스울 수준이지만… 태생적으로 간이 쬐끄매서 어쩔 수 없다). 무더움을 넘어 뜨거워지고 있다는 요즘 날씨에 어울릴 ‘으스스한’ 영화를 다뤄 보겠다는 두 쫄보의 노력으로 이해하셔도 좋을 듯하다.  


영화는 도심에서의 삶을 정리한 뒤 경기도 어딘가의 산속에 위치한 산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6인 가족이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다. 아버지 "강대구"(박인환), 어머니 "정순임"(나문희), 아버지의 동생인 삼촌 "강창구(최민식), 장남 "강영민"(송강호), 장녀 "강미수"(이윤성), 막내딸 "강미나"(고호경)로 이루어진 이들 가족은 난생 처음 숙박업체를 운영하며 나름의 꿈에 부푼 채 손님들을 기다리지만, 근처에 곧 도로가 들어설 거라던 이장의 호언이 무색하게 공사는 계속 지연되고, 몇 명 안 되는 등산객들도 산장에 머물 생각을 않는다. 좁은 산장 안에서 손님 하나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모두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질 즈음, 어딘가 살짝 이상해 보이는 남자 손님(기주봉)이 찾아와 이 "안개 산장"의 첫 손님이 된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손님의 등장에도 그날 밤 그곳의 분위기는 왠지 불길하기만 하고, 손님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듯한 주검으로 다음 날 아침 발견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주인 부부, 삼촌과 영민은 패닉에 빠지지만, 곧 정신을 차린 아버지 대구는 경찰에 신고하자는 나머지 가족들을 말리며 손님의 시신을 매장할 것을 지시한다. 죽은 손님의 유서와 지갑이 없다는 점 때문에 경찰이 사건을 쉽게 ‘자살’로 단정짓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그는 경찰 조사와 동네에 퍼질 소문 등이 산장 '영업'에 끼칠 악영향을 걱정하고, 결국 이 네 명은 비밀리에 손님의 시체를 산속에 암매장하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어찌저찌 고비를 넘긴 듯 보이지만, 또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남녀 손님을 곧이어 맞으면서 산장에 새로운 ‘시련’이 닥쳐온다. 이 둘 또한 다음 날 아침 자살한 상태로 발견되는 것인데, 이번에도 상황을 모르는 두 딸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사건을 신고하는 대신 남녀의 시신을 숲속에 묻어 버린다.   


그후, 기약 없이 미뤄지던 도로 공사가 갑작스레 진행되고 등산객 손님이 느는 등 산장의 ‘상황’은 나아지지만, 이제 비밀이 생긴 가족들에게는 모든 것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뿐이다. 더욱이 첫째 딸 미수와 호감을 나누는 듯했던 한 등산객 손님(정웅인)이 으슥한 숲속으로 그녀를 데려가 강제로 관계를 가지려다 오빠 영민에게 발각되며 몸싸움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절벽 아래로 밀쳐져 떨어지는 일도 발생한다. 이 손님은 끔찍한 몰골로 산장까지 돌아오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함께 산장에 투숙했던 동료 "장 선배"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린 뒤 숨을 거두고, 이제는 두 딸까지 포함한 모든 가족이 시신을 비밀리에 매장하는 것은 물론 장 선배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그를 잡아 두며 ‘납치 감금’까지 실행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들에게 산장을 소개해 준 이장이 이복 여동생을 산장에서 살해할 -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 계획을 세우며 대구와 순임 부부에게 협조를 부탁하고, 실종된 장 선배를 찾던 경찰 지서장은 산장의 가족에게서 찜찜한 느낌을 받아 그들을 주시하기 시작한다. 빗줄기가 매서운 어느 날 밤, 이장이 고용한 청부 살인업자와 감시 목적으로 파견된 경찰 한 명이 동시에 안개 산장으로 향하면서 가족들의 상황은 점점 더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작품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 영화의 ‘보는 재미’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데, 우선 이 영화의 자랑은 '엄청난' 캐스팅이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박인환, 나문희 등의 ‘베테랑’ 배우들뿐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 송강호, 최민식 두 배우의 신인 시절 모습을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어떻게든 여자와 산장에서 ‘쉬어 가기’ 위해 수작을 거는 손님으로 출연한 정재영 배우와 이장의 여동생을 살해할 청부 살인업자로 등장하는 이기영 배우 등,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에서도 이름 있는 배우들의 젊고 앳된 시절을 '복기'할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영화는 미장센(말 그대로 ‘보는’ 재미)을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는데, 김지운 감독 본인의 2003년 작 [장화, 홍련]에서 정점(?)을 찍게 될 영상미와 연출 방식의 전조를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먼저 영화 속 "안개 산장"에 배치된 샹들리에와 계단, 어두운 색 나무 소재의 구조물 등 어딘가 이국적인(사실 ‘산장’이라는 건축물 자체를 한국 문화에서 흔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분위기는 산장 속의 칙칙한 조명과 어우러져 상당히 기괴하고 음울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특히 유럽 쪽 설화에서 ‘악’이나 ‘괴물’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초록색’의 벽지와 가구, 조명 등이 부각된다는 점, 산장의 인테리어가 전반적으로 빛바랜 색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음산하고도 ‘생기’를 잃은 그곳의 분위기에 일조하고 말이다. 갇힌 듯 답답한 인상을 주는 좁은 복도와 복잡한 건물 구조까지 여기에 가세하면서 안개 산장은 "고딕 호러"(gothic horror) 장르의 배경이 되는 고성(古城)을 - 뱀파이어, 혹은 귀신이 출몰하는 -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런 시각적 요소들은 사람들이 산장에서 계속해서 죽어 나간다는 설정에 약간의 오컬트적 분위기를 덧씌우는데, 사실 이 영화는 서술적 구도상 전통 호러 장르의 대표적 플롯 중 하나인 "귀신들린 집"(haunted mansion)의 서사를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물론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런 클리셰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 영화 초반 산장 주변에서 귀신을 보는 듯한 수상한 노파가 등장하는 것이나, 새까만 단발과 뚱한 무표정으로 가족들의 걱정을 사는 막내 미나가 [여고괴담] 시리즈의 등장인물, 혹은 [아담즈 패밀리](Addams’ Family) 시리즈의 "웬즈데이"와 비슷해 보인다는 점 등 말이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처럼 악마, 악귀, 원혼 등의 오컬트적 요소들을 통해 ‘악’을 표현하는 창작자들과 달리 김지운 감독은 귀신 같은 초자연적(supernatural) ‘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보이는데, [장화, 홍련]에서도 그랬듯 이 감독은 누구나 귀신, 악귀의 소행으로 예측할 만한 상황들도 어떤 식으로든 ‘인간’에 의해 비롯되었음을 시사하며, 귀신이나 악마 같은 요소를 ‘인간’의 잘못과 나약한 심리를 나타내는 ‘은유’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난 뒤 노트에 생각을 정리하며 내가 가장 먼저 적은 내용은 "역시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과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시간과 공간이 부족한 관계로 한 가지 주제,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인간의 이기심에 관한 고찰"에 관해서만 다뤄 보려 한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을 거창한 ‘악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기적’이라는 공통분모만은 늘 내재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자살을 '하기 위해' 산장으로 찾아오는 손님들부터 그런 이기심을 드러내는 보습을 볼 수 있는데, 첫 손님은 산장이 "조용해서 좋다"는, 동반 자살을 계획한 남녀 손님은 "우리가 찾던 곳"이라는 식의 의미심장한 대사를 건넨다. 말하자면 이들은 목숨을 끊겠다는 자신들의 ‘목적’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이 산장의 입장, 즉 자신들의 뒷수습을 해야 하는 주인의 처지와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이기심’은 산장 주인 가족들에게도 마치 전염이나 된 듯 나타나고, 가족들은 자살을 택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정이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 없이 자신들의 영업을 ‘방해’한 그들에 대한 원망으로 시신을 별 망설임 없이 '치워' 버리게 된다. 





이 결정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면서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도 무서운 교훈을 전하는 ‘우화’처럼 펼쳐진다. 그럴수록 이 가족의 이기심 또한 더욱 노골화된다고 느껴지는 것은, 첫 손님을 파묻을 때만 해도 유지하고 있던 듯한 그들의 양심의 가책마저 사건이 거듭될수록 옅어져 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시신을 묻자는 말에 아연실색하던 영민과 삼촌이 나중엔 땅 파는 일에 도사가 되었다며 낄낄거리고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까지 보인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선택을 시작한 인간이 폭력과 야만성, 자신의 비인간성에 얼마나 무심하고 ‘무감’(desensitization)해질 수 있는지 꼬집는 장면으로도 해석된다. 자살을 시도한 남녀(두 번째 손님들)를 묻으려던 중 남자가 갑자기 깨어나자 당황한 가족들이 그에게 폭력을 가해 결국 죽음에 다다르게 함으로써 방관, 유기처럼 비교적 ‘수동적’인(passive) 범행을 저지르던 그들이 ‘능동적’(active) 범죄를 저지르는 쪽으로, 그릇되고 위험한 행동에의 수위와 심각함이 점점 높아져 가기도 한다.


집안의 장남인 영민이 자신의 여동생 미수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던 남자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린 행위 역시, 가족의 '안위'를 위해 시체 묻는 일을 돕던 정도의 ‘방어적’(defensive) 이기심이 ‘공격적’(offensive) 이기심으로 변질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호기롭게 덤볐지만 생각보다 싸움을 잘 하는 상대에게 도리어 압도되고 얻어맞는 동안, 동생의 인격을 모욕하고 위협한 자를 향한 영민의 의로웠던 '응징'이 자신을 때려눕히며 자존심을 상하게 한 상대에 대한 ‘보복’으로 행위의 본질이 바뀌는 것이다. 씁쓸하게도 그 일 이후 영민은 인성 자체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폭력 전과가 있음에도 나름 순수(?)해 보였던 그가 친구 사망의 전말을 알고 있는 장 선배를 거리낌 없이 위협하거나, 산장으로 찾아온 청부 살인업자가 자신에게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죽여 버릴까" 라는 혼잣말을 내뱉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거듭될수록 점점 더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나아가 타인을 압도하고 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안위와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공격적’ 이기심의 발로로도 이해된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 사망률 높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 가족들이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큰 해를 입힌 경우는 없다. 앞서 말했듯 그들이 암매장한 손님들 대부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고, 영민이 여동생을 강제하려던 남자를 절벽 아래로 밀었던 '우발적' 사건 이후에도 남자는 산장까지 살아 돌아오기는 했다. 말하자면 이들은 직접 의도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를 정도의 악인들은 아닌 데다가 영화 속에서 일어난 죽음 대부분에서 법적이나 도의적으로의 ‘직접적’ 책임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비가 퍼붓던 혼란의 밤이 지난 이후 드러난 산장의 끔찍한 몰골은 이 가족이 촘촘하고 ‘조용하게’ 숨겨 두었던 이기심의 맨얼굴을 그대로 노출한다. 도로 공사 때문에 이리저리 대충 옮겨 묻었던 시체들은 비에 흙이 쓸려 내려가자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엉뚱한 사람을 희생시킨 청부 살인의 흔적도 산장 안에서 목격된다. 그들이 직접 사람을 죽이거나 해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 가족들의 이기심이 ‘의도적’ 살의나 악의와 동일한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인간 대부분은 어떤 대단하고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사람’을 위해, ‘내 몫’ 지키기를 위해 이기적 선택이라는 방식으로 ‘악’을 행한다는 평소의 믿음 때문인지 이 장면이 퍽이나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리 대단치 않은, 별 것 아닌 악이라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애써 파묻고 숨기는 동안, 그 '대단치 않은' 것들로 인해 점점 더 끔찍한 존재로 변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반영하는 듯 느껴져서였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부분은, 대구와 순임 부부가 이장의 계획을 방조하거나 동참하는 ‘이기적’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위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이장의 계획대로 그의 부유한 아버지와 이복 여동생이 안개 산장에 머무르는 동안 막내 미나와 삼촌 창구는 그녀와 시간을 보내며 호감을 갖게 되고, 그 같은 계획에 대해 알고 난 후엔 비밀리에 그들을 서울로 보내 목숨을 구해 준다. 물론 미나와 창구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동이 완벽하게 이타적이라거나 사심이 없다고 볼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가족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며 타인의 안위를 우선하는 결정을 내린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후반부, 쓸려간 흙에 드러난 시신들을 수습한 대구와 순임 부부가 창고에서 이들을 태우려고 하던 중 미나와 삼촌 창구가 아무것도 모르고 산장의 차단기를 원위치시키며 부부 대신 창고에 불을 내게 되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이때 시작된 불이 대구와 순임에게로 옮겨 붙어 화상을 입히며, 자신들의 잘못을 덮는 ‘증거 인멸’의 도구로 불을 이용하려던 부부가 도리어 불을 통해 어느 정도나마 ‘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불’은 파괴를 뜻하기도 하지만 ‘정화’의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을 통해 이기심에서 잠시라도 벗어났던 유일한 두 인물이 불을 일으킨다는 설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대단치 않아 보이던 악들이 태산처럼 쌓여 끔찍한 모습으로 우리를 위협하곤 하듯, 대단치 않은 선의와 이타심이 밝은 도화선이 된다면 이기심과 잘못들을 '조용히' 숨겨 둔 모든 좁고 어두운 공간을 남김없이 불태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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